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전 학부장
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전 학부장

[한국농어촌방송/경남=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전 학부장] 서울 중구 덕수궁에서 가을의 끝자락에 봄꽃 철쭉이 활짝 꽃을 피웠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를 본 사람들은 철쭉의 꽃말 ‘사랑의 기쁨’을 들먹이면서 예쁘게 핀 분홍 꽃 덕분에 마음은 잠시 봄이라고 즐거워한다. 즐거워하는 마음에 제철이 따로 있겠냐마는 철모르고 핀 분홍 꽃이 마음에 걸린다. 그 이유는 여기 시골에도 똑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 집 장미도 철모르고 이 늦가을에 꽃을 피워내고 있다.

내가 잔디밭 둘레에 화단을 만들 때 장미를 심었으니 벌써 20년이 지났다. 사랑채 앞에는 꽃이 크고 화려한 장미를 심었고, 담벼락을 둘러싸고는 보통 우리가 장미 하면 떠오르는 그런 장미를 심었다. 장미를 심고 2~3년이 지나자 우리 집은 온통 장미로 뒤덮였다. 장미가 절정을 이루는 5월말이 되면 꽃향기가 온 집을 감싼다. 그래서 꽃향기를 들이마시고 싶어 거실 창문을 열어젖히고는 했다. 그런데 담벼락을 따라 심어놓은 장미는 몇 년이 지나더니 꽃 개수도 줄어들면서 비실비실해지며 점차 예전의 활기찬 모습을 잃어갔다. 그래서 이들 장미는 다 베어내고 지금은 사랑채 앞 장미만 남겨두었다. 이 장미는 지금껏 새 가지를 계속 생성해가며 크고 화려한 장미꽃을 피워내고 있다. 우리 집 5월의 여신이었다.

그런데 이 장미가 올해부터 이상한 짓을 해대고 있다. 지금까지는 봄에만 장미꽃을 피워냈었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지금처럼 늦가을인데도 꽃을 대거 피워낸다. 나무를 심은 지 20년 만에 처음으로 나타난 현상이다. 기억을 되돌려보니 어느 해인가 어쩌다가 한 송이 정도는 필 때도 있기는 한 것 같다. 그것도 조그마한 꽃이 피더니 곧 시들어버렸다. 그런데 올해는 그렇지 않다. 꽃이 떼를 지어 피어날 뿐만 아니라 꽃의 크기도 봄에 핀 장미와 같고 꽃이 피어 있는 기간도 역시 같은 정도. 지금 입동(立冬)을 지나 겨울에 진입하는데도 앞으로 꽃을 피워낼 요량으로 꽃봉오리를 계속 만들어가고 있다. 참 희한하다. 늦가을인데도 꽃을 피우는 장미. 철을 잃어버렸다.

시골에 살다보면 ‘철’이라는 단어를 자주 접하게 된다. 농사는 철, 즉 시절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농부가 농사일을 오래 하다보면 씨를 뿌릴 철, 김을 맬 철, 웃거름을 줄 철, 거두고 저장할 철 등 여러 철을 따라서 농사를 짓게 되는데 그만 그 철이 아예 몸에 배어서 달력 같은 건 보지 않고도 농사를 훌륭히 지을 수 있을 만하게 된다. 바로 그 상태를 가리켜 ‘철이 들었다’고 한다. 반대로 철이 들지 않으면 제때 할 일을 하지 않는다. 제때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은 고사하고 오히려 엉뚱한 일을 한다. 자연의 이치에 순응할 줄 모르고 사람 살아가는 도리 또는 이치를 거역하거나 이에 역행하는 행위를 일삼는다. 그래서 철을 알지 못하는 사람, 다시 말해서 철이 왔음에도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은 진정한 의미에서 농부라 할 수 없다. 봄에 씨를 뿌리지 않으니 가을에 거두어들일 것이 없다. 그러면 겨울에 얼어 죽거나 굶어 죽는다. 철부지의 삶, 그 종착지는 죽음이다.

그런데 요새는 그놈의 철을 사람이 만들어버리니 무시(無時)라. 야채가 한 겨울에도 나온다. 그러다 보니까 인간이 아예 못할 게 없는 줄로 알게 되었다. 그러니 갈수록 철부지가 될 수밖에 없는 것. 농업이 주업인 농촌사람들도 사정이 이러할진대 도시사람들은 더하다. 돈만 있으면 겨울에도 여름채소나 과일을 마음대로 구할 수 있으니 이들은 철의 변화에 대해 민감하게 느끼지도 못할뿐더러 별로 관심도 없다. 관심 대상은 오로지 돈 돈 돈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온 세상이 철없는 사람들로 득실거린다. 철없는 사람들의 특징, 자기 밖에 모르는 것, 자기만 편안하고 기분 좋으면 그뿐이다. 내 철없는 행위로 인해 자연의 순환질서가 망가질 수 있다라든지, 내 욕구의 크기만큼 지구의 평균기온도 올라갈 수 있다라든지 그런 경고는 애써 외면해버리고 만다.

늦가을에 핀 장미꽃을 보고 기분 좋게 즐겨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하고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물어봤더니 지금처럼 늦가을에도 꽃을 피워대는 이유가 ‘기후변화’ 즉 지구온난화 때문이란다. 지금 당장 더 많은 것을 누리며 사는 일에 온통 몰두한 결과다. 우리 모두는 지금 지구가 우리에게 다양한 형태로 보내는 메시지, 기후변화를 제대로 읽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남은 생애 동안 재앙을 보게 될 것’이라는 어느 보고서의 경고는 점차 현실화될 것이다. 기다리기만 하면 희망에 묶여 있지만 우리가 움직이면 변화가 된다고 했으니, 늦가을에 핀 장미꽃을 보고 탄소감소를 위한 내 실천의지를 다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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