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객원교수(전 학부장)
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객원교수(전 학부장)

[한국농어촌방송/경남=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객원교수(전 학부장)] 우리 집과 도랑을 경계로 이웃한 이서방네 아주머니댁은 빈집상태가 된 지 거의 1년이 되어간다. 아주머니께서 뇌졸중으로 몸을 가눌 수 없어 요양병원 신세를 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주머니는 말을 못한다. 그런저런 이유로 결혼 실패하고 지금껏 이 집에서 혼자 사셨다. 자녀가 없다보니 가장 가까운 가족이 조카다. 가끔 부산에 사는 조카들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어본다. 아마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가기 힘들 것이라고 한다.

아주머니가 이곳 고향에서 혼자 살아갈 때에는 집 안팎을 깨끗하게 관리하셨는데 그렇지 못한 지금은 풀들이 제멋대로 자라 온통 엉망이다. 이 모습을 매일 접하는 나는 가끔 시간을 내어 아주머니댁 마당에 자란 풀을 베어낸다. 아주머니께서 내가 서울에 가서 제법 오랜 기간 체류할 때 우리 집 정원에 심어져 있는 꽃들이 비바람에 쓰러져 있으면 이를 세워 막대기로 고정시켜 주시기도 했는데 어쩜 그 보답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아직 살아 있는데 너무 어수선한 상태로 그냥 방치해 둔다는 것이 마음이 아파서일까. 하여튼 오늘도 풀베기 작업을 했다.

풀이 많이 자라 있으니 힘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풀을 베어낸다. 물이 잘 빠지지 않아 습한 상태로 남아 있는 부분에서는 발이 빠진다. 발을 빼내려다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달팽이 한 마리를 발견한다. 달팽이를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풀을 베어낸다. 나에게 들켰으니 빨리 달아나야 할 텐데 도무지 그런 기색이 없다. 여전히 자기 페이스대로 움직일 뿐, 내가 바라는 속도에 맞추어 움직이지 않는다. 우리 인간의 눈으로 볼 때는 느려 터졌다고 할까나. 순간, 내가 서울-진주를 자주 왕복하면서 들르는 휴게소 화장실 액자에 담겨있는 글귀가 떠오른다. ‘속도를 줄이고 인생을 즐겨라. 너무 빨리 가다 보면 놓치는 것은 주위경관 뿐이 아니다. 어디로 왜 가는지도 모르게 된다. – 에디켄터’.

돌이켜 보면 우리는 산전, 수전, 공중전 위의 속도전의 전사로 생존해 왔다. 우리가 왜 사는지에 대한 생각 따위는 아예 내팽개쳐버렸다. 오로지 빠른 일처리, 빠른 성장만이 우리 삶의 유일한 목표가 되어버렸다. 빠름을 위해 신중함과 깊이는 포기되고, 빨리 일을 처리해야 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우리 개인의 시간과 에너지를 모조리 빼앗기고 말았다,

이쯤에서 이원규 시인의 시 중에 ‘속도’라는 시가 생각났다. 시 ‘속도’는 토끼와 거북이의 달리기 경주를 단박에 뒤집어버린다. 토끼와 거북이는 서로 만날 수가 없을뿐더러, 만난다 하더라도 왜 거북이가 사는 바다가 아니고 토끼가 사는 육지에서 만나는가 라고 반문한다. 오만방자한 인간 중심주의에서 벗어나라는 시인의 질타는 ‘왜 백미터 늦게 달리기는 없을까’라는 문제의식으로 확대된다. 느림을 기준으로 하면 기존의 달리기 순위는 백팔십도 달라진다. 말할 것도 없이 토끼가 꼴찌다. 달팽이, 느림의 대명사. 그를 통해 배우는 느림의 미학.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다 보니 달팽이가 더욱 새롭게 다가온다. 더 관심을 갖고 자세히 보니 이제까지 그냥 대수롭지 않게 여겨왔던 달팽이의 삶이 크게 부각된다. 달팽이 새끼들은 얇디얇은 껍질을 둘러쓰고 태어나고 자라면서 몸집과 집을 더디지만 차근차근 늘여간다. 오늘 내가 풀을 베는 중에 본 달팽이는 다 큰 달팽이다. 이제 자랄 대로 자란 놈이다. 그러니 짊어지고 다니는 집이 꽤나 견고하다. 다 완성된 견고한 자기 집을 이동할 때마다 짊어지고 다닌다는 사실. 아마 내가 부동산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 그 집이 크게 와 닿았는지 모를 일이다.

달팽이는 이렇게 자기 집을 갖고 태어나니, 한평생 제집을 짊어지고 다니기에 이사하지 않아도 되고, 내집마련을 위해 주택부금을 붓지 않아도 된다. 부동산에 대한 관심을 갖고 주경야독하는 우리 대학 부동산학과 학생들처럼 부동산학을 공부하지 않아도 됨은 물론이다. 더욱, 요즘 그 시행을 앞두고 관계자들 사이에서 갑론을박하는 분양가상한제 등의 주택정책 따위에는 신경 쓰지 않아도 좋다. 움직이는 그대로가 집이고, 움직이는 그대로가 길이니 이 얼마나 큰 자유인가. 이사 걱정 없이 자기 의지대로 옮겨 다닐 수 있고, 집 걱정 없이도 자기 스스로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이 달팽이의 삶은 얼마나 행복할까.

시간과 돈의 노예가 되어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도 간신히 집 한 채 마련할까 말까 하는 오늘날의 우리 소시민들에게 ‘여유로움’이라는 단어는 진정 희망사항일 뿐일까. 그래서인지 오늘 따라, 움직임은 느리지만 나름대로 여유를 만끽하는 달팽이, 이렇게 여유를 만끽하면서도 내집마련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달팽이, 그의 한평생이 부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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