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시대를 읽다. (3) - 고종, 홍범 14조를 고(告)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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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시대를 읽다. (3) - 고종, 홍범 14조를 고(告)하다.
  • 김세곤 칼럼니스트
  • 승인 2020.12.14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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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12월 12일(양력 1895년 1월 7일)에 고종은 종묘 영녕전(永寧殿)에 나아가 홍범 14조를 신령 앞에 고하였다.

"감히 황조(皇祖)와 열성(列聖)의 신령 앞에 고합니다. (중략)

우리 왕조를 세운 지 503년이 되는데 짐의 대에 와서 시운(時運)이 크게 변하고 문화가 개화하였으며 우방(友邦)이 진심으로 도와주고 조정의 의견이 일치되어 오직 자주독립을 해야 우리나라를 튼튼히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짐이 어찌 감히 하늘의 시운을 받들어 우리 조종께서 남긴 왕업을 보전하지 않으며 어찌 감히 분발하고 가다듬어 선대의 업적을 더욱 빛내지 않겠습니까?

이제부터는 다른 나라에 의지하지 말고 국운을 융성하게 하여 백성의 복리를 증진함으로써 자주독립의 터전을 튼튼히 할 것입니다.

생각건대 그 방도는 혹시라도 낡은 습관에 얽매지 말고 안일한 버릇에 파묻히지 말며 우리 조종의 큰 계책을 공손히 따르고 세상 형편을 살펴 내정(內政)을 개혁하여 오래 쌓인 폐단을 바로잡을 것입니다.

짐은 이에 14개 조목의 큰 규범을 하늘에 있는 우리 조종의 신령 앞에 고하면서 조종이 남긴 업적을 우러러 능히 공적을 이룩하고 감히 어기지 않을 것이니 밝은 신령은 굽어 살피시기 바랍니다."

홍범(洪範) 14조는 이렇다.

제1. 청(淸)나라에 의존하는 생각을 끊어버리고 자주독립의 기초를 튼튼히 세운다.(割斷附依淸國慮念, 確建自主獨立基礎)

제2. 왕실의 규범을 제정하여 왕위 계승 및 종친(宗親)과 외척(外戚)의 본분과 의리를 밝힌다.

제3. 임금은 정전(正殿)에 나와서 시사(視事)를 보되 정무(政務)는 직접 대신(大臣)들과 의논하여 재결(裁決)하며 왕비나 후궁, 종친이나 외척은 정사에 관여하지 못한다.(大君主御正殿視事, 政務親詢大臣裁決, 后嬪宗戚, 不容干豫)

제4. 왕실에 관한 사무와 나라 정사에 관한 사무는 반드시 분리시키고 서로 뒤섞지 않는다.

제5. 의정부와 각 아문(衙門)의 직무와 권한을 명백히 규정한다.

제6. 백성들이 내는 세금은 모두 법령(法令)으로 정한 비율에 의하고 함부로 명목을 더 만들어 불법적으로 세금을 징수할 수 없다.

제7. 조세의 징수와 경비 지출은 모두 탁지아문(度支衙門)에서 관할한다.

제8. 왕실의 비용을 솔선하여 절약함으로써 각 아문과 지방 관청의 모범이 되도록 한다.

제9. 왕실 비용과 각 관청 비용은 1년 예산을 미리 정하여 재정 기초를 튼튼히 세운다.

제10. 지방 관제를 빨리 개정하여 지방 관리의 권한을 제한한다.

제11. 나라 안의 총명하고 재주 있는 젊은이들을 널리 파견하여 외국의 학문과 기술을 받아들인다.

제12. 장교를 교육하고 징병법(徵兵法)을 적용하여 군사 제도의 기초를 확립한다.

제13. 민법과 형법을 엄격하고 명백히 제정하여 함부로 감금하거나 징벌하지 못하게 하여 백성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

제14. 인재 등용에서 문벌에 구애되지 말고 관리들을 조정과 민간에서 널리 구함으로써 인재 등용의 길을 넓힌다.

(고종실록 1894년 12월 12일)

 

1894년 1월부터 1897년 3월 사이에 조선을 네 차례 방문한 영국의 비숍 여사는 이날의 의식을 목격했다.

“나이 들고 진지한 사람들은 이틀 전부터 단식하며 애통해했다. 하늘은 어둡고 침침했으며 매서운 돌풍이 불고 있었는데 매우 불길한 징조였다. (비숍 지음 · 신복룡 역주,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 p 250)

한편 홍범 14조는 겉으로 보면 근대화와 자주 독립의 기초 확립을 위한 것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헌법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일본의 내정간섭 강화였다. 청일전쟁에서 일본의 승리가 사실상 확정적이고, 동학군이 우금치 전투에서 패배하고 전봉준 등이 체포된 상황에서 주한일본공사 이노우에는 김홍집 친일 내각에 갑신정변의 주역 박영효와 서광범을 내부와 법부 대신에 포진시키고 고종에게 홍범 14조를 발표하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홍범 14조 중 가장 주목할 것은 제1조와 제3조이다.

제1. 청나라에 의존하는 생각을 끊어버리고 자주독립의 기초 확립

그간 고종과 민왕후는 청나라에 지나치게 의존했다. 1882년 임오군란, 1884년 갑신정변을 비롯하여, 1894년에 동학군을 토벌하기 위해 청나라에 파병을 요청한 것은 고종 부부의 씻을 수 없는 과오였다.

제3. 임금은 정전(正殿)에 나와서 시사(視事)를 보되 정무(政務)는 직접 대신들과 의논하여 재결(裁決)하며 왕비나 후궁, 종친이나 외척은 정사에 관여하지 못한다.

이는 민왕후와 대원군의 정치 관여가 심각했음을 고백한 셈이다.

고부 관아터  (정읍시 고부면 소재) (사진=김세곤)
고부 관아터 (정읍시 고부면 소재) (사진=김세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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