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호 임제의 원생몽유록 (2)

전남 나주시  백호문학관 내부
전남 나주시 백호문학관 내부

백호 임제(林悌)의 「원생몽유록(元生夢遊錄)」을 계속 읽어보자.

술이 몇 잔 돌았을 때 임금(단종)이 술잔을 잡고 목메어 흐느끼며 여섯 사람을 돌아보고 말했다. 

“경들은 어찌 각각 자신의 뜻을 말하여 원통함을 서술하지 않는가.” 

여섯 사람은 “성상께서 먼저 노래를 지으시면 신들이 이어서 이루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임금이 초연(愀然)히 옷깃을 바로잡고 원통함을 이기지 못하며 노래했다. 

강 물결 오열하며 끝없이 흐르니      江波咽咽兮流無窮
나의 한 길고 긺이 강물과 같구나     我恨長長兮與之同
살아서는 제후의 나라 차지했더니     生有千乘
죽어서는 외로운 혼백이 되었도다     死作孤魂
신나라 왕망은 거짓 임금이고         新是僞主

신나라(서기 9∽23)는 전한(前漢) 말기에 왕망(王莽)이 한나라 황실을 찬탈하여 세운 나라이다. 

의제는 바로 겉으로 높임일세         帝乃陽尊 

초나라 패왕(楚覇王) 항우(項羽)가 초 회왕(楚懷王)의 손자 심(心)을 거짓으로 의제(義帝)로 세웠다. 그리고 조금있다가 의제를 살해했다.  
옛 나라의 신하와 백성들     故國臣民
모두 초적에게 들어가니      盡輸楚籍

초적(楚籍)은 초(楚)나라 항우(項羽)를 말한다. 적(籍)은 항우의 이름이다.

육칠 명 신하가 함께하여     六七臣同
혼백이 겨우 의탁할 수 있네  魂庶有託

오늘 저녁이 어떤 저녁인가   今夕何夕
강가 누각에 함께 올랐구나   共上江樓
물결 빛과 달빛은            波光月色
내 마음 근심케 하고         使我心愁
슬픈 노래 한 곡조에         悲歌一曲
천지는 아득하기만 하네      天地悠悠

임금의 노래가 끝나자, 다섯 사람이 각각 7언 절구 한 수씩 읊었다. 

첫 번째 앉은 사람 박공(朴公 : 박팽년)이 읊었다. 

어린 임금 맡을 만한 재주가 아님을 통한하니 深恨才非可託孤

『논어』  ‘태백(泰伯)’ 편에 이런 글이 나온다. 

증자(曾子)가 말했다. 

“6척의 어린 임금을 맡길 만하고, 사방 100리의 나라 운명을 부탁할 만하며〔可以託六尺之孤 可以寄百里之命〕 나라의 위기를 눈앞에 두고 있으면서도 그 뜻을 빼앗을 수 없다면, 그는 군자다운 사람일까? 군자다운 사람이다.” 

정이천은 “절개와 지조가 이와 같으면 군자라고 할 만하다.”고 말했다. 
왕위가 바뀌고 임금이 욕되어 다시 목숨 버렸네   國移君辱更捐軀
이제는 쳐다보고 굽어보아도 천지에 부끄러우니   如今俯仰慙天地
당시에 일찍 스스로 도모치 못함을 후회하노라    悔不當年早自圖

사육신은 세조를 없애려고 모의했으나 거사 당일에 운검(雲劍)을 폐하고 또 세자가 참석하지 않아 일에 차질이 생겼다. 유응부가 그래도 결행하려 했으나 박팽년, 성삼문의 반대로 미루었다가 김질의 밀고로 거사가 실패하였다. 

두 번째 앉은 사람(성공 成公 : 성삼문)이 읊었다. 

선조의 고명 받아 은혜 입음이 융성하니   受命先朝荷寵隆
위험에 임하여 이 몸 버림을 아까워할까   臨危肯惜殞微躬
가련하다 일 지나서 이름 오히려 빛나니   可憐事去名猶烈
의를 취하고 인을 이룸이 부자가 같구나   取義成仁父子同

성삼문과 그의 부친 성승(成勝)은 두 사람 모두 사생취의(捨生取義)하고 살신성인(殺身成仁) 했다. 성승은 유응부과 같이 운검(雲劍)이었다. 

이어서 세 번째 앉은 사람(하공 河公 : 하위지)이 읊었다. 

굳센 절개가 어찌 작록 때문에 더럽혀지랴 壯節寧爲爵祿淫
 
하위지는 을해년(1455, 세조 1) 이후 벼슬하였지만 세조에게 받은 녹봉은 따로 한 방에 쌓아두고 먹지 않았다. 

충절 품고서 오히려 고사리 캘 마음 지녔네 含章猶抱采薇心

하위지는 백이(伯夷)와 숙제(叔齊)처럼 절의를 위해 죽으려 했다. 
백이와 숙제는 고죽국(孤竹國) 군주의 두 아들이다.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은나라를 정벌할 때에 무왕의 말고삐를 잡고서 만류했으나 듣지 않자, 주나라 곡식을 먹을 수 없다 하여 서산(西山), 즉 수양산(首陽山)에 들어가서 고사리를 캐 먹으며 숨어 살다가 굶어 죽었다. 

사마천의 『사기』 ‘백이열전(伯夷列傳)’에 나온다. 

이내 몸 한 번 죽음이야 어찌 말할 것 있으랴  殘軀一死何能說
당년에 임금께서 침땅에 계심을 통곡하노라    痛哭當年帝在郴

단종이 영월에 유폐되었다가 죽임을 당한 것을 통곡한다는 것이다. 침(郴)은 중국 호남성 침현(郴縣)으로, 항우가 의제(義帝)를 이곳으로 파천시킨 뒤에 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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