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량사의 김시습 부도 

부여 무량사(無量寺)의 김시습 초상을 보고 나서 천왕문을 나왔다. 오른 편에는 김시습 부도(浮圖)가 있다. 1493년 봄에 김시습은 유언하기를, “화장하지 말고 절 옆에 임시로 매장하라.” 하였다. 그런데 3년 뒤에 무덤을 파보았더니 얼굴이 마치 살아 있는 사람 같았다고 한다. 승려들은 그가 틀림없이 부처가 되었다고 여겨 다비(茶毗 화장)를 행하였다. 그때 사리 한 점이 나와 사리를 봉안하는 부도탑을 1495년에 세웠다. 

김시습 부도는 오른편에는 부도가 있고, 왼편에는 매월당 시비(詩碑)가 있다. 

먼저 ‘부도 안내판’부터 읽는다. 

김시습 부도 전경
김시습 부도 전경

매월당 김시습(설잠 스님) 부도

김시습 사리는 일제강점기 때 폭풍우로 나무가 쓰러지면서 함께 넘어진 김시습 부도에서 발견되었다. 이 때 발견된 사리는 국립부여박물관에 보관하다가 2017년 무량사로 이운하였고, 무량사 경내에 보관할 수 있도록 2020년 10월 새로이 부도를 조성하였다. (후략)  

 

다음에는 부도를 살펴본다. 부도앞에는 五歲金時習之墓(오세김시습지묘)라고 적힌 묘비가 있다. 

부도 앞의 묘비 
부도 앞의 묘비 

김시습은 1453년에 서울 성균관 북쪽 반궁리 외가에서 태어났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영특하였고, 이웃에 살던 최치운이 ‘시습(時習)’이라는 이름을 지어 그의 외할아버지에게 주었다. 시습은 논어 맨 처음에 나오는 ‘學而時習之 不亦悅乎(학이시습지, 불역열호 :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에서 따온 말이다.   

김시습은 5세 때에 신동(神童)으로 소문이 나서 오세(五歲)라는 별명이 붙었다.  

1582년에 선조의 명에 따라 이율곡이 지은 ‘김시습전(金時習傳)’에는 오세의 내역이 적혀 있다. 

“김시습의 자는 열경(悅卿)이요, 본관은 강릉이다. 신라 알지왕(閼智王)의 후예에 왕자 주원(周元)이란 이가 있었는데, 강릉에 살았기 때문에 그의 자손들이 그곳에 본적을 두게 되었다. (...) 일성(日省)은 음사(陰仕)로 충순위(忠順衛)가 되었다. 일성이 선사 장씨(仙槎 張氏)에게 장가들어 1435년에 한성에서 시습을 낳았다.

김시습은 나면서부터 천품이 남달리 특이하여 생후 8개월 만에 스스로 글을 알았다. 최치운이 보고서 기이하게 여겨 ‘시습’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시습은 말은 더디었지만 정신은 영민하여 글을 볼 때 입으로는 읽지 못했으나 그 뜻은 모두 알았다. 세 살 때 시를 지을 줄 알았고, 다섯 살에 《중용》과 《대학》에 통달하니 사람들이 신동(神童)이라 하였다. 명공(名公) 허조(許稠) 등이 많이 찾아와서 보았다.

세종대왕이 이를 듣고 승정원으로 불러 시(詩)로 시험하니 과연 빨리 지으면서도 아름다웠다. 하교(下敎)하기를, “내가 친히 보고 싶으나 세속의 이목을 놀라게 할 듯하니, 그 가정에 권하여 드러내지 말고 잘 가르치도록 하게 하라. 그의 학업이 성취되기를 기다려 장차 크게 쓰리라.” 하고, 비단을 하사하고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때부터 그의 명성(名聲)이 온 나라에 떨쳐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다만 5세(五歲)라고만 불렀다.” 

묘비에는 김시습이 지은 ‘자화상 자찬(自贊)’이 한자로 적혀 있다.  

이하(李賀)를 내리깔아 볼 만큼       俯視李賀
해동(海東)에서 최고라고들 말하지    優於海東 
격에 벗어난 이름과 부질없는 명예    勝名謾譽
네게 어이 해당하랴                  於爾孰逢

네 얼굴은 매우 못 생겼고            爾形至藐
너의 말 버릇은 너무도 당돌하도다    爾言大侗
마땅히 너를 두어야 하리             宜爾置之 
깊은 골짜기 속에                    丘壑之中

한편 부도 왼편에는 ‘매월당 시비’가 있다.

 

매월당 시비
매월당 시비

 

半輪新月上林梢
山寺昏鐘第一鼓
淸影潛移風露下
一度凉氣透窓凹

새로 돋은 반달이 나뭇가지 위에 뜨니
산사의 저녁 종이 울리기 시작하네
달그림자 아른아른 찬 이슬에 젖는데
뜰에 찬 서늘한 기운 창틈으로 스미네 

시의 제목은 ‘추석날 밤에 새로 뜬 달(中秋夜新月)’이다.
원래 시는 2수가 또 있다. 7언 율시이다.  

제2수

이슬은 맺혀 있고 가을 달은 예쁜데 
평상 앞까지 들려오는 풀벌레 우는 소리
어찌하여 한가한 내 마음을 뒤흔드는가
일어나 구변(九辯) 노래 한 편 읽어보노라.

白露溥溥秋月娟 
夜虫喞喞近床前  
如何撼我閑田地
起讀九辯詞一編 

구변(九辯)은 송옥(宋玉)이 스승인 굴원(屈原)을 그리며 지은 초사(楚辭)를 말한다. 초사는 초나라 때의 굴원과 그의 작풍을 이어받은 제자나 후인(後人)의 글을 모은 대표적인 남방 문학으로 비장함이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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