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 남효온의 상소가 문제가 있어도 문책하지 않다.

창덕궁 희정당

 

1478년 4월 15일에 성종은 성균관 유생 남효온이 올린 상소를 승정원에 보냈다. 도승지 임사홍이 아뢰었다.

"소릉(昭陵 단종 모친의 늘)을 복위하라는 것은 신하 된 자로서 거론할 수 없는 것인데 지금 남효온이 마음대로 거론하였으니 옳지 못합니다."

이러자 성종이 전교하였다.

"소릉을 이제 다시 논의함은 부당하다.“

이어서 임사홍이 아뢰었다.

"이 상소는 이심원의 상소와 같습니다. 이심원이 경연(慶延)과 강응정을 천거하였는데 남효온도 경연을 추천하였습니다. 신이 삼가 듣건대, 남효온의 무리에 강응정·정여창·박연 등과 같은 이가 있습니다. 이들은 한 무리를 만들어서 강응정을 추숭(推崇)하여 공자(孔子)라 하고 박연을 가리켜서 안연(顔淵)이라고 하며, 항상 소학(小學)의 도(道)를 행한다고 하면서 서로 이론(異論)을 숭상하니, 이는 진실로 폐풍(弊風)입니다. 한(漢)나라에는 당고(黨錮)가 있었고, 송(宋)나라에서는 낙당(洛黨)·촉당(蜀黨)이 있었습니다. 이 무리들은 예전에 미치지는 못하나 족히 치세(治世)에 누(累)가 되므로 점점 커지게 할 수 없습니다. 또 포의(布衣)로서 국가의 정사를 논하고 있으니 더욱 옳지 못합니다."

임사홍은 4월 15일의 남효온의 상소가 종친 이심원이 4월 8일에 올린 상소와 맥을 같이 한다고 보았다. 그러면서 남효온을 비롯한 성균관 유생들이 『소학』을 읽고 그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행동을 이론(異論)을 숭상하는 나쁜 풍습으로 몰아세웠다.

『소학』을 이단(異端) 서적으로 몰아가는 임사홍의 말을 『소학집주』를 편찬한 선조 때의 율곡 이이가 들었다면 놀라 자빠졌을 것이다. 그만큼 조선 초기 훈구파들은 꽉 막혀 있었다.

심지어 임사홍은 소학을 공부하는 유생들을 ‘당고(黨錮)’에 견주어 엄벌에 처하라고 아뢰었다. ‘당고의 화’는 중국 후한(後漢)의 환제(桓帝)·영제(靈帝) 때 정권을 농단한 환관(宦官)들이 정치개혁을 요구하던 진번·이응 등 청절(淸節)한 학자들을 종신 금고에 처하여 벼슬 길을 막아 버린 사건을 말한다. 그런 참변을 벌이고 난후에 후한이 멸망의 길로 들어섰다는 것이 정설이다. 올곧은 선비를 죽임으로서 나라는 기울었던 것이다.

아울러 임사홍은 유생들을 송나라의 낙당과 촉당 무리로 보았다. 중국 북송(北宋) 철종 때 심한 정쟁(政爭)이 있었던 당파로, 낙당은 정이(程頤)의 일파이고, 촉당(蜀黨)은 소식(蘇軾)의 일파를 가리킨다.

이러자 성종이 다시 전교하였다.

"구언(求言) 명령이 있었으니 말이 비록 올바르지 못하였을지라도 어찌 처벌할 수 있겠는가?"

4월 16일에 성종은 경연(經筵)에 나아갔다. 강(講)을 마치자, 성종은 남효온의 상소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동부승지 이경동은 남효온과 이심원이 붕당(朋黨)하였다고 처벌을 청했다. 이러자 성종은 "이를 붕당이라고 하는 옳지 못하다. 내버려두고 국문하지 않는 것이 옳다."라고 말했다.

(성종실록 1478년 4월 16일 2번째 기사)

4월 20일에 성종은 경연에 나아갔다. 강(講)을 동지사(同知事) 서거정이 남효온을 처벌하라고 아뢰었다.

성종 : "남효온은 말이 지나쳤다. 소릉(昭陵)을 다시 세우는 일은 신하가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좌승지 손순효 : “남효온의 상소에 경연(慶延)을 경제(經濟)의 재주라고 말하였고, 이심원의 상소에는 경연을 사직(社稷)의 기국(器局)이라고 말하여 두 상소의 말이 서로 같으니, 일당(一黨)인 듯합니다.”

성종 : "승정원에서 국문(鞫問)하기를 청하였으나 내가 이미 구언(求言)하였기 때문에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만약 국문하여 죄를 주면 신하가 감히 말하지 못하여 하의상달(下意上達)할 길이 없을까 두렵다."

영사(領事) 한명회 : "소릉을 다시 세우는 일은 더욱이 신하가 감히 말하지 못할 바입니다. 청컨대 국문하소서."

성종 : "내가 구언을 요청하고서 국문하는 것이 옳겠는가?"

대사간 안관후 : "전하께서 이미 구언의 전교를 내렸으므로, 말이 옳은 것은 쓰고 옳지 못한 것은 버리는 것이 옳은데, 만약 국문하면 신하들이 감히 말하는 자가 없을 것이니 남효온의 말을 죄주는 것은 불가(不可)합니다."

성종 : "옳다.“

(성종실록 1478년 4월 20일 2번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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