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습, 무량사에서 입적하다

무량사 극락전
무량사 극락전

1493년(성종 24) 봄에 김시습(1435∽1493)은 무량사 선방 청한당에서 세상을 떠났다. 나이 58세였다. 「무량사에서 병으로 눕다(無量寺 臥病)」 시가 있다. 아마 평생 마지막 시였을지 모른다. 

봄비 줄기차게 흩뿌리는 이삼월인데             春雨浪浪三二月 
급작스런 병을 견디며 선방에서 일어나 앉는다   扶持暴病起禪房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을 물으려 해도         向生欲問西來意 
다른 스님들이 행여 알까 두렵네                 却恐他僧作擧揚 

폭병(暴病)은 뜻하지 않은 병이라는 의미이다. 김시습은 간혹 아프긴 했지만 오랜 방랑으로 몸은 다져져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병이 깊었다.  
절에 왔으니 불법을 토론하고 싶었지만 기력도 없고, 다른 스님 앞에 나설 뜻도 없었다. 그렇게 설잠은 조용히 떠났다.

홍유손(洪裕孫 1431∽1529)이 제문을 보냈다. 홍유손은 1465년 원각사 상량법회가 있던 날 김시습을 처음 만났다. 이어서 1480-1482년에 김시습이 수락산 생활을 했을 때는 남효온·김일손과 같이 자주 만났다. 

김시습이 입적했을 때 홍유손은 본향인 남양(南陽, 경기도 화성시)에서 향리로 일했다. 남양은 무량사와 가까워 남보다 소식이 빨랐을 것이나 홍유손은 향역에 묶인 몸인지라 직접 올 수 없었던지 서둘러 제문만 보낸 것이다. 남효온이 1492년에 세상을 떠났으니 달리 제문을 지을 사람도 없었다. 


그러면 홍유손의 제문을 읽어보자.

“사람들이 공께서 선세(蟬蛻 : 매미가 허물 벗듯 육신을 버리고 죽음)하셨다는 말을 전하면서 크게 놀라고 슬퍼하여 눈물을 주르르 흘리기 까지 하였습니다. 한달음에 달려가 상례에 임하려 했으나, 길이 멀어 글월을 올려 멀리서 조문하나이다. 

아아! 공께서는 세상에 나서 5세에 이름을 날리셨으니, 삼각산을 읊으신 절구는 늙은 선비의 마음을 서늘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온 세상이 놀라 떠들썩하게 말하길,‘공자가 다시 태어났다’하였습니다. 그러나 공께서는 벼슬길에 나감을 즐겁게 여기지 않으시고 불교에 의지하여 모습을 바꾸시니, 추로(공자가 맹자가 태어난 곳)의 밝은 도리(유학)에 통하고, 오축(불교의 발상지)의 현묘한 학설(불교)을 궁구하여 만물과 나를 무상에 혼합하고 성령을 일월과 가지런히 하였습니다. (...)  

그러나 세상 이치를 깨달으시고 오만하게 구시며, 동해의 끝까지 다 보았으니, 하물며 구름이 다 걷힌 곤색 하늘을 시선 닿는 데 까지 본 것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명산과 대천(大川)에는 오직 공의 자취가 두루 나타났고, 기암괴석과 수려한 물길도 공이 감상하신 뒤에야 비로소 빛나게 되었습니다. 

만년에는 추강(남효온)과 서로 만나 지극한 이치를 숨김없이 이야기 하였고, 수천정 이정은과 함께 소요하셔서 떠나고 만남에 그 믿음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추강께서 공보다 먼저 돌아가시어 백아에게 거문고 줄을 끊게 하더니, 오늘 공의 죽음을 슬퍼하게 되다니 어찌 황천으로 쫓아가고 싶지 않겠습니까? 상상컨대 구천에서 유희하시고, 마음대로 시를 주고 받으며 너울너울 날아다니면서, 반드시 티끝 세상을 내려다 보시고, 또한 손뼉을 치며 크게 웃고 계시겠지요. (...)  
생각하건대, 공의 말씀은 범상하셨지 괴상하게 굴면서 남다른 이치를 찾는 것이 아니었으니, 비록 그 마음속에 쌓은 것을 말하지 않는다 해도, 그 본래의 깊은 깨달음을 그 누가 모르겠습니까? 공은 비록 숨기셨지만 마음으로 가만히 부합하였으니, 공을 알아줄 사람으로는 우리만한 이가 없을 것입니다. (...)
공께서 가심은 사사로움이 없으시지만 사람들의 슬퍼함에는 사사로움이 있기에, 그저 세상의 습속을 따라서 멀리서 영원하시기를 천도(薦度 죽은 사람의 혼령이 극락세계로 가기를 기원)합니다. 하늘에 계신 공의 영령이시어, 미미한 정성이나마 이때에 받으소서.”

그런데 김시습은 죽으면서 다비(茶毘)하지 말고 절 옆에 묻어 달라고 유언하였다. 다비는 화장(火葬)을 말한다. 무량사의 승려들은 김시습의 말대로 거애불사(擧哀佛事)를 행하고 시신을 절 옆에 매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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