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BS역사칼럼-길 위의 역사](2부 무오사화) - 20회 삼사(三司)가 연산군의 사초 열람에 반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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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S역사칼럼-길 위의 역사](2부 무오사화) - 20회 삼사(三司)가 연산군의 사초 열람에 반대하다
  • 김세곤 칼럼니스트
  • 승인 2018.12.11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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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어촌방송=김세곤 칼럼니스트] 1498년 7월13일에 연산군은 『실록』 열람에 대하여 전교하였다.

“홍문관(弘文館)·예문관(藝文館)에서 『실록』을 보는 것은 부당하다고 하였는데, 평시라면 이 말이 타당하다. 그러나 지금 큰일을 상고하려고 하는데 완강히 불가하다고 하니, 이는 반드시 어떤 사정(事情)이 있어서다. 의금부(義禁府)에 내리어 국문하도록 하라.” 하였다.

이러자 대간(臺諫 사헌부와 사간원)이 합사(合司)하여 아뢰기를,

“예로부터 임금은 사초(史草)를 보아서는 아니 됩니다. 홍문관·예문관은 직책이 사관(史官)을 겸대하였으므로 주상께서 사초를 보시지 못하게 하는 것이 바로 그 직분이오니, 국문이 온당치 않습니다.” 하였다. 그러나 연산군은 듣지 않았다.(연산군일기 1498년7월13일 4번째기사)

그랬다. 실록과 사초를 담당한 춘추관의 관직은 전임(專任)이 하나도 없고, 모두 겸직하였는데 예문관의 봉교 2명, 대교 2명, 검열 4명 등 8명은 춘추관의 기사관(記事官)을 겸하였다. 홍문관(弘文館)의 관원도 사관을 겸직하였다. 이런 사관들이 사초나 실록을 보라고 할 리 없었다.

7월14일에 대간이 아뢰기를, “홍문관·예문관 관원을 가두고 국문하는 것은 부당하옵니다.”하였으나, 연산군은 듣지 않았다. (연산군일기 1498년 7월14일 1번째 기사)

이제 김일손의 사초 사건은 2라운드로 접어들었다. 연산군과 삼사(홍문관 · 사헌부 · 사간원)가 사초 열람을 두고 한 바탕 힘겨루기를 한 것이다. 홍문관과 예문관은 사초의 내용보다는 국왕은 실록을 열람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좀 더 중시했고, 대간 또한 이에 찬동했다.

김일손의 사초가 세조의 치부를 드러냈음에도 불구하고 임금은 사초를 볼 수 없다는 원칙을 고수한 삼사의 자세는 연산군 입장에서 보면 김일손 등을 감싸려는 의도로 해석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여기서 연산군은 사초사건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발언을 남겼다. 삼사의 행동에는 “반드시 어떤 사정(事情)이 있기 때문”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일단 ‘어떤 사정’이라고 모호하게 표현했지만 이런 연산군의 의심은 며칠 후 좀 더 분명히 실체를 드러나면서 사화가 확대되었다. 1)

한편 1494년 12월24일에 ‘도학군주’ 성종(1457∼1494, 재위 1469∼1494)이 창덕궁 대조전에서 붕어했다. 의경세자(1438∼1457 세조의 장남, 나중에 덕종으로 추존)의 둘째 아들로 12세에 왕위에 올라 25년간 재위하다가 37세의 젊은 나이에 승하하였다.

사진 20-1 창덕궁 대조전

 

사진 20-2 대조전 안내판

이로써 연산군(1476∼1506, 재위 1494∽1506) 시대가 열렸다. 그런데 연산군은 즉위하기도 전에 삼사와 충돌이 일어났다. 수륙재(水陸齋) 실시를 둘러싼 갈등이었다. 수륙재는 불가(佛家)에서 물과 육지의 여러 귀신에게 음식을 차려 주고 경을 읽는 제례이다. 조선 왕실은 태조 때부터 왕실은 쾌유(快癒), 장수(長壽), 명복(冥福)을 비는 등의 목적으로 수륙재를 지내왔고. 선왕을 추모하는 제례로 지냈다. 2)

성종이 붕어한 다음날인 12월25일에 예조판서 성현은 수륙재의 시행여부를 물었다. 연산군은 성종 비 정현왕후에게 판단을 구하였고, 정현왕후는 관례에 따라 재를 지내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대행 대왕께서 불교를 좋아하지는 않으셨으나, 재를 지내지 말라는 유교(遺敎 임금의 유언)가 없었으며, 또 이전의 조종조(祖宗朝)에서 다 행하셨으니 폐기할 수 없다.”(연산군일기 1494년 12월25일 4번째 기사)

이러자 삼사(三司)는 유교적인 의례가 아니라는 이유로 즉각 반대했다.

