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BS역사칼럼-길 위의 역사] (2부 무오사화) - 82화 충청도사 김일손, 경연에서 "대학연의"를 강하도록 상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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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S역사칼럼-길 위의 역사] (2부 무오사화) - 82화 충청도사 김일손, 경연에서 "대학연의"를 강하도록 상소하다.
  • 김세곤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3.16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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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사 김일손이 연산군에게 경연에 납시라는 상소는 계속된다.

“<예기(禮記)> 에 이르기를 ‘상중에 있으면 상례(喪禮)를 읽고, 이미 장사한 뒤면 제례(祭禮)를 읽는다.’ 하였고, 또 이르기를 ‘이미 장사하였으면 왕사(王事)를 말하고 국사(國事)는 말하지 아니한다.’ 하였으나 시대도 다르고 형세도 다르니 기왕 국사를 말하지 않을 수 없을진대, <예기>를 읽는 여가에 <대학연의(大學衍義)>를 먼저 강(講)하고, 근세사람 구준(丘濬)이 엮은 <대학연의보(大學衍義補)>도 또한 속강(續講)하셔야 합니다. 그 안에는 정심(正心)·수신(修身)·제가·치국의 요령이 갖추어 실려 있으니, 마음으로 깨닫고 몸으로 체득하면 천하에 어려운 일이 없을 것입니다.”

예기(禮記) : 유교 경전 5(五經)의 하나로서 공자는 삼대(三代 : ··) 이래의 문물제도와 의례(儀禮예절 등을 집대성하고 체계화하는 것을 스스로의 책무로 삼았고, 제자들을 가르침에 있어서도 예를 익히고 실천하는 데에 역점을 두었는데, 여기에는 상례(喪禮), 제사(祭祀), 관례, 혼례 등이 포함되어 있다

김일손은 <예기>를 읽는 여가에 <대학연의>와 <대학연의보>를 강하기를 상소한다.

<대학연의(大學衍義)>는 국가 지도자의 리더십 필독서로서, 중국 송나라의 진덕수(眞德秀)가 1234년에 편찬한 <대학(大學)>의 깊은 뜻과 그 이치를 해설한 책이다. 1487년에는 명나라의 구준(邱濬)이 이 책을 보주(補註)한 <대학연의보(大學衍義補)>를 편찬했다.

<대학연의>는 조선 태조 이성계가 장군시절부터 즐겨 공부하였다.

<태조실록 1권, 총서 80번째기사>에는 ‘태조가 무인이면서도 문인과 경사를 토론하고 <대학연의>를 즐겨 보다’란 제목으로 “태조는 본디부터 유술(儒術)을 존중하여, 비록 군중(軍中)에 있더라도 매양 창[戈]을 던지고 휴식할 동안에는 유사(儒士) 유경(劉敬) 등을 인접(引接)하여 경사(經史)를 토론(討論)하였으며, 더욱이 진덕수(眞德秀)의 <대학연의(大學衍義)> 보기를 좋아하여 혹은 밤중에 이르도록 자지 않았으며, 개연(慨然)히 세상의 도의(道義)를 만회(挽回)할 뜻을 가졌었다.”고 적혀 있다.

또한 ‘태조실록 1392년 9월 21일’자는 “임금이 조회를 받는 예를 마치고 난 후에, 성균대사성(成均大司成) 유경에게 명하여 <대학연의(大學衍義)>를 강론(講論)하게 하였다.”고 적혀있다.

1392년 11월 12일자 <태조실록>은 더욱 의미가 있다.

“간관(諫官)이 날마다 경연(經筵)을 개최하기를 청하니, 임금이 말하였다. "수염과 살쩍이 이미 허옇게 되었으니, 여러 유생들을 모아서 강론을 들을 필요가 없겠구나."

도승지 안경공이 대답하였다.

"간관의 뜻은 다만 전하에게 글을 읽게 하려고 함이 아니옵고, 대개 정직한 사람을 가까이하여 바른말을 듣게 하려고 함입니다."

임금이 말하였다.

"내가 비록 경연에는 나가지 않더라도 매양 편전(便殿)에서 유경으로 하여금 《대학연의》를 강론하게 하고 있다."

세종대왕도 즉위년(1418년)부터 <대학연의>를 공부했다. 즉위년 10월12일에 세종은 경연에 나아갔다. “동지경연 이지강이 <대학연의>를 진강(進講)하고, 또 아뢰기를, "임금의 학문은 마음을 바르게 하는 것이 근본이 되옵나니, 마음이 바른 연후에야 백관이 바르게 되고, 백관이 바른 연후에야 만민이 바르게 되옵는데, 마음을 바르게 하는 요지는 오로지 이 책에 있사옵니다." 하매, 임금이 말하기를, "그러나 경서를 글귀로만 풀이하는 것은 학문에 도움이 없으니, 반드시 마음의 공부가 있어야만 이에 유익할 것이다." 하였다.(세종실록 1418년(즉위년) 10월 12일)

세종 즉위년 12월 20일에는 정사를 보고 경연에서 <대학연의>를 강하다가 민생의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정사를 보고 경연에 나아갔다. <대학연의>를 강하다가 <채미편(采薇篇)>과 <군아편(君牙篇)>에 백성의 가난하고 고생함을 근심하고 탄식한다는 말에 이르러, 정초(鄭招)가 아뢰었다.

□ 정초 : "임금 노릇 하기의 어려움과, 백성을 보호하기의 어려움과, 민생(民生)의 고통, 국운(國運)의 안위(安危)를 신들이 비록 바른대로 말하고자 하더라도, 어찌 능히 이와 같이 상세하겠습니까.

삼가 생각하옵건대, 전하께서는 진덕수의 천고(千古)의 충론(忠論)을 취하여 잘못을 바로잡는 경계로 삼으소서. 우리나라 백성의 생계가 비록 아내를 팔고 자식을 파는 처지에는 이르지 않았지마는, 그러나 전하께서 오늘날의 마음을 잊지 않으시면, 국가가 매우 다행할 것입니다."

□ 세종: "내가 마땅히 마음 깊이 품어 잊지 않겠노라."

이어서 말하였다. "우리나라 백성이 살아가는데 어찌 곤궁한 사람이 없겠느냐."

탁신 : "입을 것도 없고 먹을 것도 없이 곤궁하여 하소연할 데가 없는 사람이 백성이 많이 사는 곳이나 시골 궁벽한 곳에 혹시 있다 하더라도, 이는 다만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이 살피지 못한 것뿐입니다."

세종 : "내가 궁중에서 나고 자랐으므로, 백성의 가난과 고통을 다 알지 못한다."

□ 정초 : "일반 백성을 찾아서 물으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 세종 : "그렇다." (세종실록 1418년(즉위년) 12월 20일)

세조대왕 능  전경 [사진=김세곤]
세종대왕 능 전경 [사진=김세곤]
세종대왕 능 [사진=김세곤]
세종대왕 능 [사진=김세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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