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효온, 소릉 복위를 상소하다.

광릉 안내도(세조와 정희왕후 능)
광릉 안내도(세조와 정희왕후 능)

 

1478년(성종 9년) 4월 15일, 남효온 상소의 마지막 부분은 소릉 복위 였다. (성종실록 1478년 4월 15일 3번째 기사)

“여덟째로, 소릉(昭陵)의 능호를 복위하는 것입니다. (소릉은 문종 비(妃)이자 단종의 모친 현덕왕후(顯德王后 1418∽1441) 권씨의 능이다.현덕왕후는 단종을 1441년 7월 23일에 낳은 후 하루 만에 산후통으로 23세에 운명하였다.)

신이 삼가 살피건대, 세조 대왕은 하늘이 준 용지(勇智)로써 일월(日月)같은 밝음을 가지시고 하늘과 사람의 도움을 얻어서, 큰 어려움을 깨끗하게 타개하여 집을 나라로 만들어서 종사(宗社)가 거의 위태롭다가 다시 안정되었고 이 백성이 이미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는데, 뜻밖에 다스리는 교화가 바야흐로 흡족하게 되자 재앙이 그 틈을 일어가서 병자년

(세조 2년 1456년)에 사육신(死六臣) 사건으로 중외(中外)가 경동(驚動)하여 우리 사직이 거의 기울었으나 곧 베어 없앴습니다.

그런데 남은 화(禍)가 소릉(昭陵)에 미쳐서 20여 년 동안 폐함을 당하여 원혼(冤魂)이 의지할 바가 없을 것이니, 하늘에 계시는 문종(文宗)의 영(靈)이 홀로 제사를 받기를 즐겨했겠습니까?

신은 배우지 못하고 천박하여, 어떤 일이 어떤 상서로움을 부르고 어떤 일이 어떤 재앙을 부르는 것인지 진실로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상고하면 내 마음은 바로 하늘의 마음이며 내 기운은 바로 하늘의 기운이므로, 사람의 마음과 사람의 기운에 순응함은 바로 하늘의 마음과 하늘의 기운에 순응하는 것이고, 사람의 마음과 사람의 기운에 순응하지 아니하는 것은 바로 하늘의 마음과 하늘의 기운에 순응하지 아니하는 것이니, 하늘의 마음과 하늘의 기운에 순응하지 아니함은 재이를 내리게 하는 소이(所以)입니다.

신의 어리석고 망령된 생각으로는, 소릉(昭陵)을 폐한 것은 사람의 마음에 순응하지 아니한 것입니다. 만약 말하기를, ‘이미 허물어뜨린 신주(神主)를 다시 종묘(宗廟)에 들이는 것은 예(禮)에 부당(不當)하다’면, 마땅히 존호(尊號)를 추복(追復)하고 다시 예장(禮葬)하기를 일체 선후(先後)의 예(禮)와 같게 하여, 이로써 민심과 천견(天譴) 그리고 조종(祖宗)의 뜻에 답하면 어찌 아름답지 아니하겠습니까?

만약 ‘서인으로 폐한 지 3대(代)를 지나 조종(祖宗)께서 거행하지 아니한 것을 이제 추복하여 예장하는 것은 불가하다.’고 하신다면, 세조께서 무인년(1458년)에 내린 훈계(訓戒)로써 이를 밝히겠습니다.

세조께서 예종께 훈계하시기를, ‘나는 어려운 시대를 당하였으나 너는 태평한 시대를 만날 것이다. 만약 나의 행적에 국한되어 변통할 줄을 알지 못하면 이는 나의 뜻을 따르는 바가 아니다.’라고 하셨습니다.

무릇 일은 행할 만한 때가 있고 행하지 못할 때가 있는데, 어찌 전대(前代)에 구애되어 변통함을 쓰지 아니하겠습니까?

세조 능
세조 능

 

엎드려 원하건대 전하께서 유의하여 채택하시면, 어찌 재이만 그치게 할 뿐이겠습니까? 장차 신인(神人)이 화합하고 천지가 안정되며 만물이 육성되어서 모든 복된 물건이 이르지 아니함이 없을 것입니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천심(天心)이 인군(仁君)을 사랑하여, 재이를 보이는 것은 그 덕(德)을 굳게 하려는 소이(所以)이며, 화(禍)를 보이는 것은 그 뜻을 삼가게 하려는 소이이다.’라고 하였으니, 전하께서 그 덕을 굳게 하고 그 뜻을 삼가면 오늘의 흙비가 내일의 감로(甘露 단 이슬) ·예천(醴泉 단물이 솟는 샘)이 될 것입니다.

신은 여염(閭閻)의 한 포의(布衣 : 벼슬 없는 사람)이므로 궁궐이 아홉 겹이라서 말을 올릴 길이 없었는데, 천재일우(千載一遇)의 때를 만나 특별히 구언(求言)의 조서(詔書)를 내려서 재이를 막을 방법을 듣고자 하시니, 마음속으로 기뻐서 많은 말이 광참(狂僭)됨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렇게 된 것은 또한 가의(賈誼 : 전한(前漢) 때의 문장가로 상소가 유명함)가 통곡하고 눈물을 흘린 뜻이며, 전석(田錫 송나라때의 간의(諫議) 대부)이 조석(朝夕)으로 근심한 마음입니다.

(...) 돌아보건대 신의 원하는 바는 창해(滄海)에 넓음을 더하고 일월(日月)에 빛을 더하게 하고자 하는 것이니 구언의 길을 넓힌다면 다행이겠습니다. 만 번 죽음을 무릅쓰고 아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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