12월26일에 사헌부 장령 강백진과 사간원 정언 이의손은 대행대왕이 불교를 좋아하지 않으셨는데 수륙재를 지내는 것을 온당치 못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연산군은 "수륙재의 거행은 조종조로부터 이미 그러하였고, 대행 대왕께서도 그만두라는 유명(遺命)이 없었으니 폐지할 수 없다."고 전교하였다.

이어서 홍문관 부제학 성세명 등이 서계(書啓)하기를, "대행 대왕을 위하여 불재(佛齋)를 거행하려고 홍문관으로 하여금 소(疏)를 지어 바치게 한다 하오니, 못내 놀랍습니다. 이는 효도를 다하는 도리가 아닙니다." 하였으나 역시 들어주지 않았다.

사진 20-3 홍문관 (일명 옥당), 창덕궁 내에 있다.

이어서 12월27일에 사헌부 장령 강백진과 사간원 정언 이의손이 불사(佛事)의 폐해를 아뢰었다. 연산군은 "대간(臺諫)이 여러 날 논계(論啓)하니, 경(卿 대신)들이 내가 좇을 수 없다는 뜻으로 타이르는 것이 어떠하오?" 하매, 윤필상 등은 감히 타이르지 못한다고 발뺌하였다. 대신들은 미온적 태도를 보인 것이다. (연산군일기 1494년 12월27일 2번째 기사)

아울러 홍문관 직제학 표연말·전한 양희지·응교 권주·부응교 홍한·부수찬 김감이 불재를 지내지 말 것을 서계하였지만 역시 듣지 않았다. 그런데 홍문관 수찬 손주가 아뢰기를, "신으로 하여금 재를 행하는 소문(疏文)을 지어 바치라 하시나, 신은 감히 명령을 받들지 못하겠습니다." 하였다. 왕명을 거역한 것이다. (연산군일기 1494년 12월 27일 6번째 기사)

12월28일에도 수륙재 논의가 계속되었다. 홍문관 대제학 어세겸이 아뢰기를, "관원(館員)이 모두 논계하기 위하여 대궐에 들어갔으므로, 대행대왕의 행장을 짓는 것이 늦어지기에 감히 여쭙니다." 하였다.

연산군은 "정승들에게 물으라."하매, 좌의정 노사신이 아뢰기를, "일에는 늦출 것과 서두를 것이 있습니다. 지금 재를 지내는 한 가지 일이 나라의 흥망에 직결된 중대한 일이라면 말하는 것이 옳겠으나, 선왕을 위하여 재를 지내는 것은 조종조의 고사(故事)이니 이것을 가지고 불교를 숭상하는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 그런데도 할 일을 버리고 대궐에 모여서 계속 논란하니, 신은 매우 그르다고 여기며 이런 일은 대답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였다. 우의정 신승선(연산군의 장인이기도 하다)은 잠자코 말이 없다가 ‘나의 생각도 또한 노사신의 말과 같다.’고 말했다. 3)

그런데 노사신에 대한 사관의 평가는 신랄하다.

“사신(史臣)은 논한다. 정시(正始)하는 처음에 절에 재 올리는 것은 이보다 더 큰 허물이 없는데, 노사신이 이것은 큰일이 아니니 답할 필요가 없다 하였으니, 노사신은 어떤 것을 큰일로 여기는지 모르겠다. 응교 홍한(洪澣)은 탄식하며 ‘만약 허종(許琮)이나 홍응(洪應)이 있었더라면 결코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하였다.” (연산군일기 1494년 12월 28일 1번 째 기사)

한편 홍문관 수찬 손주가 소문(疏文) 짓기를 거절하자 연산군은 대신들에게 의견을 구하였다. 노사신이 아뢰기를, "태조·태종·세종이 이미 다 행하셨으니, 지금 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손주는 이미 반대하였으니, 비록 죽더라도 짓지는 아니할 것입니다. 이 일은 매우 급하니, 우선 승정원을 시켜 짓게 함이 어떠하오리까?" 하였다. 연산군은 승정원에서 지어 보내라고 전교하니, 승지들이 향실(香室)에 입직(入直)한 정자(正字)를 시켜 예전에 쓰던 소문(疏文)을 베껴 보냈다.

연산군은 노사신의 지원에 힘입어 자신이 즉위한 날인 12월29일에 승지 송질을 보내어 장의사(藏義寺)에서 수륙재를 지내게 하였다. (연산군일기 1494년 12월29일 2번째 기사) 4)

 

1) 김범, 사화와 반정의 시대, 역사의 아침, 2015, p 110

2) 세종은 세종 4년(1422년) 5월6일에 붕어한 태종을 위해 진관사에서 수륙재를 지냈다.(세종실록 1422년 5월6일)

3) 거창부원군 신승선(1436∼1502)은 연산군의 장인이다. 그는 1495년 10월에 영의정에 제수되어 1497년 3월29일에 사직하였다.

4) 장의사(藏義寺)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영동 세검정초등학교 자리에 있었던 절이다. 659년(신라 태종 무열왕 6)에 지어졌다는 데 지금은 당간지주(幢竿支柱, 보물 제235호)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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