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 참정 신기선의 상소  (3)   


1904년  9월 2일, 신기선의 사직 상소는 계속된다.  

“신이 반복하여 생각해 보건대, 뇌물을 근절하지 못하는 것은 대궐이 엄숙하고 깨끗하지 못한 때문이며, 대궐이 엄숙하고 깨끗하지 못한 것은 경연(經筵)을 오랫동안 폐지하고 정사를 직접 처결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신이 말한 경연에 대한 논의는 곧 옛사람들이 성인의 학문에 힘쓰는 것을 말합니다. 면성학(勉聖學) 세 글자는 수천 년 동안 틀에 박힌 말로 세상 사람들이 모두 싫도록 들은 것입니다. 

(...) 폐하께서는 갑오경장 후부터는 경연을 영영 폐지하여 버린 채 다시는 책을 책상에서 대하지 않고 유신(儒臣)들을 경연에서 접견하지 않아서 뜻을 보호할 수 없고 마음이 깃들 곳이 없게 되었으니 소인들이 어찌 나날이 친압하지 않고 정사가 어찌 갈수록 그르쳐지지 않겠습니까? 

폐하께서도 또한 이것이 놀라웠기 때문에 지난 가을에 경연관(經筵官)과 서연관(書筵官)을 다시 두었으나 여전히 강론을 거행한 적은 없으니 관제(官制)만 헛되게 설치한 셈입니다. 

(...) 임금이 수고로우면 신하는 편안해지고 위가 번거로우면 아래가 소홀해지니 자질구레한 일까지 직접 맡아 하여 큰 정사를 그르쳐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자연히 알게 되고, 하늘에 지은 죄는 피할 길이 없고 기도를 드려도 쓸 데 없다는 것을 자연히 알게 될 것이며, 임금의 관상과 운명은 점쟁이에게 물어 볼 것이 못 된다는 것을 자연히 알게 될 것입니다. 절약해 쓰는 것이 백성들을 아끼는 근본이니 재정에 대한 정리를 응당 속히 스스로 도모하고 외국 사람이 대신 해 줄 것을 기다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자연히 알게 되고, 나라에 개인의 옥사를 두어서는 안 되니, 경위원(警衛院)을 마땅히 없애야 한다는 것을 자연히 알게 될 것이며, 임금이 사적인 재물을 저축해서는 안 되니 내장원(內藏院)을 마땅히 없애야 한다는 것을 자연히 알게 될 것입니다.

일반적인 정사의 체도가 모두 환해지고 폐하가 마음속으로 깨닫게 되어 비록 곁에서 맴도는 소인들을 가까이 하고 뇌물을 통하게 하려고 해도 그것을 즐겨 하겠습니까? 임금이 일체 정사를 처결할 때는 반드시 대신들과 직접 대면하여 의논하고 조정의 신하들에게 직접 문의한 후라야 정사가 순조롭게 되고 일이 옳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옛날의 훌륭한 임금들은 하루에 세 번씩 조회를 보았던 것입니다. 우리 왕조의 조회법에는 조참(朝參)·상참(常參)·차대(次對)·윤대(輪對)가 있었습니다. (...) 
형벌과 표창, 승급과 강직을 온 나라와 함께 처리하였고 보통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이 빠짐없이 위에까지 보고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정사가 융성해지고 제도가 정해졌으며 백성들이 편안해지고 나라가 태평해져 오늘날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못합니다. 폐하께서는 대궐 안의 깊은 곳에 가만히 앉아 있고 여러 신하들이 폐하를 만나 뵙는 일이 드뭅니다. 군대와 나라의 이해와 흥망에 관련되는 큰일도 가까이 도는 한두 사람과 의논을 하고 창졸간에 결정하기 때문에 부(部)와 부(府)의 대관(大官)들은 까마득히 듣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비준 인장을 찍은 칙서(勅書)를 내시(內侍)가 전달해 주어야 놀라서 서로 돌아보며 문서의 끝에다 서명합니다.

(...) 대궐을 엄숙하고 깨끗하게 만들려면 반드시 경연(經筵)을 다시 열고 모든 정사를 직접 처결하여야 합니다

경복궁 집옥재
경복궁 집옥재

삼가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신의 간곡한 마음을 살펴 신의 벼슬을 체차(遞差)하고 신의 말을 채용해서 날마다 경연에 나가고 정사를 직접 처결하여 대궐을 엄숙하고 깨끗하게 만들고 뇌물을 근절하소서. 

이렇게 하고서도 정사가 잘되지 않고 백성들이 편안하지 않으며 재앙이 사라지지 않고 나라가 흥하지 않으면 신을 효수(梟首)하여 고가(藁街)에 매달아 망령된 말을 하는 충성스럽지 못한 자들이 경계로 삼게 하소서."

이러자 고종이 비답(批答)하였다. 

"말미에 진술한 것은 정사의 요점을 깊이 터득한 것으로서 매우 극진하여 마음이 툭 트인다. 그러나 현재 시행하려면 역시 곤란한 점이 있으니 응당 잘 참작해서 돈독하게 도움을 줄 것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사직하겠다는 말을 거두고 즉시 일을 보도록 하라."

신기선은 날마다 경연에 나가고 대궐을 엄숙하게 하며 뇌물을 근절하라고 간언했다. 하지만 고종은 현재 시행하려면 역시 곤란한 점이 있다고 비답하였다. 대궐 엄숙과 뇌물 근절을 당장 시행하는데 무슨 곤란한 점이 있단 말인가? 정말 이해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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