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섭 그는 누구인가?...재정경제부 세제실장·국세청장·관세청장 지낸 조세분야 그랜드슬램 유일, 행자부·건교부장관에 청와대수석, 재선 국회의원 등 화려한 이력에도 ‘정치공학’에 2번 패배 딛고 압승

[한국농어촌방송=정양기 기자] 이용섭(66) 전 대통령직속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장관급)이 13일 치러진 6.13 지방선거 개표결과 득표율 84.07%인 57만3995표를 얻어 압도적인 표차로 광주광역시장에 당선됐다.

이는 2010년, 2014년에 이은 세 번째 도전 끝에 전국 광역 시도지사 중 최다 득표율로 ‘일자리 경제시장’에 몰표를 받아 감격적인 승리를 거뒀다.

이용섭 광주광역시장 당선자가 13일 밤 지지자들과 환호하고 있다(사진=정유정 기자)

"광주발전으로 결초보은" “정의롭고 풍요로운 광주, 200만 광주 르네상스시대 열 것”

이용섭 광주시장 당선자는 13일 "참으로 길고도 먼 여정이었다"며 "광주 발전을 염원하는 시민들과 부족한 저를 믿고 선거기간 내내 함께 해주신 지지자 등께 감사하다"며 "낮은 자세로 시민들을 섬기며 광주발전으로 결초보은하겠다"고 당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선거기간에 약속했던 떠나는 광주에서 사람과 돈과 기업이 몰려드는 200만 광주 르네상스 시대를 열어 광주를 대한민국의 중심도시로 우뚝 세우겠다"며 "'정의롭고 풍요로운 광주'를 슬로건을 내걸고 광주시정을 이끌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세 번 만에 잡은 기회를 통해 광주시민들이 정신적 가치와 물질적 부를 함께 높일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이를 통해 시민들의 삶이 바뀌고 행복한 광주를 만드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고 말했다.

이 당선자는 민선 7기 운영 방식에 대해 "광주형 일자리 모델을 성공시켜 그 성과를 전국으로 확산,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정책 성공을 이끌겠다"며 "이를 위해 공약으로 발표했던 '일자리가 넘쳐나는 광주 10대 공약'을 적극 추진하겠다" 밝혔다.

‘총리급 광주시장 이용섭’, 국회 인사청문회 3번 통과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도 있다” 유행어의 장본인...조세분야 그랜드슬램, 장관 3번, 청와대 수서비서관, 국회의원 2번,

이용섭 당선자는 행정고시 출신으로 김대중 정부에서 노무현 정부에 걸쳐 재정경제부 세제실장·국세청장·관세청장을 모두 지낸 조세분야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유일한 인물이다. 국세심판원장까지 지내 4관왕을 달성했다.

또한 노무현 정부 때는 행정자치부·건설교통부 두 번의 장관과 청와대 혁신관리수석을 지낸 혁신전문가로 정평이 나 있으며, 광주 광산을에서 재선 국회의원을 역임하고 문재인 대통령직속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장관급)에 발탁되어 문재인 정부 제1 국정과제인 일자리정책 로드맵을 완성해 3번째 장관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이 당선자는 국회 인사청문회를 3번이나 받아 문제없이 통과해 도덕성·청렴성과 전문성을 인정받음으로써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도 있다‘라는 세간 유행어의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런 화려한 이력 때문에 그동안 개각 때마다 경제부총리와 호남 출신 총리로 하마평에 오르기도 하면서 이번 광주광역시장에 전국 최다득표율로 당선됨으로써 ‘총리급 이용섭 광주시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시련은 있어도 포기는 없다”...이용섭의 ‘오뚝이’ 정치역정

그러나 이용섭 당선자는 오늘이 있기 까지 참으로 힘든 정치적 역경과 시련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이 당선자는 33년간의 공직생활을 마치고 풍부한 행정경험을 자산으로 2008년 4월 18대 총선에서 광주 광산구(을)에 민주당의 공천을 받아 당선돼 국회에 입성했다.

