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BS역사칼럼-길 위의 역사] (2부 무오사화) - 95회 사간 이의무, 헌납 김일손 등이 상소하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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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S역사칼럼-길 위의 역사] (2부 무오사화) - 95회 사간 이의무, 헌납 김일손 등이 상소하다(8)
  • 김세곤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6.15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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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5년 11월18일, 사간 이의무, 헌납 김일손 등의 상소는 계속된다.

“5. 권행(權倖 : 임금의 총애를 받는 권세 있는 신하)가 정사(政事)를 흐리는 기미를 막으소서. 지금 조정이 청명(淸明)하니 자연히 권행(權倖)이 사용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조짐은 있습니다. (중략) 이극돈과 성준은 교대로 전조(銓曹 : 이조) 판서가 되어서 정사를 흐린 것이 매우 많습니다. 큰 거리에 서로 방을 붙여 사림(士林)의 청론(淸論)의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대가사족(大家士族)으로 권세가 조정을 기울이니, 감히 나서서 그 그릇됨을 바로잡는 자가 없고 조석 간에 정승 지위에 오를 물망도 있으나, 두 사람이 사소한 원한을 가지고 서로 화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극돈이 성준을 배제하여 절도사로 보내니 성준은 이극돈의 아들 세경을 평사(評事)로 삼아서 앙갚음을 하고, 이극돈이 성준을 원망하여 또 관찰사를 제수하여 보복하니 성준은 정사당(政事堂)에 앉아서 공공연하게 객기를 부려서 자주 대신의 체모를 잃었습니다.

만일 이 조짐을 막지 않으면 장차 ‘우이의 화[牛李之禍)’ 를 이루게 될 것이니, 전하께서는 통찰하시어 권신이 서로 공격하는 폐단을 막으소서.”

이극돈과 성준은 교대로 이조판서가 되어서 사소한 원한 때문에 서로 화합하지 못하고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우이의 화[牛李之禍]’가 일어날 조짐도 있다. ‘우이의 화’란 당(唐)나라 때의 우승유(牛僧孺)와 이종민(李宗閔) · 이덕유(李德裕) 등이 정부 요직에 있으면서 각자 당파를 만들고 사사로운 원한으로 서로 공격과 배제를 일삼아 국정을 어지럽혔다.

이의무와 김일손등의 상소가 올라가자 11월20일에 우찬성 이극돈 · 병조 판서 성준이 사직을 청했다. 하지만 연산군은 들어주지 않았다. 11월25일에도 이극돈이 사직을 청했지만 연산군은 윤허하지 않았다.

이럼에도 상소의 파급력은 대단했다.

이의무와 김일손 등의 상소는 계속된다.

“6. 토색질하는 무리가 백성을 괴롭히는 것을 금해야 하겠습니다. 지금 조정에는 토색질하는 신하가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간혹 도총관, 의금부, 육조에 딸린 중앙 관청 등이 토색질하고, 감사와 절도사와 만호(萬戶)·수령도 그리합니다. 원하옵건대, 토색질을 막도록 하소서. 전하께서는 청렴한 사람을 높이고 탐탁(貪濁 탐욕, 혼탁)한 사람을 징계하소서.

7. 상과 벌을 분명히 하여 인심을 흡족하게 하여야 하겠습니다.

대저 임금이 주는 상이란 관작보다 더 중한 것이 없고, 형벌이란 파면보다 더 중한 것이 없습니다. 반드시 하나를 상 주어서 백을 권장하고, 하나를 벌주어서 백을 징계하고서야 인심을 만족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근일 전하께서 의정부와 이·병조로 하여금 함께 승진 퇴출을 의논하게 하시니, 아마 어진 이를 나오게 하고 간사한 자를 물리치려 하시는 것일 터이므로 매우 훌륭한 일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좋아하고 미워하는 것이 같지 않고, 선비의 비난과 칭찬을 믿기 어렵습니다. (중략)

청하옵건대, 승진과 퇴출에 대한 의논을 넓히시되, 해당 부처나나 의정부가 각기 들어서 아는 대로 중외나 대소를 가릴 것 없이 두루 물어보시고, 또한 절도사·관찰사로 하여금 그 소관 수령·만호를 승진 퇴출하는 데 있어서도 그 실적을 이름 아래 분별하여 적어서 실봉(實封)하여 올리게 하고, 전하께서는 반드시 살펴서 그중에서 많은 사람의 추천을 받는 사람을 승진시키고 버리는 자를 내치셔야 합니다.

이렇게 청렴한 관리를 상주고 탐오한 관리를 벌주는 것을 엄히 하여, 사기를 격려하고서야 인심이 만족할 것입니다.”

8. 유일(遺逸: 초야에 숨어 있는 인재)을 천거하여 어질고 슬기로운 이들을 등용하게 하여야 하겠습니다. 원하옵건대, 어질고 지혜 있는 이를 뽑아 써서 낮은 자리에서 늙어 죽지 않게 하소서. 근일에 전하께서 사방에 하교하여 유일을 구하시니, 사기를 진흥할 만합니다. ‘10호가 사는 고을에도 반드시 충신(忠信)한 이가 있다.’고 하는데, 의논하는 자들이 혹은 ‘초야(草野)에 남긴 어진 이가 없다.’ 하니, 한 세상의 인물을 대접하는 데 역시 박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선왕(성종)이 일찍이 유일을 구하니, 경상도 관찰사 이극균이 생원 김굉필(1454-1504)과 정철견을 천거하였는데, 김굉필은 겨우 참봉에 등용되고 정철견은 아직도 초야에 있으니 이는 유일을 구한 본의가 아니니, 전하께서 성심을 드러내고 공도를 펴서 곧은 선비를 용납하소서”

조광조의 스승인 소학동자 김굉필은 1494년에 경상도 관찰사 이극균의 천거에 의해 남부참봉에 등용되었고 1497년에는 형조좌랑이었다. 그는 1498년 무오사화로 유배를 갔고, 1504년 갑자사화로 순천에서 참수되었다. 그는 1610년(광해군 2)에 정여창·조광조·이언적·이황 등과 함께 오현(五賢)으로 문묘에 종사되었다.

순천 옥천서원 전경 (김굉필을 모신 서원) (사진=김세곤)
순천 옥천서원 전경 (김굉필을 모신 서원) (사진=김세곤)
옥천서원(사진=김세곤)
옥천서원(사진=김세곤)
옥천서원 안내판 (사진=김세곤)
옥천서원 안내판 (사진=김세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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