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주문진항 앞 장성로에 내걸린 태영동부환경의 '강릉 에코파크 사업(주문진 폐기물 매립장)' 반대 현수막 [장원용 기자]
강릉 주문진항 앞 장성로에 내걸린 태영동부환경의 '강릉 에코파크 사업(주문진 폐기물 매립장)' 반대 현수막 [장원용 기자]

 

[한국농어촌방송=홍채린 기자] 지난 11일 정오. 평소 같으면 관광객 등으로 붐볐을 주문진항이 을씨년스러울 만큼 고요했습니다. 사람들 대신 이 거리를 가득 채운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분진, 오염, 중독! 주문진이 다 죽는다” “죽음의 침출수, 폐유독물질 매립장 결사반대” “주문진에 폐기물매립장이 웬 말이냐!” 주문진항 인근 해안로와 장성로 거리 곳곳에는 ‘주문진 폐기물 매립장 반대’를 주장하는 다양한 문구의 현수막들이 곳곳에 걸려 있었습니다. 

주문진읍에 거주하는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최근 주문진을 포함한 강릉 일대에서는 ‘강릉 에코파크(주문진폐기물매립장)’ 설치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태영그룹 자회사인 태영동부환경은 최근 주문진에 폐기물 매립장인 ‘강릉 에코파크 사업’을 진행한다며 원주지방환경청에 관련 서류를 접수하고 절차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폐기물 사업은 윤석민 태영그룹 회장이 신성장동력으로 육성하는 사업입니다. 

‘청정도시’ ‘관광도시’인 강릉 주문진에 폐기물 매립장이 설치될 예정인데, 주민들은 관련 정보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상태고 사전에 충분한 설명이 없었다 보니 공분을 사고 있습니다. 

게다가 지정폐기물매립지가 설치되면 그곳에서 발생하는 침출수가 유출될 경우 주문진 해변을 포함해 강릉 일대 전체에 환경 오염을 유발할 위험성이 커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주문진읍 향호리의 한 주민은 “말로는 매립장이라고 하지만, 독극물 매립장이다”라며 “악취 등이 발생하면 마을 주위에 농작물들이 다 죽게 되고, 우리는 살 수 없는 곳이 될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이어 “태영동부환경 측에서 이장을 포함해 일부 주민들에게만 구미에 위치한 쓰레기 매립장 투어를 보내준 걸로 알고 있다”며 “대부분의 주민들은 내용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에 대해 태영동부환경 관계자는 “설득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이 나온 건 아니고, (원주지방환경청에 환경영향평가를 위한) 초안이 들어가게 되면 주민설명회를 하게 되어 주민들과 얘기할 기회가 있다”며 “주민분들께서 맹목적으로 무조건 안 된다고 반대하고 있다. 우리 의견을 듣지 않고 있어 어려운 부분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강릉 장덕리 '복사골마을' 앞에 자리잡은 '장덕리 은행나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 나무 뒤편으로 보이는 산이 태영동부환경의 만들려는 폐기물 매립지 예정지입니다. [오두환 기자]
강릉 장덕리 '복사골마을' 앞에 자리잡은 '장덕리 은행나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 나무 뒤편으로 보이는 산이 태영동부환경의 만들려는 폐기물 매립지 예정지입니다. [오두환 기자]

 

산 위에 조성되는 태영동부환경 에코파크
높이가 70m...약 빌딩 20층 높이  

천연기념물 166호로 지정된 장덕리 은행나무. 나무 나이가 약 800년으로 추정되는 이 은행나무가 위치한 마을은 ‘복사꽃마을’이라고 불립니다. 주문진항에서 약 5km로 자동차로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습니다. 이 마을에 가면 마을 뒤편으로 작은 산이 하나 보입니다. 

제대로 된 이름조차 없는 이 산에 태영동부환경이 ‘강릉 에코파크’라고 불리는 지정폐기물 매립지를 지을 계획입니다.  

태영그룹 자회사인 ‘태영동부환경’은 강원도 내 사업장배출시설계폐기물 및 지정폐기물의 매립시설이 없고, 전국적으로도 폐기물 매립공간이 부족해 시설을 확보하고자 강릉 주문진읍에 위치한 산 위에 폐기물매립지를 설치하겠다고 사업개요를 밝혔습니다. 

강릉시 에코파크 조성사업 개요를 살펴보면 면적 34만4530㎡로, 그 중 매립면적은 16만1129㎡입니다. 사업면적만 놓고 보면 여의도 공원(약 23만㎡) 보다 큰 규모입니다. 매립용량은 67만66707㎥, 매립대상폐기물은 ‘사업장일반폐기물’, ‘지정폐기물’입니다. 

하지만 사업계획서에 폐기물매립장은 70m 높이로 지어질 계획인데다가, 산꼭대기에 위치한다고 적혀 있어 지정폐기물로부터 발생하는 침출수 등이 주민건강과 생존권에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지적받고 있습니다. 

국토교통부 제157조 ‘폐기물처리 및 재활용시설의 결정기준’에 따르면 폐기물처리 및 재활용 시설은 저지대·저습지·협곡·계곡·공유수면매립예정지 등에 설치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산에는 지을 수 없도록 돼 있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지정폐기물매립장 설치 기준에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70m 높이로 매립장을 지어도 무관하다는 의미입니다. 폐기물 매립 및 매립장 건설에 대한 정부의 기준이 부처마다 달라 빈틈이 많습니다. 

