김일손과 남효온, 원주의 원호를 뵙다

백호문학관 입구 (전남 나주시)
백호문학관 입구 (전남 나주시)

1481년에 김일손은 남효온과 함께 원주의 원호(元昊)를 배알하였다. 
원호는 자는 자허(子虛), 호는 관란(觀瀾)·무항(霧巷)으로 생육신 중 한 사람이다. 그는 1423년(세종 5)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청관·현직(淸官顯職)을 지냈으며, 문종 때 집현전 직제학에 이르렀다. 1453년(단종 1) 수양대군이 황보 인·김종서 등 대신을 죽이고 정권을 잡게 되자, 병을 핑계로 고향인 원주로 돌아가 은거하였다.

1457년(세조 3) 단종이 영월에 유배되자, 영월 서쪽에 집을 지어 이름을 관란재(觀瀾齋)라 하였다. 그는 아침저녁으로 영월 쪽을 바라보고 눈물을 흘리며 임금을 사모하였다. 그는 단종이 죽자 삼년상복을 입었고, 이후  고향 원주에 돌아와 은거했다. 그는 반드시 동쪽을 향해 앉고, 누울 때는 반드시 동쪽으로 머리를 두었는데, 단종의 장릉(莊陵)이 자기 집의 동쪽에 있기 때문이었다. 

김일손과 남효온을 만난 원호는 탄세사(歎世詞)를 읊었다. 단종의 억울함에 분노하여 백이숙제처럼 살겠다는 다짐이었다.  

저 동쪽 언덕 바라보니
솔잎만 푸르도다
그 솔잎 따다 찧어서 주린 배를 채운다.
아득한 저 쪽 하늘 바라보니   
흙빛 같은 암울함이여 구름이 오색 빛을 가리누나
아, 백이숙제 아득히 멀어 벗할 수가 없어라 
수양산에서 푸른 풀 뒤적이며 공연히 헛손질하네.
세상이 모두 의리를 잊고 녹봉을 쫒는다 해도 
나는 홀로 몸을 깨끗이 한 채 살리라. 
18세의 청년 김일손은 북받쳤다. 그는 무항(원호의 호)의 탄세사에 화답하였다.   

원무항의 탄세사에 삼가 화답하다. (신축년 1481)

한강물은 도도히 흘러 흘러가고  
영월의 산은 푸르고 푸르러라
소쩍새 잠깐 우는 소리에도  
시름하는 이의 애간장이 끊기네요
서리가 대지를 덮으니 울창한 숲 빛깔이 변하고
구름이 하늘을 가리니 훤한 해도 빛을 잃었네
그나나 풍채가 장대한 사람(원호를 가리킴)이 여기에 있어  
양지 바른 산에 홀로 서 있구나.
아, 당신께선 훌쩍 떠나 평생 후회하지 않으시니 
아아 나 또한 따르고 싶어 서성댑니다. 

(김일손 지음 · 김학곤 외 1인 옮김, 탁영선생문집, 2012, p 382-383 ; 
이종범 지음, 사림열전 2 , 2008, p 347-348)

한편 원호는 백호 임제(林悌 1549∼1587)가 1576년에 지은 한문 소설 『원생몽유록(元生夢游錄)』에서 주인공 원자허(元子虛)로 나온다. 

임제는 조선 시대 최고의 풍류객이다. 그는 35세 때 평안도 도사로 부임하러 평양으로 가는 길에 명기(名妓) 황진이를 만나러 송도(지금의 개성)을 들렀는데 그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임제는 닭 한 마리와 술 한 병을 가지고 황진이 묘에 들러 관복을 입은 채로 술잔을 올리고 추도시를 읊었다.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웠는다.
홍안(紅顔)은 어디 두고 백골(白骨)만 묻혔나니.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퍼하노라.

양반 신분에 천민인 기생의 무덤 앞에서 예를 갖추었으니 얼마나 진보적인 로맨티스트인가? 그런데 이것이 문제가 되어 그는 조정으로부터 비방을 받았다. 

다시 『원생몽유록』으로 돌아가자.  『원생몽유록』은 세조 때 사육신의 비극을 현실–꿈–현실의 형식으로 구성한 소설이다. 

“원자허는 어느 가을밤에 꿈을 꾸었다. 항우가 의제를 죽인 장사(長沙)의 언덕에서 박팽년, 성삼문, 하위지, 이개, 류성원 등이 단종을 모시고 모여 앉아 강개시(慷慨詩)를 화답하는데, 복건자(남효온을 말함)와 원자허도 비통한 어조로 시를 읊었다. 이때 무인 유응부가 뛰어들어, 썩은 선비들과는 대사(大事)를 도모할 수 없다고 탄식하며 검무(劍舞)와 함께 비가(悲歌)를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 잠을 깼다.”

그런데 이 소설은 백호 임제와 관원 박계현(1524~1580)의 만남과 관련이 있다. 1575년에 임제는 왜구의 침입 소식을 듣고 속리산에서 나주로 내려와 전라도 관찰사 박계현을 만났다.

한편 박계현은 1576년에 판서가 되어 서울로 올라갔는데, 6월에 경연에서 “성삼문은 참으로 충신입니다. 남효온이 지은 『육신전』을 보면 상세한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선조에게 아뢰었다. 선조는 즉시 『육신전』을 읽어보고 크게 놀라 하교하기를, “엉터리 같은 말을 많이 써서 선조(先祖)를 모욕하였으니, 『육신전』을 모두 찾아내어 불태우겠다. 이 책에 대해 말하는 자의 죄도 다스리겠다”고 하였다.(선조수정실록 1576년 6월 1일)

이런 상황에서 임제는 『원생몽유록』 소설로 세조의 왕위찬탈을 비판하고 정치 권력의 모순을 폭로하여 역사 기억 운동을 전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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