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전 학부장
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전 학부장

[한국농어촌방송/경남=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전 학부장] 나는 돈을 좋아한다. 하여 돈 많은 사람도 부러워한다. 그들이 돈을 벌기 위해 평생을 걸쳐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데 대해 존경심을 느끼며, 탁월한 재테크 수단을 연구해 낸 데 대해 찬탄의 박수를 아끼지 않는다. 또한 세상의 흐름을 탁월하게 읽어낸 능력에 대해서는 경외심마저 생긴다. 돈도 이러한 사람에게는 잘 호응하여 부를 안겨주었다. 그런데 나는 돈을 좋아하는데 돈은 나를 좋아하지 않은가 보다. 나를 좋아하지 않으니 내 주변에 모여들지 않는다. 조금 모여드는가 싶으면 곧바로 흩어져 버린다. 그런 까닭에 나는 47년간 서울에서 살았지만 내 소유로 된 집에서 살아 본 적이 거의 없다. 오래전 서울에 입성하여 이곳 시골에 돌아올 때까지 주로 전세(傳貰)만 살았다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하여 전세로 산 세월이 그렇게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서울 동서남북으로 이사를 다니면서 새 동네에 대한 호기심도 충족할 수 있었으며 전셋집을 고르는 선택권이 나에게 있으니 비교적 새집에서만 살 수 있었다. 이보다 더 좋은 것도 있다. 때맞추어 자유롭게 이사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특히 이를 잘 활용했다. 우리 대학교가 사옥을 새로 샀을 때 바로 학교 근처로 이사했다. 조금만 걸어가면 학교에 당도하니 교통비를 아낄 수 있었고 무엇보다 소중한 출·퇴근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아침저녁으로 이렇게 번 시간을 독서시간으로 바꾸었다. 햇빛이 환한 베란다에 독서대를 설치하고 열심히 책을 읽었다. 아마 3~4일에 한 권 정도의 책을 읽은 것 같다. 이 시절에 처음으로 읽은 러시아 대하소설 ‘고요한 돈강’ 마지막 페이지를 닫으면서 뭉클한 감동에 자리를 뜨지 못하고 책을 어루만졌던 기억이 새롭다.

이렇게 전세 찬사를 썼지만 그래도 내 집만 했겠는가. 돈 없는 자의 넋두리일 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러한 상황에서도 돈의 노예는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가진 돈이 없으니 주인은 될 수 없었지만 최소한 돈에 붙잡혀 끌려다니지는 않았다는 이야기다. 그 비결은 빚이 없었다는 점에 있다. 빚이 있으면 돈에 끌려다니면서 노예로 전락하고 만다. 나는 빚이 없으니 내 수입 범위 내에서 자유로웠다. 모자라면 모자라는 대로 조금 덜 쓰면 된다. 이것도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그런데 우리 부부에게는 더 큰 비결이 있다. 바로 ‘이게 오데고!’

일전에 내 건강상태가 나빠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평에서 사는 친구가 서울 사는 친구 셋을 데리고 이곳 시골로 내려왔다. 나를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한 여행이었다. 그 친구들이 타고 온 승용차가 너무 멋졌다. 1억 원도 넘는 독일제 고급 승용차였다. 우리 집 마당(잔디밭)에 들어서는 순간 온 마당이 훤해지는 느낌이었다. 우리 집 녹색 잔디밭이 큰 호강한 셈이었다. 우리 부부는 이렇게 멋진 차를 타고 진주라 천리길을 달려온 친구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는 잔디밭에서 몇 번을 나누어도 언제나 정다운 옛 추억들을 되새김질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멋진 차 앞에서 포즈를 취하며 우리 부부 둘만의 사진도 찍었다. 바로 옆에 주차해 있는 우리 중형 승용차가 시샘을 했으리라.

친구들이 서울로 돌아가고 우리는 다시 잔디밭을 돌면서 하이파이브 했다. ‘이게 오데고!’... 친구의 멋진 승용차에 취해 잠시 홀대당했던 우리 차가 다시 대접받게 되어 안도의 숨을 쉬는 것 같았다. 그저께는 경찰 정년퇴직한 후 이곳 고향에 다시 돌아와 정착한 친구 부부를 우리 부부가 식사 초대했다. 초대라고 하니 거창한 것 같지만 반성장터 내에 있는 음식점에서 돼지수육과 국밥 한 그릇 먹는 것이 고작이다. 식사 중에 연금 이야기가 나왔고 경찰은 교사랑 같은 기간 동안 근무해도 연금이 적다는 불만을 토로했다. 이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우리 부부는 다시 하이파이브 ‘이게 오데고! 친구 부부도 우리 따라 하이파이브하며 함께 웃었다.

이렇듯 우리 부부 슬로건 ‘이게 오데고!’는 주로 돈과 관련하여 파생하는 우리의 어렵고 힘든 삶을 위로하며 지켜주었다. 그런데 내가 병들어 고통에 시달리면서 우리 부부는 이 슬로건의 외연(外延)을 좀 더 넓혔다. 돈뿐만 아니라 건강상태로까지. 몸은 비록 어렵고 힘든 상황에 처해 있지만 항상 위로와 격려를 보내주는 가족과 지인들이 있고 적절하게 병을 다스리는데 필요한 돈을 지출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다행인가. 게다가 나보다 더 심한 고통을 받으며 하루하루를 고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 그보다는 더 심한 경우 즉 죽음에 다가가 있는 사람도 얼마나 많은가. 옛적에 우리 부모님들은 삶이 어렵고 힘들 때마다 “아래를 보고 살면 되니라.”고 하셨다. 나이 들어갈수록 ’위로‘가 아닌 ’아래로‘의 비교가 필요한 시점이다. 하여 만족과 감사한 마음을 일으킬 수 있다면 이 또한 얼마나 축복받은 삶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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