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전 학부장
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전 학부장

[한국농어촌방송/경남=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전 학부장] 국화가 아름다운 계절이다. 올해에는 가을 초입부터 국화를 즐겼다. 막내 동생 덕분이다. 막내 동생이 우리 집을 방문했을 때 국화 화분 한 개를 사가지고 왔기 때문이다. 아들이 올해 금융기관 신입사원 공채에 합격해서 근무를 시작하였기에 부모님 산소에 인사드리려고 찾아온 것인데 내가 꽃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이를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라 했다. 당초 이 화분을 사왔을 때는 꽃봉오리가 더 많았었는데 지금은 만개한 상태다. 꽃이 노랗게 활짝 피어나니 참 보기가 좋았다. 동생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기 위해 전화를 했더니 화분에 물을 부지런히 주란다. 그러면 한 달 동안 국화를 즐길 수 있다고 했다. 동생이 대학에서 조경학을 가르치니 그 말이 맞을 거라 믿고 열심히 물을 준다. 그래서인지 3주가 넘었는데도 아직 그런대로 즐길만하다. 앞으로 1주일 정도는 시들지 않고 견뎌줄 것 같다. 이것이 시들어 볼품 없어지면 다음 차례는 우리 집 화단에 심어져있는 국화를 즐기면 된다. 만리향나무 옆에 국화단지가 있기 때문이다. 만리향이 곱게 꽃을 피울 때면 국화도 꽃 피울 준비를 한다. 화훼업자가 화분에 담아 정성들여 키운 국화는 이제 시들어가려고 하는데 이놈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어떤 놈은 벌써 꽃봉오리가 제법 뚜렷하다. 머지않아 꽃을 피울 기세다.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하면 겨울 초입까지 하얀 국화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평소에도 국화를 좋아했다. 그래서 20년 전에 내가 병마를 짊어지고 낙향했을 때도 우리 집 화단 중 가장 돋보이는 곳에 국화단지를 만들었다. 육신은 병고로 찌그려져 있었지만 마음만은 그래도 온전히 간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국화가 상징하는 정신을 본받고 싶었던 것이다. 가을 국화야말로 백화(百花) 중에서 유종의 미를 장식하는 꽃 중의 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내가 알고 있는 대로 눈서리를 맞고 영하의 삭풍이 불어 닥쳐도 꽃모습이 그대로임은 물론이거니와 꽃송이나 가지가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이 당찬 자세로 꿋꿋이 서 있었다. 이렇게 20년이 넘게 매년 국화를 즐겨 보아왔는데 그때 심은 국화가 오랜 세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금도 매년 청초한 꽃을 피워내고 있다. 우리의 영혼을 값지게 해주는 상징물임에는 틀림없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국화를 매화, 난초, 대나무와 더불어 사군자로 불렀다. 식물 특유의 장점을 군자(君子), 즉 덕(德)과 학식을 갖춘 사람의 인품에 비유한 것이다. 깊어가는 가을, 국화를 즐기고 있노라면 오상고절(傲霜孤節-서릿발이 심한 속에서도 굴하지 아니하고 외로이 지키는 절개)의 상징으로서 또는 은군자(隱君子-부귀공명을 바라지 않고 오로지 덕만을 쌓고 도만을 닦는 선비)라고 부르면서 칭송을 아끼지 않은 옛 어른들의 지혜가 새삼 새롭게 다가온다.

국화처럼 살다 간 우리 선인들. 우리 고장에도 이렇게 살다 간 인물이 많다. 그중에서도 남명 조식 선생은 으뜸이다. 과거를 포기한 후 관직을 제수받아도 벼슬에 나가지 않은 재야의 선비, 외척의 국정농단이 난무하는 정치 현실에 절망하고 공직기강의 해이로 인해 고통받는 백성들을 가슴 아파한 경(敬)과 의(義)의 선비 등등 그에 대한 존경과 사랑은 끝없이 이어지지만 나는 그가 실천하고 행동하는 선비라는 점에 특히 주목한다. 하학상달(下學上達-학문하는 사람은 먼저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을 통해 인간사를 배우고 이것이 충분히 익숙해진 이후에 형이상학적 원리를 탐구해야 한다)과 문무병중(文武並重-선비가 학문만 닦는 것이 아니라 무예도 닦아 나라가 어려움에 처할 시 칼을 들고 싸워야 한다)의 가르침. 이런 가르침이 있었기에 임진왜란 때 많은 제자들이 의병장으로 나설 수 있었으리라.

갑자기 그의 삶의 흔적을 더듬어 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내 몸 상태가 아직 혼자서 나다닐 만큼 완전하지 못하기에 아내가 이곳으로 오는 날을 기다려 실행에 옮겼다. 아내를 배려하여 우선 대원사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대원사 바로 앞 식당(휴림)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계곡 주변에 설치된 산책로를 따라 왕복 4Km를 걷는다. 그 후 대원사 경내를 돌아보고 곧바로 덕산으로 향했다. 선생의 동상 옆에 자리 잡은 은행나무가 황금색으로 물들어 가을 운치를 한껏 뽐내고 있었다. 후학을 양성하며 노년을 보냈던 산천재와 ㄷ자 모양의 기념관 내부를 둘러본 후 야외에 세워져 있는 비석으로 다가갔다. 비석에 새겨진 상소문을 꼼꼼히 읽어내려가던 나는 중간중간 가슴이 막막해졌다. 근본은 바로 세우지 아니한 채 ‘영혼 없이’ 서로 간에 물고 헐뜯기만 하는 작금의 정치 현실이 오버랩되었기 때문이다. 정녕 국화의 상징이 녹아있는 선비정신은 이들 정치지도자 눈앞에 선연한 이상으로 존재할 수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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