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진지하게 살지 말라고
너무 열심히 살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는데
나는 오늘도 편안함과 안락함이 주는
불안함을 안고 살고 있다

정숙자 문학박사
정숙자 문학박사

[한국농어촌방송/경남=정숙자 문학박사] 며칠 전에는 벼들이 논을 가득 메우고 있었는데, 어느새 벼들은 인간들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고 그들이 입었던 빈 옷들만 논바닥을 뒹굴고 있다. 혹 바람이 불면 빈 주머니로 남은 벼 껍질들은 방향을 잡지 못하고 바람에 의해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그들은 그들의 마지막이 그렇게 가벼워질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하고 있었을까? 아니면 엉겁결에 당한 일이라 당혹해하고 있을까? 나로서는 모를 일이다. 단지 나보다 생각이 큰 자연이니 예견하고 준비하고 있었을 것 같다. 큰 우주 속에 자연의 일부로 다시 돌아간다고 말이다.

꽃보다 곱다는 단풍도 나무라는 본체에 있을 때는 감동을 하고 예찬을 하지만, 막상 떨어져 거리를 헤매고 있을 때는 누군가의 추억이 되고 때로는 쓰레기로 전락하게 된다.

내 나이도 이 낙엽의 신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어느 정도 여유를 가져도 될 것 같고 나를 위해 시간을 사용해도 될 것 같지만, 자칫 이 모든 것이 아무런 의미없음으로 나에게 돌아올 수도 있다.

참고 살다 보면 나의 미래는 행복으로 보장될 것 같은 나의 젊음이 있었다. 편하지 못한 마음도 참고 행복하지 못한 마음도 참고, 열심히 살다 보면 나에게 스스로 올 줄 알았던 행복도 여유로움도 막상 현재에는 없었다. 나는 나의 꽃 같은 젊음을 알 수 없는 미래에 저당 잡혀서 살고 있었다. 그때는 그랬지만 지금은 나는 알 수 있다. 지금 행복하지 않는 나는 미래가 없다는 것을 이미 알아버렸다. 더이상 참고 살기에는 세상의 진실을 너무 많이 알아버렸기 때문에, 나는 오늘을 버텨내려고 살아갈 이유를 찾고 있다. 내일이 아닌 오늘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무작정 길을 나서고 있을 뿐이다. 이 길의 끝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내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를 타인의 몫으로 돌릴 만큼 뻔뻔하지도 못하다. 습관처럼 모든 나쁜 일이 또는 잘못된 결과가 나의 탓인 것 같다. 하지만 나로 인해 나쁜 일이 생기는 경우는 매우 적었다. 그런데도 언제나 나의 몫이 되었던 것들이 지금은 그렇지 않음에도 나는 마음이 쪼그라들고 있다. 너무 참다 보면 언젠가 미치게 된다는 지인의 말이 맞는 것 같다. 너무 진지하게 살지 말라고, 너무 열심히 살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는데, 나는 오늘도 가만히 앉아서 쉬지 못한다. 편안함과 안락함이 주는 불안함을 나는 안고 살고 있다. 오늘은 먼 산을 한참동안 멍하게 바라보고 섰다가 다시 내 자리로 돌아온다. 내 자리가 있기나 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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