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효온의 상소 (3)

독서당 터 (서울시 성동구 옥수동)
독서당 터 (서울시 성동구 옥수동)

 

1478년(성종 9년) 4월 15일에 성균관 유생 남효온이 올린 상소는 계속된다. (성종실록 1478년 4월 15일 3번째 기사)

“일곱째 풍속을 바루는 것입니다. 사도(司徒 교육자)의 벼슬이 폐지되고부터 풍속이 날마다 야박하여지고, 시서(詩書)의 교육이 해이해지면서부터 옛 풍속을 회복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헌의(獻議)하는 자가 모두 말하기를, ‘풍속이 날마다 야박해지는 것은 시세(時勢)가 그러한 것이다. 세상의 도가 점점 떨어지고 인심이 경박하여 풍속이 옛날 상태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은 늙은 자가 다시 젊어질 수 없는 것과 같다.’고 하지만 신은 그렇지 아니하다고 생각합니다.

당(唐 요임금) 우(虞 순임금)의 풍속이 후하게 된 것은 당(唐) 우(虞) 이전에 탁록(涿鹿)의 싸움(황제 黃帝가 탁록전투에서 치우 蚩尤를 주벌함)이 있었던 때문이며, 은(殷)나라 수도 박읍(亳邑)의 풍속이 후하게 된 것은 박읍 이전에 하걸(夏傑)의 난 (은나라 탕왕이 하나라 폭군 걸왕을 주벌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나라·당나라의 풍속이 후세가 되어서는 한나라 문제와 경제의 덕화(德化)는 은나라 성왕·강왕(康王)에 비견할만하였고, 당나라 태종의 정치는 옛날에 비하여 손색이 없었으니, 어찌 전대(前代)의 풍속은 한결같이 후하고 후세의 풍속은 한결같이 야박하기만 하겠습니까?

한 번 다스려지고 한 번 어지러워지는 것이 대대로 서로 이어져서, 다스려지면 다시 어지러워지고 어지러우면 다시 다스려지는 것입니다.

고려 5백 년 동안 풍속이 지극히 나빠서 동성(同姓)끼리 혼인하여 짐승과 다름이 없었고 친상(親喪)을 줄여서 오랑캐의 풍속과 같았으며, 아들이 아버지를 평론하는 자가 있고 노비가 주인을 평가하는 자가 있었습니다.

고려 우왕(禑王)때에 미쳐서는 극도에 달하였는데, 비색(否塞)한 운수가 극도에 달하면 태평(泰平)한 운수가 오는 것이므로, 우리 조선이 운(運)을 열어 열성(列聖)이 서로 이어서 전하께 이르렀으니 바로 다스려짐이 극함을 당한 때입니다.

이제 사도(司徒)의 법을 다시 행할 만하고 시서(詩書)의 교육을 다시 거행할 만합니다. 전하께서 백성을 밝게 다스려서 백성이 착하게 변하여 화합(和合)하는 것은 당(唐) 우(虞)의 풍속이며, 전하께서 스스로 덕을 공경하여 조야(朝野)의 사람들이 서로 양보하는 것은 주나라 문왕의 풍속입니다.

전하께서 효제(孝悌)를 돈독히 하시면 풍속이 저절로 돈후(敦厚)할 것이고, 전하께서 몸소 절약하고 검소하시면 풍속이 저절로 근본을 힘쓸 것이며, 전하께서 허명(虛名)을 싫어하시면 풍속이 날로 실질을 좇을 것입니다.

전하께서 이(利)를 말하지 아니하시면 풍속이 날로 의(義)를 좇을 것입니다. 풍속이 옛 상태로 회복되는 것은 전하의 한 몸에 달렸는데, 누가 후세의 풍속은 옛 풍속을 회복할 수 없다고 이르겠습니까?

비록 그러할지라도 우(虞)나라 순임금은 사흉(四凶)을 죄줌이 있었고, 공자는 소정묘(少正卯)를 죽였으니, 완악하고 미련하여 가르침을 따르지 아니하는 자를 벌주는 것은 성인(聖人)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자가 노나라 정공(定公) 때 형법을 책임진 사구(司寇)가 되자, 7일 만에 소정묘(少正卯)를 죽였다.

공자는 그를 죽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첫째 음험한 것, 둘째 행실이 편벽하고 고집스러운 것, 셋째 말에 거짓이 있으면서도 그럴싸하게 말을 잘하는 것, 넷째 알고 있는 것이 추잡스러우면서도 박식한 것, 다섯째는 그릇된 일을 일삼으면서도 겉으로는 그럴싸해 보이는 것. 이런 다섯 가지 중에 한가지만 갖고 있어도 군자의 처형을 면할 수 없을 것인데 소정묘는 이 모든 것을 다 갖추었다.”

남효온의 상소는 이어진다.

“이제 몸이 옥당(玉堂)에 있고 지위가 당상(堂上)에 이른 자는 녹(祿)이 적지 아니한데, 풍속을 손상시킴을 위에서부터 범하는데, 하물며 그 밑의 사람은 어떠하겠습니까?

《예기(禮記)》에 이르기를, ‘사람이 예(禮)가 없으면 비록 말이 능할지라도 역시 짐승과 같은 마음이 아니겠는가?’ 하였는데, 신 또한 ‘사람이 어질지 못하면 아무리 학문이 있을지라도 장차 그것을 무엇에 쓸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신의 어리석고 망령된 생각으로는, 전하께서 불효(不孝)· 불목(不睦 화목하지 못함)한 형벌을 써서 한 사람에게 벌을 주어 그 나머지 사람을 경계하여 교화하면 풍속이 바르게 될 것이며, 교화를 행하여 풍속이 바르게 되면 재난을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저작권자 © 한국농어촌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