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BS역사칼럼-길 위의 역사] (2부 무오사화) - 111회 조의제문에 대한 조정 대신들의 의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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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S역사칼럼-길 위의 역사] (2부 무오사화) - 111회 조의제문에 대한 조정 대신들의 의견 (3)
  • 김세곤 칼럼니스트
  • 승인 2020.10.12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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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 앞에서 이극규·이창신·최진·민사건·홍한·이균·김계행이 의논드렸다. (연산군일기 1498년 7월 17일 2번째 기사)

"김종직의 범죄는 차마 말로 못하겠으니, 율문에 의하여 논단해서 인신(人臣)으로 두 마음 가진 자의 경계가 되도록 하옵소서."

정성근도 의논드렸다.

"김종직이 음으로 이런 마음을 품고 세조를 섬겼으니, 그 흉악함을 헤아리지 못하온즉 마땅히 중형에 처해야 하옵니다."

이복선이 의논드렸다.

"김종직이 조의제문을 지은 것이 정축년(丁丑年) 10월이었으니, 그 불신(不臣)의 마음을 품은 것이 오래이었습니다. 그 조문(弔文)을 해석한 말을 살펴보니, 비단 귀로 차마 들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역시 눈으로도 차마 보지 못하겠습니다. 그 몸이 비록 죽었을지라도 그 악을 추죄(追罪)할 수 있사오니, 마땅히 반역 신하의 율에 따라 논단하소서. 김종직의 귀신이 지하에서 반드시 머리를 조아리며 달갑게 복죄(伏罪)할 것입니다."

정축년 10월은 1457년 (세조 3년) 10월 노산군이 죽은 때이다. 1457년 10월 21일자 세조실록엔 “노산군(魯山君)의 장인 송현수를 교형(絞刑)에 처하였다. 노산군이 이를 듣고 또한 스스로 목매어서 졸(卒)하니, 예(禮)로써 장사 지냈다.”고 적혀 있다. 노산군이 자살 했다는 실록의 기록은 김일손의 공초와 김종직의 조의제문과는 너무나 다르다.

이어서 이세영·권주·남궁찬·한형윤·성세순·정광필·김감·이관·이유녕이 의논드렸다.

"지금 김종직의 글을 보오니, 말이 너무도 부도(不道)하옵니다. 난역(亂逆)으로 논단하는 것이 어떠하옵니까?"

홍문관 부제학 이세영(?∼1510)은 연산군에게 실록을 보는 것은 부당하다고 간언하다가 혼이 난 사람이다.

1498년 7월 14일 자 연산군일기에는 ‘왕이 《실록》을 보는 것을 부당하다고 간한 이세영 등을 심문하다.’고 적혀 있다. 이를 살펴보자.

연산군이 명하여 이세영 등에게 물었다.

“《실록》은 마땅히 직필(直筆)이여야 하는데, 지금 김일손이 조종조(祖宗朝)의 없었던 일을 많이 기록하였으니, 다른 사람도 또한 이럴까 두려워서 그것을 고열(考閱)하여 폭로하려 한 것인데, 완강하게 보아서는 안 된다고 말하니, 이는 붕당(朋黨)이 드러날까 두려워 그런 것이 아니냐.”

이러자 이세영 등이 공초하였다.

“신 등이 사법(史法)에 저촉될까 염려되어 감히 보시지 말라고 청하였을 뿐입니다. 어찌 붕당이 탄로될까 두려워서 그러겠습니까.”

이윽고 연산군이 전교하였다.

“너희들이 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완강히 보아서는 안 된다 하니, 의당 죄를 다스려야 하겠다. 그러나 너희들이 사사(史事)를 위해서 말하는 것이므로 특별히 용서하는 것이다.”

이세영은 1477년에 급제하여, 군기시첨정· 병조정랑 등을 역임하였다. 춘추관편수관(春秋館編修官)으로 『성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고, 1497년에 집의·전한을 지냈고 1498년에는 홍문관 부제학이었다.

한편 중종 시절에 영의정을 한 정광필(1462∼1538)도 김종직을 참형하자는 의견에 찬성했다. 그는 1492년에 급제하여 성균관학유 · 봉상시 직장을 역임하였다. 성균관 학정 때 좌의정 이극균의 발탁으로 『성종실록』 편찬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월정 윤근수의 『월정만록』에는 김일손과 정광필의 언쟁이 기록되어 있다.

“정문익(鄭文翼 정광필)과 김탁영(金濯纓 김일손)은 함께 양남(兩南) 어사의 명을 받자 같은 날 임금께 하직 인사를 하고 용인현(龍仁縣)에 도착하였다. 두 사람은 친한 사이였으므로 객관의 한 방에 함께 묵었다. 김일손이 격분하며 시사를 논하는데 과격한 말이 많았다. 정광필이 여러 차례 만류하며 말하기를, “말을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하니, 탁영이 곧장 격분하여 말하기를, “사훈(士勛 정광필)도 이런 저속한 논의를 하는가? 어찌 기개 없는 썩어빠진 선비가 되려 하는가?”

하여, 밤새도록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았다고 한다.”

이 일화를 보면 김일손이 얼마나 강직한가 하는 점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세상살이는 강하면 부러진다.

함양군 역사 인물공원 (최치원, 김종직 등 11명) (사진=김세곤)
함양군 역사 인물공원 (최치원, 김종직 등 11명) (사진=김세곤)
역사 인물공원의 동상들 (사진=김세곤)
역사 인물공원의 동상들 (사진=김세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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