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스벨트 대통령의 외동딸 앨리스의 한국 방문 

                                                                      덕수궁 중명전  
                                                                      덕수궁 중명전  

1905년 9월 5일, 미국 사절단 80여 명은 상하이에서 두 그룹으로 나뉘었다. 단장인 육군장관 태프트 일행은 미국으로 돌아갔고, 루스벨트 대통령의 외동딸 앨리스 일행은 북경, 대한제국을 거쳐 일본으로 가는 일정을 계속했다.

1905년 9월 17일 자 ‘대한매일신보’는 21세의 앨리스 루스벨트에 대해 소개했다.

“그녀는 세계 최고국 귀한 공주다. 예사로움을 뛰어넘는 의지와 기개, 소탈하고 명랑한 자질과 깊고 고요한 학문은 일일이 논할 필요도 없이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 향기로운 수레가 머무는 곳과 공주가 청초하게 바라보는 곳에는 산천이 빛을 더하고 초목이 영광을 더함은 말해 무엇 하랴.

황제 폐하께서는 옥과 비단으로 예우를 베풀고 최고의 집에서 음식을 내고 음악을 베풀어 양국 우호를 달성하고 귀빈을 즐겁게 하여 예의가 굳건하게 된 연후에 너그러움을 베풀지니라.”

9월 19일 오후 7시에 앨리스 일행은 제물포에 도착했다. 모건 주한미국공사와 부영사 윌라드 스트레이트 그리고 궁내부대신 이재극의 영접을 받은 앨리스 일행은 황제 특별열차를 타고 서울로 들어왔다. 

앨리스 양은 황실 가마로, 일행들은 관청의 가마로 숙소인 미국 공사관까지 모셨고, 가는 길의 집들에는 미국과 대한제국 국기가 내걸렸다. 도로 좌우에는 사람들이 운집하여 환영의 뜻을 표시했다.
하지만 앨리스는 훗날 그리 깊은 감명을 받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여하튼 좀 슬프고 애처로웠다. … 나라가 일본의 손에 넘어가기 시작했고, 내가 본 일본군 장교들은 대단히 민첩하고 유능해 보였다.”

다음은 주한미국공사관 부영사 스트레이트가 기록한 앨리스의 서울 체류 11박 12일 일정이다.

“19일 도착, 20일 황제 알현 및 연회, 21일 궁중 연회 및 공사관 연회, 22일 창덕궁 파티 및 미국 선교사 접견, 이후 승마, 홍릉 구경, 28일 환송 만찬, 30일 부산행 출발”

일정은 연회와 파티 그리고 여행이 전부였다. 

한편 고종 황제는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를 힘을 가진 존재로 인식했다. 실제로 ‘큰 형님’인 루스벨트가 군항 포츠머스로 부르자 러시아와 일본이 달려왔고, 러일전쟁이 종식되지 않았던가. 고종은 루스벨트를 마지막 동아줄로 생각하고 그의 외동딸 앨리스를 극진히 접대했다.

20일에 고종은 중명전에서 성대한 오찬을 베풀었다. 고종은 외국인과 공개적으로 식사를 한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이번에는 선례를 깼다. 그만큼 그는 절박했다. 훗날 앨리스는 1934년 출간한 자서전 『혼잡의 시간들』에서 고종의 모습을 이렇게 회고했다.

“우리는 고종과 함께 식사를 하러 갔다. 전반적으로 다소 연민을 자아내는 분위기였다. ...식사를 하러 갈 때 키 작은 황제는 다정하게 내 팔을 붙잡았다. 나는 그의 팔을 잡지 않았다. … 서둘러 비틀거리며 매우 좁은 계단을 내려가 평범하고 냄새나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오찬은 황제가 주관했지만 고종은 일본인이 통제했다. 필사적인 고종은 네바다주 출신 상원의원 뉴렌즈를 옆으로 불러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한국을 구해달라는 말을 해주라.”고 간절히 부탁했다. 그러자 뉴랜즈는 공식적인 창구를 통해 적법하게 요청하라며 비웃는 투로 답했다.(제임스 블래들리 지음 · 송정애 옮김, 임페리얼 크루즈,  프리뷰, 2010, p 314).

고종의 밀사였던 미국인 헐버트도 이렇게 적었다.

“한국인들은 이번 방문이 정치적으로 무슨 뜻이 있어서 미국 정부가 한국을 도와 위태로운 상황에서 꺼내 주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바람은 사실과 거리가 아주 멀었다.”

앨리스가 한 가장 무례한 일은 청량리에 있는 명성황후 능인 홍릉에 가서 수호석상 위에 승마복 차림으로 걸터앉아 사진을 찍었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은 1909년에 고종 의전 담당인 독일 여자 엠마 크뢰벨은 자서전 『내가 어떻게 조선의 궁궐에 들어가게 되었는가』 에서 앨리스의 무례를 기록하여 세상에 알려졌다.

한편 앨리스는 부산으로 떠나면서 환송 회견을 이렇게 회고했다.

“환송 회견장에서 황제와 황세자는 각각 사진을 나에게 주었다. 그들은 황제다운 존재감은 거의 없었고 애처로운 모습이었다.”

앨리스 일행을 줄곧 수행한 미국 부영사 스트레이트는 10월 3일에 친구 파머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적었다.

“이 사람들은 지푸라기라도 잡으려 하고 있었고 그들은 앨리스 루스벨트 일행을 마치 생명줄이나 되는 것처럼 붙잡고 매달렸다. … 루스벨트 일행은 왔노라, 보았노라 그리고 정복했노라. (The Roosevelt party came, saw and conquered)”
(박종인 지음, 매국노 고종, p 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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