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BS역사칼럼-길 위의 역사] (2부 무오사화) - 94회 사간 이의무, 헌납 김일손 등이 상소하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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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S역사칼럼-길 위의 역사] (2부 무오사화) - 94회 사간 이의무, 헌납 김일손 등이 상소하다 (7)
  • 김세곤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6.08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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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5년 11월18일에 사간 이의무, 헌납 김일손 등이 올린 상소는 이어진다.

“어제의 잘못을 오늘 고치고, 오늘의 잘못을 내일 뉘우치시어, 덕과 학문이 진취하고 행실과 일이 잘되면, 온갖 일의 근원이 맑고 생민의 복이 무궁할 것입니다.

‘왕의 말은 실과 같아서 그 풀리는 것이 매우 길다.’ 하였는데, 이는 미미한 데에서 큰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말이라는 것은 덕의 꽃이요 행실의 문체입니다.

(중략) 임금의 덕은 듣고 판단하는 일보다 더 어려운 것이 없습니다. 이치 살피기를 정밀하게 하지 못하면 스스로는 덕을 간직하였다고 여기지만 도리어 잘못을 고집하게 되어 그 해가 매우 큽니다.

오직 한 마음의 덕을 밝혀서 만물의 변화를 비추어 보되, 일의 어렵고 쉬움을 비교하지 말고 의리의 옳고 그름을 비교하며, 사람의 귀하고 천함을 보지 말고 말이 정당한지 여부를 보아서, 반드시 처음에 살펴서 어느 하나로 결단을 하여야 합니다.

이미 결단한 후에라도 혹시 논하는 자가 있으면 다시 더 정밀하게 살펴서 만일 그것이 잘못되었으면 열 번 바꾸더라도 인색하지 않아야 할 것이며, 이미 선한 것을 선택하였으면 그것을 굳게 지켜서 소문에 동요되지 않는 것이 덕을 닦고 정치를 행하는 큰 실마리입니다.

당 태종(唐太宗)은 사람의 간하는 상소를 받아들여서 끝내는 훌륭한 정치를 이루었습니다.”

29세에 황제가 된 당 태종 이세민(李世民 598~649)은 ‘‘정관(貞觀)의 치(治)(626~649)’를 이룬 황제이다. 당 태종의 치세는 중국 황제 정치의 이상과 모범으로 여겨졌고, 정관정요는 역대 임금들의 필독서였다.

상소는 이어진다.

“지금 신들 역시 전하의 10가지 자책에 의거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상하를 화목하게 하여 비색(否塞 운수가 꽉 막힘)의 기미를 통하게 하는 일입니다. (즉 화목과 소통이다.)

대저 조정은 사람의 한 몸과 같으니, 임금은 머리이고, 공경은 팔다리이며, 대간은 눈과 귀입니다. 머리가 팔다리 없이 어찌 몸을 움직이며, 눈과 귀가 없이 어찌 말을 듣고 물건을 살피겠습니까. 어느 하나라도 없으면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도 재상은 팔다리를 펴고 대간은 알고서 말하지 않는 것이 없게 하여 비색하게 되지 않도록 하소서.

2. 기강(紀綱)을 확립하는 일입니다. 지금 국가의 법과 제도가 자리잡고 선왕(성종)의 통치와 전하의 밝으심이 더해지니 기강이 진작되지 않는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관리가 일을 게을리하고 법을 두려워하지 않아서, 청탁을 공문(公文)인 양하고 뇌물을 예물(禮物)인 양하는 풍속이 태연하게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해마다 대간을 지방에 보내어 살피게 하면 기강이 확립될 것입니다.

3. 외척 중에 큰 벼슬하는 자를 제거하여야 하겠습니다. 전하께서 즉위하시어 어진 이를 한 사람이라도 발탁하였다는 말을 못 들었는데, 외척으로서 등용된 자는 한 둘이 아닙니다.

이철견은 남의 첩까지 빼앗았는데 파면하였다가 다시 썼으며, 윤탄의 추악함은 의금부에 알려졌고, 신승선(연산군의 장인)이 갑자기 백관의 우두머리에 등용된 것은 그것이 순서에 의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조정의 물망에 만족되지 않습니다.

옛날 한 문제(漢文帝)는 왕후의 아우 두광국이 어질다고 하여 정승으로 등용하려 하다가 ‘천하가, 내가 광국에게 사정을 둔다 할까 두렵다.’고 말하며 중지하였습니다. 광무제(光武帝)는, 왕후의 가족에게는 어질더라도 역시 낮은 벼슬에 머물게 하였습니다. 대저 두 임금이 이처럼 외척을 등용하는 데 조심하였지만, 나중에는 외척이 권세를 농락하게 되었으니 전하께서는 이 점을 유의하소서.

4. 여알(女謁: 궁중에서 왕의 총애를 받으며 정치를 어지럽히는 여인) 의 통행을 금하여야 하겠습니다. 대저 여알이라는 것은 크게 정치를 방해하는 것인데, 궁중의 일은 비밀로 하기 때문에 외관(外官)의 신하들은 알 수 없는 것이니, 부디 전하께서는 살피셔야 하겠습니다.

승니(僧尼 비구와 비구니)의 무리가 화복인과(禍福因果)의 설을 가지고 궁중 하인과 연결하는 것이 고금에 공통되는 우환인데, 근일에 승니의 일에 대하여 윤허하셨다가 도로 물리치시는 일이 많았으며, 성종임금의 소상일 에 재를 지내지 않기로 한 것은 이미 전하의 결단을 받은 일인데 다시 내전의 의견에 끌리시니, 아마 전하의 밝으심으로는 이미 그 도가 아닌 것을 아셨으되, 내전께서는 아직도 화복에 불안해하시기 때문일 것입니다. 승니의 왕래를 끓고 재를 폐지하여 화복의 설(說)이 전하의 귀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 역시 내알을 끓는 큰 방법입니다.

 

 

함양 남계서원 입구 (경남 함양군) (사진=김세곤)
함양 남계서원 입구 (경남 함양군) (사진=김세곤)
남계서원 안내판 (정여창을 모신 서원) (사진=김세곤)
남계서원 안내판 (정여창을 모신 서원) (사진=김세곤)
남계서원 강당  (사진=김세곤)
남계서원 강당 (사진=김세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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