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육신 순례 (10) 

공주 동학사 입구
공주 동학사 입구

1491년 3월에 관동으로 돌아간 김시습은 1492년 가을에 서해안 명산을 돌아다녔다. 아마 단종의 초혼각이 있는 계룡산 동학사에서도 며칠 머물렀으리라.  

이후 그는 무량사(無量寺)로 향하였다. 무량사는 충남 부여군 외산면   만수산(570m) 기슭에 자리잡은 사찰이다.  
 
김시습은 무량사에서  지희(智熙)선사를 만났다. 김시습과 지희는 옛 친구였다. 

남효온이 지은 ‘표훈사(表訓寺 금강산 만폭동 萬瀑洞에 있는 절) 주지 지희(智熙) 스님께 드리다’ 시가 있다.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 DB, 추강집 제2권 /시(詩) ○오언고시 五言古詩)

여산(廬山)에서 세 사람이 웃은 이후로  廬山三笑後
이 스님 유학자를 좋아하시네           此公好儒者
호계의 밖에서 나를 맞이하여           迎我虎溪外
백련사에다 나를 앉히시는구려          坐我白蓮社

여산은 호계삼소(虎溪三笑) 고사가 온 곳이다. 호계는 중국 여산의 동림사(東林寺) 앞에 있는 시내이다. 진(晉)나라 혜원법사(慧遠法師)가 이곳에 있으면서 손님을 보낼 때 이 시내를 건너지 않았는데 여기를 지나기만 하면 문득 호랑이가 울었다. 하루는 도연명(陶淵明), 육수정(陸修靜)과 함께 이야기를 하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호계를 넘자 호랑이가 우니 세 사람은 크게 웃고 헤어졌다. 

한편 백련사(白蓮社)는 혜원법사가 동림사에서 결성한 정토 신앙 결사 단체이다. 이 모임엔 도연명, 육수정 등이 참여했다. 

이처럼 지희 선사와 김시습 그리고 남효온은 백련사였다.   

쌀밥에 향기로운 나물 곁들여           粳飯配香蔬
찻잔에 맛있는 약과도 올려주시네요     茶桮羞藥果
떠나기 전에  짚신까지 주시니          臨行贈芒鞋
돌부리를 밟더라도 괜찮겠구려          石角行亦可

그런데 지희 선사는 김시습에게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발문(跋文)을 부탁하였다. 지희(智熙)는 조충효라는 인물의 시주와 홍산현감 이영화의 도움을 받아 1491년 2월부터 1492년 5월까지 법화경을 판각한 것이다. 

이 경(經)의 산스크리트어명은 ‘삿다르마 푼다르카 수트라(saddharma-pundari-ka-sūtra)’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이 역명(譯名)이다. 우리가 법화경(法華經)이라고 하는 것은 묘법법화경(妙法蓮華經)의 약칭이다. 

28품으로 구성된 법화경은 연꽃과 같이 미묘한 부처님의 교리는 하나밖에 없으며 누구나 이 교리에 기초하여 불도를 닦으면 부처가 될 수 있음을 설법하고 있다. 

한편 김시습은 1493년 2월에 발문을 지어 돈오(頓悟 갑자기 깨달음)와 점수(漸修 점차로 수행하여 도를 깨침)와 원만(圓滿)이 서로 떨어질 수 없음을 논하였다. 

그 일부를 읽어보자.
  
“화엄선사 지희가 만수산 무량사에 거처하면서 묘법연화경의 글자를 극히 오묘하게 주조해서 찍어냈던 것을 다시 판목에 새겼는데, 글자체가 아주 공교(工巧)하고 새기는 것이 신이할 정도로 빼어나다.
 판목은 신해년(1491년) 봄 2월에 시작해서 임자년(1492년) 여름 5월에 마쳤다. 일을 처리함이 정밀하고 상세할 뿐만 아니라, 정성스럽고 간절함도 비할 바가 없다. 

이른바 ‘정(精)’이란 다른 것이 섞이지 않고 순수함을 뜻한다. ‘성(誠)’이란 망녕되지 않고 진실함을 뜻한다. 상(詳)이란 있는 대로 다함이요,   간(懇)이란 지극함이다. 정밀하고 성실하며 상세하고 간절하므로, 둘로 따로따로 여기지 않을 수 있다. 둘로 따로따로 여기지 않을 수 있기에, 나의 삶과 부처님 사이에 틈이 없으며, 그렇기에 나의 유통이 곧 부처의 유통이다. 부처의 원(圓)이 자재(自在)하고 장엄(莊嚴)하므로 나의 원도 자재하고 장엄하다. 그렇다면 보은(報恩)의 네 가지 일과 삼계(三界)의 고통에서 벗어남도 오히려 손바닥을 뒤집듯 쉬운 일이다.”

여기에서 ‘보은의 네 가지 일’이란 의복 · 음식 ·와구(누울 때 쓰는 물건들) · 탕약(湯藥)으로, 일체제불(一切諸佛 과거세 ·현재세 · 미래세의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고 공경하는 일을 말한다.  

‘삼계(三界)의 고통에서 벗어남(拔苦三有)’이란 3가지 괴로움에서 구제해주는 것을 말한다. 삼계는 욕계(欲界)·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를 말한다. 여기에서 욕계는 식욕 ·수면욕 · 음욕이 왕성한 세계를 말하고, 색계란 탐욕은 없어졌으나 아직 물질을 완전히 여의치 못한 세계, 무색계는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의 4온만 존재하는 순수 정신세계를 말한다. 

그런데 김시습은 ‘법화경’ 발문에 ‘췌세옹(贅世翁) 김열경(金悅卿 열경은 김시습의 자이다.)’이라고 서명했다. 법명인 ‘설잠(雪岑)’을 사용하지 않은 것이다. (심경호 지음, 김시습 평전, 돌베개, 2003, p 571-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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