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습, 동봉육가를 읊다. (2)

경남 함양군 청계서원
경남 함양군 청계서원

 

매월당 김시습의 ‘동봉육가’ 제4수부터 제6수를 계속 읽어 보자.

제4수

어머니, 맹자 어머니 같으셨던 어머니

나를 기르며 고생하고 집을 세 번 옮기셨지요.

일찍이 공자를 배우게 하셔서

경학으로 요순시대를 회복하라 기대하셨지요.

有孃有孃孟氏孃 유양유양맹씨양

哀哀鞠育三遷坊 애애국육삼천방

使我早學文宣王 사아조학문손왕

冀將經術回虞唐 기장경술회우당

어찌 알았으랴 유생이란 이름이 나를 그르치어

십 년을 외지로 분주하게 나다닐 줄을

​아아 네 번째 노래! 우울하고 답답한 이 노래

​골짜기에 우는 까마귀는 제 어미를 먹이건만.

烏知儒名反相誤 오지유명반상오

十年奔走關山路 십년분주관산로

嗚呼四歌兮歌鬱悒 오호사가혜가울읍

慈烏返哺啼山谷 자오반포제산곡

제5수

​푸른 하늘엔 씻은 듯 구름 한 점 없고

거센 바람은 메마른 잡초를 할퀴는구나.

우두커니 수심에 잠겨 푸른 하늘 바라보니

​장구한 하늘 아래 싸라기 같은 내 존재

碧落無雲天似掃 벽락무운천사소

勁風浙浙吹枯草 경풍석석취고초

佇立窮愁望蒼昊 저립궁수망창호

我如稊米天何老 아여제미천하노

​고독을 못내 괴로워 하면서

​뭇 사람과 더불어 사이좋게 지내지 못하니.

​아아 다섯 번째 노래! 애간장 끊는 이 노래

넋이여, 사방 어디로 돌아가랴.

我生何爲苦幽獨 아생하미고유독

不與衆人同所好 불여중인동소호

烏虖五歌兮歌斷腸 오호오가혜가단장

魂兮歸來無四方 혼혜구래무사방

제6수

활을 당겨 천랑(天狼) 별을 쏘려 했건만

​태일(太一) 별이 하늘 중앙에 있고

긴 칼 뽑아 여우를 치려 하였더니

백호가 산모퉁이에 버티고 섰네.

操余弧欲射天狼 조여호욕사천랑

太一正在天中央 태일정재천중앙

撫長劍欲擊封狐 무장검욕격봉호

白虎正負山之隅 백호정부산지우

김시습은 활을 당겨 천랑 별을 쏘려 했으나 태일(도교에서 천제가 살고 있다는 별, 태을이라고도 함) 별이 한가운데 있어 그만두어야 했다.

또 칼을 뽑아 여우를 치려했으나 백호가 산모퉁이에 버티고 있어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여기에서 천랑이나 여우는 악의 화신이다. 김시습은 세상에 가득한 악의 존재와 맞서려 하다가 태일 별과 백호 즉 군주가 버티고 있음을 알고 중단하였다.

강개한 이 마음을 토로하지 못하고

방약무인하게 휘파람 불어본다.

​아아 여섯 번째 노래! 노래하다가 한숨짓네.

​크게 품은 뜻 꺾이니 수염만 매만질 뿐.

慷慨絶兮不得伸 강계절혜부득신

劃然長嘯傍無人 획연장소방무인

嗚呼六歌兮歌以吁 오호육가혜가이후

壯志濩落兮空撚鬚 장지확락혜공년수

김시습은 뜻을 펴지 못하였기에 비분강개한 심정이었다. 그 고통을 이기려고 휘파람 불면서 방약무인(傍若無人)하였다.

휘파람은 거침없이 자유롭게 사는 것은 의미한다. 김시습은 휘파람을 불면서 세상을 내리깔고 살았다.

한마디로 ‘동봉육가’는 김시습의 자전적(自傳的) 시였다.

한편 김시습은 50세 이후 강원도 양양의 설악에 있을 때 ‘나의 삶(我生)’이라는 시를 지어 자신의 생애를 요약했다.

태어날 사람 꼴 취하였거늘

어찌하여 사람 도리 못 다 하였나

젊어선 명리(名利)를 일삼았고

장년이 되어선 자빠지고 넘어졌네

고요히 생각하면 부끄러운 것을

진작 깨닫지 못하였다니.

후회해도 지난 일을 돌이킬 수 없기에

잠 못 이루고 가슴을 방아 찧듯 쳐댄다.

충도 효도 못 이루었거늘

이 밖에 또 무엇을 구하고 찾으랴.

살아서는 하나의 죄인

죽어서는 궁귀(窮鬼)가 되리라만

헛된 이름 또 일어나서

돌아보면 번뇌만 더하구나.

궁귀(窮鬼)는 가난을 가져오는 귀신인데, 불교에서 쓰는 아귀(餓鬼)와 비슷한 표현이다.

나 죽은 뒤 내 무덤에 표할 적에

꿈꾸다 죽은 노인(夢死老)이라 써준다면

나의 마음 잘 이해 했다 할 것이니

품은 뜻을 천년 뒤에 알아주리.

김시습은 자신의 묘표에 ‘꿈꾸다 죽은 노인’이라고 써달라고 하였다.

대동사회(大同社會)를 꿈꾸다 죽은 절개의 선비로 남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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