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습, 남효온에게 답시를 보내다 (2)

북한산 중흥사 전경
북한산 중흥사 전경

 

김시습이 남효온에게 보낸 「추강의 시에 화운하여」 시 4 수중 제3수와 제4수를 계속 읽어보자.

제3수

듣건대 그대가 근력을 수고롭혀 聞子勞筋力

장래에 큰일을 하려한다 들었소만, 方將大有爲

부디 운각의 책들을 모두 읽어 須窮芸閣袠

부디 계수나무 꽃계절을 저버리지 마시게. 莫負桂香期

김시습은 남효온에게 운각의 책 즉 교서관에서 간행하는 책들을 모두 읽어 과거에 응시하라고 조언한다.

계향기(桂香期)는 계수나무 꽃향기가 풍기는 계절, 즉 과거 보는 시절이란 뜻이다. 예부터 과거에 합격하는 것을 계수나무 가지를 꺾는다고 하였다. 문득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 선수의 모습이 생각한다. 그도 올림픽에 우승하여 월계관을 썼다.

고기잡이 배는 낙조에 흔들리고 漁艇搖殘照

갈매기 나는 파도는 넘실대누나 鷗波漾冸凘

찬방(요사)에는 교분 깊은 벗들이요 贊房交契友

방에는 지란(지초와 난초)이 가득하네 滿室是蘭芝

지란지교(芝蘭之交)는 「지초(芝草)와 난초(蘭草) 같은 향기(香氣)로운 사귐」이라는 뜻으로, 「벗 사이의 고상(高尙)한 교제(交際)」를 이르는 말인데, 출전은 『명심보감(明心寶鑑)』이다.

『명심보감(明心寶鑑)』 「교우(交友)」편에,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착한 사람과 같이 살면 향기(香氣)로운 지초(芝草)와 난초(蘭草)가 있는 방안에 들어간 것과 같아서 오래도록 그 냄새를 알지 못하나 곧 더불어 그 향기(香氣)가 동화(同化)된다…」라 하였다.

중흥사 안내판
중흥사 안내판

 

제4수

세상 사람 어찌나 사리에 어두운지 世人何貿貿

비둘기가 대붕을 비웃듯 하는구려 斥鷃笑南爲

행업을 만약 먼저 갈고닦는다면 行業如先勵

공명은 저절로 기약함이 있으리라 功名自有期

척안(斥鷃)이라는 작은 비둘기는 하늘 높이 구만리나 날아오른 뒤 남명(南冥)으로 옮겨가는 대붕(大鵬)을 보고 비웃으며 말했다.

“저 새는 또 어디로 가는가. 나는 펄쩍 날아올라 몇 길도 오르지 못하고 내려와서 쑥대 사이를 날아다니매 이 또한 지극히 즐겁거늘, 저 새는 또 어디로 가는가.”

『장자』 소요유 편에 나온다.

양춘이 화창하여 땅기운 떠오르고 陽和浮土脈

햇볕이 따뜻하여 봄물이 불어나오 日暖泛春澌

영주(瀛洲)에 오름은 지척으로 가까우니 憑余莫討芝

나에게 의지하여 지초랑 찾지 마소 憑余莫討芝

등영주(登瀛洲 전설상 신선이 산다는 영주산에 오름)란 공명을 이룬다는 의미이다. 김시습은 자신처럼 지초가 되지 말라고 타이른다. 공명을 꼭 이루라고 당부한다.

이어서 김시습은 시 말미에 별지를 붙였다.

“선생이 최근 두소릉(杜少陵)의 시를 읽고 있구려. 부쳐준 시구 속에 두보(杜甫 712~770)의 성벽(性癖)이 나타나 있으니 말이오.

내가 『황정내경경』을 보관하여 돌려주지 않은 것은, 오랫동안 빌려 보고 돌려보내지 않아 선생으로 하여금 애타게 기다리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이 지난해에 물건을 보내며 함께 보낸 편지가 책 상자 속에 뚜렷이 남아 있으니, 내가 어찌 잊었겠습니까?

해가 바뀌고 달이 바뀌었어도 돌려주지 않는다고 하신 꾸짖음이 우레처럼 무섭구려. 언제 만나서 무릎 웅크리고 크게 껄껄 웃어 봅시다.”

두보는 “나의 성벽은 아름다운 시구를 몹시 좋아하여, 시어(詩語)가 사람을 놀라게 하지 않으면 죽어도 그만두지 않노라.〔爲人性癖耽佳句 語不驚人死不休〕”라고 말했다.

그는 당나라 현종 때 일어난 안록산의 난을 겪으며 나라와 백성에 대한 근심을 시로 표출했다. 전란의 고통에 시달리는 백성들의 처참한 모습을 그린 「삼리(三吏) ;신안리(新安吏), 석호리, 동관리」와 <삼별(三別); 신혼별(新婚别), 수노별, 무가별>시가 그것이다.

또한 두보의 시 ‘춘망(春望)’은 절창이다.

나라는 망하여도 산하는 남아 있어

성 안에 봄이 오니 초목만 무성하구나.

시국을 생각하니 꽃도 눈물을 뿌리게 하고

이별을 한탄하니 새도 마음을 놀라게 한다.

그는 글자 하나하나를 다듬고 또 다듬어 구절을 응축하고 대구와 억양을 공들여 맞춤으로써 시의 율격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후세 사람들은 두보를 ‘시성(詩聖)’, 그의 시를 ‘시사(詩史)’라고 일컬었다.

한편 김시습이 이 당시에 쓴 7언 절구 「수락산 성전암」에도 ‘황정경’이 나온다.

산속에 나무 찍는 소리 들리면

숨었던 새들 나와 한낮을 즐기네

골짜기 노인 바둑 두고 간 뒤

나무 그늘로 책상 옮겨 황정경을 읽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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