이후 2년 만에 치러진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광주시장에 출마했다. 이때 이 당선자의 저서 ‘연어가 민물로 돌아온 까닭은?’은 잔잔한 감동을 일으킨 바 있다.

그러나 이 당선자는 강운태 후보와 맞붙은 민주당 당내 경선에서 상대 캠프 측의 불법적인 경선방해 행위로 인해 0.45%포인트 차이로 ‘연어의 꿈’이 탈취당하고 말았다. 중앙당에 불법행위로 인한 경선결과에 대한 이의 제기를 했지만 최고위원회의 격론 끝에 당 내분 우려를 이유로 기각 당하는 시련을 겪어야 했다.

이 당선자는 와신상담 끝에 2012년 19대 국회의원 선거에 광주 광산구(을)로 민주당 공천으로 출마해 재선에 성공했다. 민주당 대변인과 정책위 의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2년 후인 2014년 6.4 지방선거에 두 번째 도전한 ‘이용섭 연어의 꿈’은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안철수의 새정치신당과 합당해 새정치민주연합을 만든 후, 안철수·김한길 공동대표가 광주시민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현 윤장현 시장을 전략공천한데 반발해 탈당, 무소속으로 국회의원 사퇴라는 배수진을 치고 당시 강운태 시장과 후보 단일화에 나섰지만 또다시 실패하는 불운을 겪었다.

이 당선자는 2년 뒤인 2016년 20대 총선에서 당시 문재인 대표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의 요청에 의한 영입 케이스로 복당해 총선 공동선거대책본부장, 비상대책위원, 선거대책위원, 그리고 총선정책공약단장 등 중책을 맡았고 총선 결과 123석의 의석을 확보해 더불어민주당을 원내 제 1당으로 16년 만에 여소야대 구도를 이끌어낸 일등공신이 됐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광주 광산구(을)에 도전했지만 호남지역에 몰아닥친 신생 ‘국민의당 녹색돌풍’을 견디지 못하고 국민의당 권은희 의원에게 지면서 3선 국회의원에 실패했다.

그 후 이 당선자는 지난해 5월 19대 대통령선거에서 문재인 후보의 비상경제대책단장과 경제특보라는 중책을 맡아 문재인 정부 탄생의 1등 공신으로 부상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직속 일자리위원회 초대 부위원장(장관급)으로 발탁되어 문재인 정부 일자리 5년 로드맵을 완성한 바 있다.

이번 6.13 지방선거에 세 번째로 광주시장에 도전한 이 당선자는 치열한 민주당 당내 경선에서 지난 5월 20일 1차 경선서 과반이 넘는 지지를 얻어 더불어민주당 광주시장 후보로 확정됐고 6월 13일 광주시민의 압도적인 지지로 선택을 받아 민선 7기 광주시장으로 당선됐다.

연어가 민물로 돌아온 까닭은?...마침내 이룬 ‘이용섭 연어의 꿈’은 이제 시작된다.

이용섭 당선자가 2010년 1월 펴낸 ‘연어가 민물로 돌아온 까닭은?’이란 저서에서 ‘이용섭 연어의 꿈’을 이야기 했다.

이용섭 당선자의 저서

“연어는 민물에서 태어나 원대한 꿈을 안고 바다로 나가 살다가 알을 낳을 때가 되면 수 천 킬로미터를 거슬러 헤엄쳐 와서 태어난 민물에 알을 낳고 죽는다. 그런 면에서 연어는 자기가 태어난 고향의 강을 풍요롭게 하는 보은의 상징이다. 연어의 삶이 제가 걸어온 길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해왔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 당선자는  “나, 이용섭은 바다에서 돌아온 연어다. 연어가 만물로 돌아온 까닭은…꿈이 있기 때문이다. 고향 광주에서 풍족한 미래를 잉태하고 낳고 싶은 게 광주를 떠날 때 부터 품었던 내 꿈이다. 고향 광주에서 풍족한 미래를 잉태하고 낳고 싶은 게 광주를 떠날 때부터 품었던 내 꿈이다. 치열했던 타향살이는 경험과 인맥, 전문성 등의 자산을 일궈냈다. 나는 이 자산을 광주의 미래에 투자할 것이다. 바다에서 얻은 힘과 지혜를 내 모친의 자갈밭에 풀어 놓고자 한다.”고 이용섭 당선자는 연어가 되고자 간절한 꿈을 꾸었다.

