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사홍, 이심원을 비난하다.

선정전 내부
선정전 내부

 

1478년(성종 9년) 4월 8일, 주계부정(朱溪副正) 이심원(1454∼1504)이   올린 ‘세조의 훈구 공신은 물러나야 한다’는 상소는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는 훈구 공신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 

4월 9일에 성종은 창덕궁 선정전에서 이심원을 만났다.    

성종 : "상소 중에서 ‘세조 조의 훈신(勳臣)을 쓰지 말라.’고 한 것은 내가 이해하지 못하겠다. 네가 무슨 마음을 가지고 말하였는가?"

이심원 : "대저 창업하는 임금은 뜻이 성공하는 데에 있으므로 비록 한 가지의 재예(才藝)를 가진 자라도 모두 거두어 쓰나, 수성(守成)하는 임금은 이와 달라서 모름지기 재주와 덕이 겸비(兼備)된 뒤에야 쓰는 것입니다. 세조 조에는 한 가지 재주와 한 가지에 능하다고 이름난 자는 단점이 나타나도 장점을 헤아려서 임용하지 아니함이 없었으며, 그 인연으로 공(功)을 얻어서 훈신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전하께서 옛 훈신이라고 하여 모두 녹용(錄用)하였으니, 그 녹용된 자들이 필시 모두 다 어질지는 아니할 것입니다. 만약 어질지 못한 자가 있어서 죄를 범한다면, 벌을 주면 은혜가 상할 것이고 벌을 주지 아니하면 법을 폐하게 되는 것이니 이것이 한(漢)나라 광무제(光武帝)가 공신에게 일을 맡기지 아니한 까닭이며 송(宋)나라 태조(太祖)가 병권(兵權)을 거둔 까닭입니다. 또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신하가 총애와 이익으로 이루어 놓은 공(功)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면 영구히 나라가 아름다움을 보전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원하건대 전하께서 전대(前代)의 일을 거울삼아서 훈구를 임용하지 않으면 공신을 보호할 수 있고 은혜를 상하게 함이 없을 것이며 법을 폐하게 함이 없을 것입니다."

성종 : "지금의 대신들은 모두 세조 임금 때의 훈구인데, 이들을 버리고 장차 누구를 쓸 것인가?"

이심원 : "신은 옛 신하들을 모두 쓸 수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 가운데 재주와 덕이 겸전(兼全)한 자는 쓰고, 어질지 못한 자는 쓰지 말자는 것입니다. 또한 영웅호걸로 숨어 있는 자가 무궁무진하니 어찌 쓸 만한 사람이 없겠습니까?"

성종 : "이는 작은 일이 아니므로 내가 마땅히 참작해서 헤아리겠다."

이심원이 나가자 도승지 임사홍이 성종에게 아뢰었다. 

"신의 생각으로는, 조정에서 사람을 쓰는 데에는 모름지기 기로(耆老)와 구신(舊臣)을 써야 한다고 여겨집니다. 비록 작은 허물이 있을지라도 마땅히 너그러이 용납하여 한가로운 자리에 두고 국정(國政)에 참여하게 함이 가하며, 만약 큰 허물이 있으면 법으로 다스릴지라도 또한 가합니다. 이심원은 다만 옛글을 읽었을 뿐이고 시의(時宜)에 맞추어 조처함을 알지 못하니, 이는 진실로 어리석고 망령된 사람입니다.” 

임사홍은 효령대군의 손녀사위이고 세조의 공신인 임원준의 아들이었다. 그런데 이심원의 고모부인 임사홍이 이심원을 비난한 것이다. 요즘같으면 공익 신고자를 문제 있는 자로 모는 것과 비슷하다.  

창덕궁 선정전 안내판
창덕궁 선정전 안내판

 

성종 : "내가 상소를 보고 이심원을 불러서 물었는데, 그 말은 모두 유자(儒者)의 평범한 이야기였으며 다른 뜻은 없었다."

임사홍이 또 아뢰었다. 

“요즘 조정 신료들이 자못 말을 쉽사리 하는 폐단이 있습니다. 이제 전하께서 간(諫)하는 말에 따르시니, 대간(臺諫)이 부당한 말을 하는 일이 많습니다. 어찌 대간의 말이라고 하여 다 따르겠습니까? 만약 일을 말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옛날을 참작하고 지금을 헤아려 써서 시행할 만한 것으로 생각한 연후에 말해야 하며 그렇지 아니하면 한갓 구차한 말일 뿐입니다.” 

성종 : "작명(爵命)은 진실로 인신(人臣)이 사사로이 할 수 없는 바인데, 일이 진실로 잘못되었다. 그러나 훈구대신을 어찌 한 가지 실수 때문에 견책하겠는가?"

이 날의 실록엔 사신(史臣)이 논평이 적혀 있다. 

"인신(人臣)은 마땅히 간하는 말을 받아들이도록 임금에게 경계하는 말을 올려야 하는데, 임사홍의 말하는 바가 이와 같으니 그의 실언(失言)한 죄를 피할 바가 없다." (성종실록 1478년 4월 9일 3번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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