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전 학부장
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전 학부장

[한국농어촌방송/경남=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전 학부장] 나와 편지글을 주고받는 선배님 한 분이 계신다. 그 선배님은 70대 중반인데도 열렬한 산악인이시다. 정부의 고위관리 그리고 기관장을 역임하신 후 은퇴하셨는데 지금도 틈만 나면 전국 유명산을 즐겨 오르신다. 한참 후배인 우리들도 감히 엄두도 못 낼 겨울등산도 마다하지 않으신다. 그리고 산행하신 후 경험담을 기록으로 남겨 우리들에게 카카오톡으로 보내주신다. 나 같이 건강이 시원치 않아 등산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으로서는 그 기록들을 읽는 것만으로도 여간 즐겁지 않다. 그 편지글에는 산행을 하면서 느끼고 겪은 재미난 이야기들과 삶의 지혜가 곳곳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설악산 겨울산행을 마치시고 나에게 편지글을 보내주셨다. 그 편지 속에 ‘겨울 산행의 발견 : 나무’라는 소제목 하에 설악산 겨울나무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그중 일부 - 알프레드 테니슨(Tennyson 1809-1892)의 시, ‘참나무(The Oak)’는 나무 잎 떨어지고 난 겨울 산의 아름다움을 잘 노래합니다. ‘젊거나 나이 들거나 참나무 같은 삶을 살아라’로 시작하여 마지막 구절은 ‘줄기나 가지, 나목 되어 선 발가벗은 저 힘, 나력(naked strength)’으로 맺습니다. 겨울나무로부터 고동치는 생명의 힘을 느낍니다. 온몸으로 느낍니다 - 겨울나무, 그저 앙상하게 드러난 줄기와 가지로부터 온몸으로 생명의 힘을 느끼시다니…. 연륜이 깊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나무들을 맞아들이면 눈에 보이는 것도, 느껴지는 것도 깊어지고 넓어지는 것…. 제대로 볼 줄 아는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깊은 통찰…. 이 구절을 읽고 참 기분이 좋았다.

나는 시골에서 생활하는 관계로 항상 나무들을 가까이서 접하게 된다. 겨울에 접어들면서 우리 집 둘레에 심어져있는 각종 나무들도 잎들을 떨어내고 발가벗은 채 서 있다. 완전히 벗어버림으로써 덕지덕지 매달린 온갖 애착과 욕망을 끊어가는 수행승의 모습을 닮았다. 겨울을 나기 위해 비본질적인 것은 다 떨어뜨리고 뼈만 남은 모습이 조금은 삭막하다. 삭막하지만 선배님께서 보내주신 글을 읽은 후라서 그런지 새로운 친근감이 느껴졌다. 나는 밖으로 나가 우리 집 둘레에 심어져있는 나무들을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바라보고 있는데 자꾸 나를 부르는 것 같다. 가까이 다가와서 직접 만져보라고. 만져보니 예전보다 단단해졌다. 나무가 보다 단단해진 것은 겨울내내 불어 닥치는 모진 추위로부터 자신을 견뎌내기 위함이란다. 평생을 같은 자리에서 살아야 하는 애꿎은 숙명. 그러기에 따뜻한 곳을 찾아 옮겨갈 수 없는 숙명을 안고서 침묵 속에 찬바람 눈보라를 제 몸에 깊이 새기면서 이 겨울을 의연하게 견뎌내고 있는 것이다.

나무는 이렇게 혹독한 겨울을 견뎌내기 위해 버릴 것은 다 버리면서도 자기가 해야 할 일은 반드시 해나간다. 그중 하나는 가지와 잎에는 수분 공급을 끊어 고사시키면서도 뿌리에는 계속 물을 대준다. 자신의 뿌리에 숨겨 놓은 꿈만은 버리지 않겠다는 뜻이다. 버리되 뿌리를 지킬 수만 있다면, 떨구되 꿈을 버리지 않는다면 다시 꽃을 피울 수 있다는 것을 나무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겨울눈(冬芽)을 키워나간다는 것이다. 모진 겨울을 보내면서도 역설적이게도 가장 연한 조직을 겨울눈 속에 담아서 미래를 준비한다. 겨울눈 속엔 새봄이 담겨 있고, 그것은 곧 미래이고 희망이다.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키우는 것이다.

우리네 삶 또한 이와 같을지니, 매년 겨울이 찾아오듯 삶에도 어려움은 반드시 찾아오는 법. 코로나로 인해 빚어진 이 고통의 시절, 나무가 혹독한 겨울을 견뎌내기 위해 단단해지듯이 우리도 단단해져야 한다. 그리하여 좋든 싫든 그 자리에서 자기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 험한 세상풍파를 거치면서 고통 속에 상처받는 일이 없을 수 없지만 여기서 좌절해서는 안 된다. 계속 상처받아 고통스럽지만 한 해 한 해 나이테가 늘어갈수록 더욱 단단해지는 나무처럼 우리도 더욱더 단단해져야 한다. 그래서 겨울을 지나고 나면 더욱 지혜롭고 강인한 모습으로 성장해 있는 자신이 되어 있어야 한다.

겨울을 견뎌내지 못하면 봄도 오지 않는다. 우리에게 해마다 봄이 오는 까닭은 겨울을 견뎌내는 그런 인내의 나무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도 겨울을 나고 있는 앙상한 나무 가지를 바라보며 거기에 봄과 여름을 그려 넣는다. 왕성한 생명의 힘이 솟아나는 듯하다. 우리 집 둘레에 이렇게 많은 나무들이 함께 자리잡고 있는 것만으로도 정결한 영혼의 마중물이 되어 나를 행복하게 해 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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