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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S역사칼럼-길 위의 역사](2회) 경복궁 사정전에서김질, 세조에게 밀고하다.
  • 김세곤 칼럼니스트
  • 승인 2018.02.08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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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곤 칼럼니스트

[한국농어촌방송=김세곤 칼럼니스트] 경복궁 사정전(思政殿)에 갔다. 근정전 바로 뒤에 있는 사정전은 임금이 고위직 신하들과 더불어 일상 업무를 보던 편전(便殿)이다. 조정회의, 업무보고, 경연 등 각종회의가 이곳에서 열렸다. 

조선 개국의 설계자 삼봉 정도전은 ‘정무를 깊이 생각하고 처리하라’는 의미에서 사정전이라 이름 지었다.

그런데 1456년 6월초에 이곳에서 피바람이 일어났다. 조선왕조 500년 중 가장 비극적이고 처참한 살육이었다.

피바람은 세조 2년(1456년) 6월2일 성균사예 김질의 밀고로 시작되었다. 6월1일의 단종복위 거사가 무산되자 불안을 느낀 김질은 장인인 의정부 우찬성 정창손에게 거사계획을 누설했다. 정창손은 즉시 김질과 함께 궁궐로 달려가 세조에게 비밀 면담을 요청했다. 정창손은 세조의 최측근이었다. 정창손의 고종사촌인 홍원용이 세조와 동서지간이었다.

세조는 사정전에서 김질의 고변(告變)을 들었다. 1456년 6월2일자 「세조실록」에 나온다.

김질이 아뢰기를, "좌부승지 성삼문이 신(臣)을 보자고 하기에 신이 그 집에 갔더니, 성삼문이 말하기를, ‘근일에 혜성(彗星)이 나타나고, 사옹방(司饔房)의 시루가 저절로 울었다니, 장차 무슨 일이 있을 것인가?’ 하므로, 신이 말하기를,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까?’ 하였습니다.

경복궁 사정전, 근정전 바로 뒤에 있다. 조선 개국의 설계자 삼봉 정도전은 ‘정무를 깊이 생각하고 처리하라’는 의미에서 사정전이라 이름 지었다. 사진=김세곤 칼럼니스트

(중략) 이윽고 또 말하기를, ‘상왕과 세자는 모두 어린 임금이다. 만약 왕위에 오르기를 다투게 된다면 상왕을 보필하는 것이 정도(正道)이다. 모름지기 그대의 장인(정창손을 말함)을 타일러 보라.’하므로, 신이 말하기를, ‘그럴 리가 만무하겠지만, 가령 그런 일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 장인이 혼자서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하니, 성삼문이 말하기를, ‘좌의정 한확은 북경에서 아직 돌아오지 아니하였고, 우의정 이사철은 본래부터 결단성이 없으니, 윤사로·신숙주·권람·한명회 같은 무리를 먼저 제거해야 마땅하다. 그대의 장인은 사람들이 다 정직하다고 하니, 이러한 때에 창의(唱義)하여 상왕을 다시 세운다면 그 누가 따르지 않겠는가? 신숙주는 나와 서로 좋은 사이지만 죽어야 마땅하다.’ 하였습니다.

신이 이 말을 듣고 놀랍고 의심스러워 다그쳐 묻기를, ‘그대의 뜻과 같은 사람이 또 있는가?’ 하니, 성삼문이 ‘이개·하위지·유응부도 알고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김질(1422∼1478)을 끌어들인 것은 성삼문(1418∼1456)이었다. 성삼문은 김질에게 일이 성사되면 정창손을 영의정으로 삼겠다고 제의했다. 

정창손(1402∼1487)은 집현전 부제학을 한 바 있고, 대사헌과 이조판서를 하였고, 세조 즉위 후는 우찬성을 한 중진이었다. 그는 왕실의 불교 숭상을 반대했다가 좌천되기도 한 유학자여서 성삼문이 신뢰하고 있었다.

김질의 고변을 듣고 세조는 숙위(宿衛)하는 군사들을 집합시켜 경비를 삼엄하게 하고, 급히 승지들을 불렀다. 도승지 박원형 · 우부승지 조석문 · 동부승지 윤자운과 성삼문이 입시(入侍)하였다. 세조는 내금위(內禁衛) 조방림에게 명하여 성삼문을 잡아 끌어내어 꿇어 앉혔다.

‘성삼문을 잡아 끌어내어 꿇어 앉히라’고 한 것은 성삼문을 사정전 앞마당으로 끌어내어 꿇어 앉혔다는 의미이다.

사정전 앞마당, 세조는 내금위(內禁衛) 조방림에게 명하여 성삼문을 잡아 끌어내어 사정전 앞마당에 꿇어앉혔다. 사진=김세곤 칼럼니스트

이내 세조가 성삼문에게 묻기를, "네가 김질과 무슨 일을 의논했느냐?" 하였다. 성삼문이 하늘을 우러러보며 한참 동안 있다가 말하기를, "청컨대 김질과 면질(面質)하고서 아뢰겠습니다." 하였다. 세조가 김질과 대질시키니 김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성삼문은 "다 말하지 말라." 하고서 이어 말하기를, "김질이 말한 것이 대체로 같지만, 그 곡절은 사실과 다릅니다." 하였다.

이어 명하여 곤장을 치게 하고, 같이 공모한 자를 물었으나 성삼문은 말하지 아니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너는 나를 안지가 가장 오래 되었고, 나 또한 너를 대접함이 극히 후하였다. 네가 숨기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하니, 대답하기를, "진실로 상교(上敎)와 같습니다. 신은 벌써 대죄(大罪)를 범하였으니, 어찌 감히 숨김이 있겠습니까? 실은 박팽년·이개·하위지·유성원과 같이 공모하였습니다." 하였다. 세조가 더 추궁하니 "유응부와 박쟁도 알고 있다."고 진술했다.

「세조실록」에는 성삼문이 대죄를 범했다고 순순히 자백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생육신 남효온(1454∼1492)이 지은 『육신전』과는 한 참 다르다. (다음주 계속됩니다.)

김세곤 칼럼니스트  segon5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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