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우칼럼] 칡넝쿨을 걷어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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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우칼럼] 칡넝쿨을 걷어내면서
  • 정용우 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객원교수(전 학부장)
  • 승인 2020.09.23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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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우 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객원교수(전 학부장)
정용우 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객원교수(전 학부장)

국어사전에 보면 갈등(葛藤)을 이렇게 표현해 놓고 있다. ‘갈등이란 칡과 등나무가 서로 얽히는 것과 같이, 개인이나 집단 사이에 목표나 이해관계가 달라 서로 화합하지 못하고, 적대시하거나 대립충돌을 벌여 고민하는 상태를 뜻한다.’라고. 그렇다. 갈등은 덩굴식물인 칡과 등의 조합에서 비롯한 말이다. 갈등의 갈(葛)은 칡을 의미하고, 등(藤)은 등나무를 의미한다. 칡넝쿨은 길게 자라면서 다른 물체를 둘둘 감고 올라가는데, 우권이라 오른새끼처럼 휘휘친친 감고 올라간다. 이에 반해 등나무는 역시 칡처럼 칭칭 두르며 기어오르는데, 이는 좌권이다. 그래서 왼새끼처럼 칭칭 동여맨다. 하여 두 식물을 가까이 심어놓으면 각각 반대방향으로 비틀어 꼬면서 꾸불꾸불 용틀임하여 오른다. 서로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죽기 살기로 상대를 밀치고 당기고, 솟고 누르며, 뒤틀고 펴는 불화(不和)와 상충(相衝)을 칡과 등나무에서 보게 된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고 오직 자기뿐이다. 이렇게 칡과 등나무는 그 타고난 성질이 달라 기어오르는 방향이 다른 것을 보고 옛사람들은 ‘갈등’이라는 낱말을 만들어 냈으니 참 관찰력이 뛰어나다는 생각을 해 본다.

시골에 살다보면 등나무는 드물게 보지만 칡은 흔하게 볼 수 있는데 이 칡이라는 놈은 나를 아주 괴롭힌다. 특히 추석 전 부모님 산소 벌초할 때 그렇다. 무덤 주변에 얽히고설킨 칡넝쿨을 걷어내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쯤이면 완전 녹초가 되어 버린다. 그렇지만 모처럼 아내가 방문을 했으니 피곤하다고 드러누울 수도 없다. 시원한 맥주 한 잔 마시면서 아내 옆에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좀 시간이 지나면 텔레비전을 켠다. 손주들 돌보느라 제대로 시청하지 못한 드라마를 본단다. 드라마를 함께 보면서 내가 독백처럼 내뱉는다. 왜 가족끼리 저리 싸울꼬? 하면 아내가 되받는다. 원래 드라마라는 게 갈등 속에 서로 싸우지 않으면 시청자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평을 늘어놓는다. 갈등이라는 게 우리네 삶의 일부가 된 지 오래되었으니 그 말도 맞기는 하다.

우리가 세상살이를 하다 보면 참 많은 갈등을 겪는다. 국가 간의 갈등은 말할 것도 없고, 나라 하나를 놓고 보더라도 온통 갈등의 천지다. 상대를 적으로 삼아 피똥 나게 싸운다, 내 마음에, 내 신념에 어긋난다고 상대를 비난한다. 내 것을 빼앗기지 않고 더 많이 가지려는 이해다툼 그리고 내 생각 내 믿음 내 판단이 너의 것보다 낫다는 독선(아집)까지 겹쳐 세상이 이토록 시끄럽고 혼란스럽다. 자기주장만을 내세우는 사람들 때문에 조화와 질서가 깨지며 세상이 살벌해진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별반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 우리 모두는 한 울림으로, 서로 관계하면서 여기 이렇게 한세상을 살아가고 있으니 각자가 자기의 분수대로 있을 자리에 있으면서 우주적인 조화를 이루어 나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떠들어 대지만…. 우리 각자는 좀 더 단순해져야 하고 좀 더 소박해져야 하고 좀 더 가난한 마음이 되어 서로에게 손짓하고 서로에게 의미가 되며 서로에게 기다림이 되어야 한다고 부르짖지만…. 그래야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조금이라도 질서와 균형을 유지하고 더불어 조화를 이루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많지만 이들 주장들이 실천에 옮겨져 보다 나은 세상이 되었는지는 의문스럽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 안타까움을 안고서 우리가 사는 이 세상 속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해소하는데 내가 기여할 수 있는 일이 조금이라도 없을까 하고 궁리해 본다. 내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바로 실행할 수 있고 또 실행하기만 하면 바로 갈등 해소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이 하나쯤은 있을 것 같다. 오늘 부모님 무덤 벌초한 날이니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도 괜찮을 성싶다. 세상을 하직하시어 내가 오늘 벌초한 무덤에 묻힌 내 부모님. 자식에 대한 근심걱정 그리고 자식이 바른 사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죽은 후 무덤 속에까지 가져간다고 했거늘. 지극한 사랑이다. 그 지극한 사랑으로 나를 키워내셨듯이 나도 내 자식들을 위해 그런 지극한 사랑이 샘솟아 나도록 최선을 다해 보는 것도 한 방법이겠다. 오늘 추석맞이 벌초를 하면서 우리 부모님들의 그 지극한 사랑을 떠올리기라도 하듯 나는 열심히 칡넝쿨을 걷어냈으니, 설사 내 아들딸들이 등나무일지라도 갈등의 한 축인 칡, 그 칡을 내가 먼저 걷어 내버리면 갈등은 사라지고 사랑만 남으리라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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