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영 연보 (청도박물관 소장)
탁영 연보 (청도박물관 소장)

다시 길을 떠난다. 이번에는 생육신(生六臣) 순례이다. 1455년 윤 6월 11일에 세조가 조카 단종의 왕위를 찬탈했다. 1457년 6월에는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영월로 유배갔다. 4개월 후에 단종은 죽임을 당했다. 이러자 김시습(金時習)·원호(元昊)·이맹전(李孟專)·조려(趙旅)·성담수(成聃壽)·남효온(南孝溫)은 평생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초야에 묻혀 살았다.   

1490년 가을에 김시습(1435∽1493)이 삼각산(지금의 북한산) 중흥사에 나타났다. 1483년에 김시습이 수락산에서 서울을 떠난 지 7년 만이었다. 

이때 남효온(1454∽1492)이 술을 가지고 홍문관 부수찬 및 예문관 검열  김일손(1464∽1498)과 함께 찾아왔다. 

김일손은 1478년 2월에 성균관에 입학하여 남효온을 처음 만났으니 두 사람은 18년간 친교한 사이였다. 남효온은 1478년 4월 15일에 성종의 구언교에 따라 소릉(단종의 모친 현덕왕후 권씨의 능)복위를 상소하여 파장이 컸다. 하지만 그는 1481년에 진사에 합격하였지만 과거시험은 포기했다. 
   
김일손과 남효온은  자주 만났다. 두 사람은 수락산에 사는 김시습을 자주 찾아갔고 1481년에는 원주의 원호를 1487년에는 파주의 성담수를 배알하였다. 

북한산 중흥사에서 김시습 ·남효온 · 김일손은 5일간 함께 지냈다. 그 정황이 김일손의 조카 김대유가 편집한 『탁영선생연보(濯纓先生年譜)』에 나온다. 

“세 사람은 밤새 담소하고 함께 백운대에 등정하고 도봉에 이르렀는데 무려 닷새 동안을 같이 보내고 헤어졌다. 그때의 담론이 모두 없어져서 전하지 않는데 혹시 기휘(忌諱)하는 바가 있어 그러한 것인지 알 수 없다.”(성종 21년 9월 경신) 

세 사람이 나눈 대화 내용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이들은 단종애사(端宗哀史)에 대하여 이야기 했을 것이다. 단종과 사육신 그리고 소릉, 생육신 등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이다. 

생육신 이야기는 주로 김일손이 하였다. 김일손이 어두운 과거와 역사의 상흔을 접한 것은 그의 나이 15세 시절이었다. 김일손은 1478년 3월에 성균관에 입학하였고, 3월에는 충청도 단양에서 ‘역동선생(동방의 주역선생)’ 우탁(禹倬)의 후손인 참판 우극관의 딸을 부인으로 맞았다. 4월에 그는 고향인 경상도 청도로 가는 도중에 선산에서 경은(耕隱 농사를 지으면서 은거함) 이맹전(李孟專 1392~1480)을 배알하였다.  

이맹전은 1427년(세종 9)에 문과 급제하였으며, 승문원 정자를 거쳐 1436년에 사간원 정언에 임명되었다. 얼마 뒤에 그는 거창 현감이 되었는데 청렴결백하다는 평판을 받았다.

1453년(단종 1) 10월 10일에 수양대군이 황보인·김종서 등 대신을 죽이고 정권을 탈취한 계유정난이 일어나자, 그는 1454년에 사직하고 고향인 선산으로 돌아가서 청맹과니라 핑계하고는 은둔했다. 그는 친한 친구마저 사절하고 30여 년이나 문밖에 나가지 않았다. 그가 지은 시 “눈과 귀 모두 다 어둡고 막히어서, 견문 없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싶네(眼欲昏昏耳欲聾 見聞無敏與癡同)”는 소경 · 귀머거리 삶을 잘 말해준다.  

1476년에 김종직은 선산부사를 했다. 이때 김종직은 이맹전을 만났다고 한다. 김종직은 부친 김숙자의 언행(言行)을 기록한 책 이준록(彛尊錄)에 김숙자와 교유한 이맹전의 약력을 기록했다.  

“이맹전 : 대대로 선산에서 살았다. 벼슬이 사간원 정언, 소격서 영(昭格署令)에 이르렀는데, 중년(中年)에 벼슬하기를 싫어하여 향리(鄕里)로 물러나와 살면서 남들과 다투는 일이 없었다. 지금 나이가 이미 90세가 되었고, 부인 김씨 또한 86세인데, 모두 건강하다.”

한편 어린 김일손이 이맹전을 찾아오자 반가웠을까? 이맹전은 그 마음을 시에 담았다.  

집 옆 맑은 시냇물 찾아가는 꿈도 많이 꾸었지   宅邊淸澗夢行多 
문득 내 집에 등잔이 밝게 비추는 것을 알았네.  俄覺燈明在我家 
애달프다, 음성과 용모 지척인데 듣지도 보지도 못하니惆悵音容違咫尺 
이제 이 몸은 늙고 병들어 가는 나날이라네    只困衰病日來加 

이러자 김일손이 화답하였다. 

경은 이선생의 시에 삼가 화답하여 드리다 (1478년)
 
선생이 종적을 감추고 눈멀고 귀먼 것처럼 하신 뜻을 先生韜晦久盲聾
소자가 어찌 알아 뜻을 같이 하오리까마는           小子何知意欲同
밤마다 소쩍새 우는 소리 끊이질 않는데             夜夜子規啼不盡 
구의산 산색이 달빛 속에 아련하오이다.              九疑山色月明中 
(김일손 지음 · 김학곤 조동영 올김, 탁영선생문집, 탁영선생숭모사업회, 2012, p 394-395 ; 이종범 지음, 사림열전 2 순례자의 노래, 아침이슬, 2008, p 346-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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