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반에 대한 공초 

창덕궁 희정당 앞뜰 (김일손 친국장소)
창덕궁 희정당 앞뜰 (김일손 친국장소)

1498년 7월 20일, 국문 9일째이다. 이 날 허반과 표연말 그리고 정여창이 공초하였다. 

먼저 허반(許磐)이 공초하였다.  

"신의 처음 초사(招辭)에 ‘회간왕(懷簡王 덕종 : 세조의 큰아들 의경세자 1437∼1457)의 상(喪)을 끝마친 뒤에 세조께서 권씨에게 육식(肉食)을 권했는데 권씨가 먹지 아니하니 상이 노하시자 권씨가 달아났다.’는 일은 집안에서 항상 말해 오기로 신이 이를 김일손에게 말했다 하였사온데, 그 실상인즉 당초에 윤씨의 일을 말할 때에 권씨의 일까지 연속해서 말하였기 때문에 말이 오가는 사이에 착오가 생겨서 김일손이 기재한 바와 같이 되었사옵니다."(연산군일기 1498년 7월 20일 1번째 기사)

7월 12일에 의금부 낭청(郞廳) 홍사호가 김일손을 끌고 들어오자, 연산군은 의금부에 명하여 권지승문원부정자(權知承文院副正字)인 허반을 잡아오게 하고, 수문당(修文堂 희정당의 옛 이름) 앞문에 납시어 김일손을 친국하였다. (연산군일기 1498년 7월 12일 2번째 기사) 

연산군의 첫 친국은 연산군의 증조부인 세조의 일이었다. 

연산군 : "네가 『성종실록』에 세조조의 일을 기록했다는데, 바른 대로 말하라."  

김일손은 연산군이 ‘세조 조’의 일이라고 물었는데도 알아차리고 세조와  권귀인(종1품) 간에 있었던 일을 아뢰었다.   

김일손 : "신이 어찌 감히 숨기오리까. 신이 듣자오니 ‘권귀인(權貴人)은 바로 덕종(德宗)의 후궁(後宮)이온데, 세조께서 일찍이 부르셨는데도 권씨가 분부를 받들지 아니했다.’ 하옵기로, 신은 이 사실을 썼습니다." 

이 일은 왕실에서 가장 숨기고 싶은 세조(시아버지)와 권귀인 (며느리)간의 궁금비사(宮禁秘事)였다.
   
연산군은 이 이야기를 누구에게서 들었는지 친국했다. 그런데 김일손은 
버티고 버티다가 권귀인의 조카 허반으로부터 들었다고 실토했다.   

이어서 연산군은 덕종의 후궁 소훈 윤씨(昭訓尹氏)에 대하여 국문한다.

연산군 : "네가 또 덕종의 소훈 윤씨 사실을 썼다는데, 그것은 어디에서 들었느냐?"

김일손 : “이것 역시 허반에게서 들었습니다.”

소훈 윤씨 역시 덕종(의경세자, 성종의 아버지)의 후궁으로 종 5품이었다. 그런데 권 귀인이 세조의 부름을 받아 대내(大內 임금의 거처)에 들어갔을 적에 시종하던 계집 종 신월(新月)이가 소훈 윤씨의 일을 귀에다 대고 소곤거렸다. 덕종의 상을 마친 후 세조는 소훈 윤씨에게 토지와 노비와 집 등을 하사했는데, 일반적으로 내리는 시혜보다 갑절이나 더했고, 대소의 거둥에는 반드시 어가(御駕)를 수행하게 하였다는 소문이었다.

이는 시아버지(세조)와 며느리(소훈 윤씨)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연산군은 김일손이 왕실의 비밀을 사초에 기록했으니 노한 것이다.

연산군 : "허반이 두 가지 일을 모두 한때에 말했느냐?"

김일손 : “그러하옵니다.”

이러자 연산군은 허반을 잡아오라고 명한다. 이때 허반은 관청에 있었다.  허반이 잡혀오자 연산군은 허반과 김일손을 대질시켰다. 

연산군 : "허반이 끝내 거짓말하니, 네가 그와 면질(面質)하라."

김일손 : "신이 궁금(宮禁)과 연줄이 안 닿는데, 어디서 들었겠습니까. 신은 실지로 허반에게서 들었습니다."

허반 : "궁금의 일을 신이 어찌 감히 말하리까. 일손이 계교가 궁해서 그랬거나, 아니면 병이 깊고 혼미(昏迷)해서 그랬을 것입니다."

김일손 : "신은 비록 혼암(昏暗)하고 미욱하오나 어찌 망언(妄言)까지 하오리까."

이러자 연산군은 허반이 속임을 알고 명하여 어전에서 형장 심문을 했다. 그러나 허반은 형장 30대를 맞고도 오히려 사실을 털어놓지 않았다.

7월 15일에 허반(許磐)은 《실록》에 기록된 윤씨·권씨의 일에 관하여 공초하였다. 
  
"신의 나이 14세 적에 홍태손과 허반(許磻)이 윤씨의 일을 말하므로 신이 들었습니다. 또 권씨가 대내(大內)에 들어갔을 적에 시비(侍婢) 신월(新月)이 윤씨의 일을 말했는데 모두 김일손이 기록한 바와 같사오며, 또 윤씨에게 전민(田民)과 가사(家舍)를 내렸는데 은수(恩數)가 다른 사람보다 배나 더했고, 대소의 거둥에는 반드시 어가(御駕)를 수행하게 하였다.’고 했습니다. 또 ‘권씨가 회간대왕(懷簡大王)의 상(喪)을 마치자 세조께서 명하여 고기를 권하였는데, 권씨가 굳이 거절하고 먹지 않으므로 상이 노하니 권씨가 달아났다.’는 사실을 가문(家門)에서 항상 이야기하므로, 신이 이 두 가지 일을 일손에게 말해 주었을 뿐이오며, 사초(史草)에 기록된 것은 신이 말한 것이 아니옵니다."
(연산군일기 1498년 7월 15일 1번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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