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호 임제의 원생몽유록 (4)

태백산 정상의 단종비각
태백산 정상의 단종비각

백호 임제의 『원생몽유록』의 마지막 부분이다.  
 
조금 뒤에 범 같은 한 사나이가 뛰어 들어왔다. 신장이 몹시 크고 용맹이 절륜(絶倫)하며, 얼굴은 대춧빛 같고 눈은 샛별 같으며, 문산  (文山)의 의리와 중자(仲子)의 청렴을 지녀 위용이 늠름하므로 사람으로 하여금 공경심을 불러일으켰다.

문산(文山)은 송나라의 충신 문천상(文天祥 1236~1282)의 호이다. 그는 1276년에 송나라의 수도 임안(臨安)이 함락되자 단종(端宗 재위 1276~1277)을 받들고 근왕군(勤王軍) 1만 명을 이끌고 분전(奮戰)하였다. 하지만 그는 원나라 장군 장홍범에게 패하여 대도(大都: 北京)로 송치되어 3년간 토굴에 감금당했다. 쿠빌라이칸이 그의 재능을 아껴 전향을 권유했지만 그는 끝내 거절하고 죽음을 택했다. 그가 옥중에서 쓴 『정기가(正氣歌)』는 후세의 충신과 의사들의 귀감이 되었다. 

중자(仲子)는 전국 시대 제(齊)나라의 청렴한 처사(處士) 진중자(陳仲子)이다. 그는 대를 이어 벼슬해온 집안사람으로 그의 형 진대는 개(蓋) 땅에서 받는 녹이 만종(萬鍾)이 되었으나 불의한 녹이라 하여 형의 보살핌을 거부했고, 편벽한 오릉(於陵) 땅에 살면서 어떤 때는 빈궁하여 3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살았다. 『맹자 (孟子)』 <등문공하 (滕文公下)>에 나온다. 

이어서 그(유응부)는 들어가서 임금에게 배알하고 다섯 사람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아, 썩은 선비는 함께 큰일을 이룰 수 없도다.” 하고는 칼을 뽑아 일어나 춤추니, 슬픈 노래는 강개하고 소리는 큰 종이 울리는 듯하였다.
가을바람 쓸쓸히 부니             風蕭蕭兮
나뭇잎 떨어지고 물결 차갑구나    木落波寒
칼 어루만지며 길게 휘파람 부니   撫劍長嘯兮
북두성이 비스듬히 걸려 있네      斗星闌干
살아서는 충절을 온전히 했고      生全忠節
죽어서는 의로운 혼백 되었네      死爲義魄
이내 마음 어떠하던가             襟懷何似
강물 위의 둥근 달일세            一輪江月
아아 당초 계책이 틀렸으니        嗟不可兮慮始
썩은 선비들 어찌 책망할까        腐儒誰責

노래가 아직 끝나기도 전에 달빛이 검어지고 구름이 어두워져서 비가 울며 내리고 바람이 탄식하며 불었다. 격렬히 내리치는 천둥소리에 모두가 갑자기 사라져버렸고, 자허 또한 놀라서 깨어 보니 바로 한바탕 꿈이었다.

이처럼 자허(원호)는 한바탕 꿈을 꾸고 깨어났다. 

자허의 벗 해월거사(海月居士)가 듣고서 애통해하며 말하였다.

“대저 자고이래로 임금이 어리석고 신하가 어두워서 모두 전복(顚覆)되는 지경에 이르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 보건대 그 임금도 반드시 현명한 임금이라 생각되고, 그 여섯 사람 또한 모두 충성스럽고 의로운 신하였다. 이러한 신하들이 이러한 임금을 보필했는데도 이처럼 참혹한 일이 있었는가. 오호라! 형세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시(時)와 세(勢)에다 돌리지 않을 수 없고, 또한 하늘에다 돌리지 않을 수 없다. 하늘에다 돌린다면 선인(善人)에게 복을 내리고 악인에게 재앙을 내리는 것이 하늘의 도가 아니란 말인가. 하늘에 돌릴 수 없다면 어둡고 막연하여 이 이치를 상세히 알기 어려우니, 우주가 아득하기만 하여 한갓 뜻있는 선비의 회한만 더할 뿐이다.” 

살펴보건대 이 글은 우언(寓言 풍자적이거나 교훈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이야기. 우언의 주된 목적은 이야기를 통해 작가 또는 민중들의 생활상이나 심리, 행동에 대한 비평과 교훈을 표현하는 데 있음)이기 때문에 독자가 대부분 분명하게 분별하지 못한다. 그 다섯 사람이라고 한 것은 대개 사육신을 가리킨다. 첫째는 박공(朴公 박팽년)이고, 둘째는 성공(成公 성삼문)이고, 셋째는 하공(河公 하위지)이고, 넷째는 이공(李公 이개)이고, 다섯째는 류공(柳公 류성원)이다. 그리고 ‘한 사나이’라고 한 사람은 유공(兪公 유응부)을 가리키고, 복건을 쓴 사람은 곧 선생(남효온)을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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