그러나 냉혹한 정치판은 ‘이용섭 연어의 꿈’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2010년, 2014년 두 번에 걸친 시련과 역경은 ‘이용섭 연어’에 많은 눈물과 상처를 남겼지만 더 단련되고 커져만 갔다.

맹자는 ‘고자하(告子下)편’에서 ‘필선고기심지(必先苦其心志)’라고 했다. “앞으로 큰 일을 할 사람에게는 그 일을 감당해 갈 만한 굳은 의지를 갖게 하기 위해 먼저 심신단련에 필요한 마음과 생각을 고생을 시킨다”는 뜻이다.

그래서 일까? 이 당선자는 이번 세 번째 도전 끝에 전국 광역 시도지사 중 최다 득표율로 ‘일자리 경제시장’의 비전에 광주시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감격적인 승리를 거뒀다

연어가 되어 고향 광주에 돌아온 ‘이용섭 연어의 꿈’은 이제 또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해 무등(無等)을 가슴에 안고 대한민국과 세계의 한 복판에 서 있다.

함평 농부의 아들 흙수저 이용섭...광주를 안고 대한민국, 세계를 향하다

이용섭 당선인은 1951년 전남 함평군 대동면 향교 출신으로 농사꾼의 6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70년 전남대학교 무역학과에 입학했지만 이 당선인은 여전히 학교와 집을 오가며 농사를 짓는 학생 농사꾼 생활을 했다.

이 때문에 자신을 '흙수저' 출신이라고 소개하는 이 당선인은 대학교 1학년 생활을 마치기 전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대학 2학년 때부터 행정고시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1973년 대학 4학년에 재학 중인 상태에서 제14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입문했다. 당시 이 당선인은 전남대학교 재학생 중 최초로 고시에 합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당선자는 나비축제로 유명한 함평의 학다리고와 전남대 무역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미시간대 경제학 석사와 성균관대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학 재학 시절 행정고시 14회에 합격해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시골 고등학교-지방대-전라도 출신이라는 악 조건을 실력과 노력으로 뛰어넘었다

이후 재정경제부 세제실장, 관세청장, 국세청장, 국세심판원장 등을 역임하면서 우리나라 조세분야의 최고 정책통이 되었고, 노무현 참여정부에서 대통령비서실 혁신관리수석비서관, 행정자치부 장관, 건설교통부 장관을 지냈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세 번이나 문제없이 통과하며 도덕성과 청렴성, 전문성을 인정받았다.

33년간의 공직생활을 끝내고 2008년에는 정치에 입문 광주 광산을에서 18대, 19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이 당선자는 이후 문재인 대통령 대선캠프에서 정책통으로 맹활약했고, 지난해 5월 장미대선으로 정권교체 이후 대통령직속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다.

▲1951년 전남 함평 출생 ▲학다리고 ▲전남대 무역학과 ▲미국 미시간대 경제학 석사 ▲성균관대 경제학 박사 ▲행정고시 14회 ▲재정경제부 세제실장 ▲관세청장 ▲국세청장 ▲조세심판원장 ▲노무현 대통령비서실 혁신관리수석 ▲행정자치부 장관 ▲건설교통부 장관 ▲18·19대 국회의원 ▲민주당 대변인 ▲민주통합당 정책위의장 ▲문재인 대통령직속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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