주문진폐기물매립장 반대대책위원회 김성수 사무국장은 “바로 옆이 해변인데다가, 지정물폐기물매립지 높이가 70m다. 약 빌딩 20층 높이라고 보면 되는데 폐기물매립장 높이가 70m가 말이 되나”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어 ”특히 이 지역은 2003년 태풍 ‘루사’ 발생 이후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었던 지역“이라며 ”만일 재난재해가 발생하면, 침출수 방출 통로를 만들어 놓는다 하더라도 폐기물이 쌓이면 쌓일수록 뻗어나가는 침출수 양과 흐름은 저희들도 확인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태영동부환경 관계자는 “산 위가 아니라 산 중간에 협곡이 있다. 중간에 있는 구릉 하나 정도 들어내면 저지대 구릉이 될 것”이라며 “전체를 들어내는 게 아니라 구릉 하나 정도 없애면 매립지 형태가 나온다. 쓰레기 더미를 만든다는 것은 잘못된 얘기”라고 설명했습니다. 

침출수 우려에 대해서도 태영동부환경 측은 ”그런 우려를 할 수 있다. 우려되는 부분들을 주민들에게 들어보고 거기에 맞는 보완 시설 등을 설치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태영동부환경 측이 제출한 서류에 따르면 매립지에 반입할 폐기물 항목엔 광재류, 연소재, 소각재, 분진류, 폐금속류, 폐석회석고류, 폐촉매, 폐흡착재, 폐흡수재, 폐합성수지 등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는 사업장일반폐기물과 지정폐기물에 해당하는데, 폐기물관리법 제2조에 따르면 “지정폐기물이란 사업장폐기물 중 폐유·폐산 등 주변 환경을 오염시킬 수 있거나 의료폐기물 등 인체에 위해를 줄 수 있는 해로운 물질”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주문진폐기물매립장 반대대책위원회 김성수 사무국장 [오두환 기자]
주문진폐기물매립장 반대대책위원회 김성수 사무국장 [오두환 기자]

 

기존 환경평가항목에 ‘해양환경’ 제외
원주지방환경청, 주민 요구에 추가...‘선 주민 동의’ 반영 안 돼 

‘강릉시 에코파크 조성사업’과 관련 논란거리는 또 있습니다. 해양환경 오염 문제입니다. 지난 8월 원주지방환경청이 발표한 ‘강릉시 에코파크 조성사업 환경영향평가’에 따르면 환경 평가 항목에 ‘해양환경’이 제외돼 있었습니다. 

실제로 폐기물매립장이 들어서는 산은 주문진 바닷가까지 5km도 채 되지 않는 아주 가까운 거리입니다. 해양환경 오염을 걱정하지 않을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에 양양군, 현남면, 그리고 주문진읍 주민들은 지난 7월 4일 반대대책위원회를 결성해 원주지방환경청에 ▲평가 항목에 ‘해양환경’ 삽입 ▲선 주민동의 50% 후 사업신청 항목 추가를 요구를 했습니다. 

그러자 원주지방환경청은 환경영향평가 항목에 ‘해양환경 분야’를 추가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선 주민동의 50% 후 사업신청’ 항목은 추가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현재 변경 사항이 반영된 환경영향평가 항목은 아직 발표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태영동부환경 관계자는 ”현재 ‘해양환경’ 항목을 추가하기 위한 전문가·공무원·주민대표 등과 협의를 마친 상태“라며 ”보완된 환경영향평가 초안은 12월 쯤 나오지만, 이후 주민설명회를 거치면 주민들 의견이 또 나올 것이다. 이를 토대로 한 정식 환경영향평가는 내년 상반기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강릉 장성로에는 태영동부환경의 '강릉 에코파크(주문진 폐기물 매립장)' 건설에 대해 반대하는 다양한 문구의 현수막이 걸려 있습니다. [장원용 기자]
강릉 장성로에는 태영동부환경의 '강릉 에코파크(주문진 폐기물 매립장)' 건설에 대해 반대하는 다양한 문구의 현수막이 걸려 있습니다. [장원용 기자]

 

강릉, 폐기물매립시설 설치의무 대상에 없어 
태영동부환경-강릉시 행정소송 가능성 

강릉 주민들이 태영동부환경의 폐기물 매립지 설치에 반대하는 또 다른 이유는 강릉은 폐기물 매립지가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폐기물시설촉진법’ 제5조 및 같은 법 시행령 제3조에 따르면 폐기물처리시설 설치의무 대상 산업단지 기준은 ‘조성면적 50만㎡이상 그리고 연간 폐기물 발생량 2만톤 이상’입니다. 

지난 2월 환경부가 발효한 ‘폐기물매립시설 설치의무 대상 산업단지 현황’에 따르면 설치의무 대상에 강원지역은 ‘홍천군’ 이외에는 의무 대상이 없었습니다. 강릉은 폐기물매립시설 설치 의무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태영동부환경이 만드는 폐기물 매립지에는 전국에서 가져온 폐기물들이 매립될 예정이라는 소리입니다. 자연스레 지역 주민들은 왜 우리 지역에 다른 지역에서 나온 폐기물을 매립해야하나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려에 대해 태영동부환경 관계자는 “법적으로 폐기물들이 어느 지역에서 들어와야 한다는 건 구체적으로 명문화된 것은 없다”며 “다만 기업들이 주변 인근에 처리할 수 있으면 굳이 부산, 대구 이런 곳으로 보내겠나”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강원도에 매립장이 전무하다. 강릉 지역 기업들은 폐기물을 다 외지로 보내야 하기 때문에 물류비 부담도 안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습니다. 

원주지방환경청이 환경영향평가 진행 후 그대로 승인을 내주게 되면, 태영동부환경의 ‘강릉 에코파크 조성사업’은 승인이 날 수 밖에 없습니다. 만약 강릉시가 거부한다면 행정소송을 피할 수 없을 전망입니다. 

태영동부환경과 주민들 사이에서는 ‘강릉 에코파크’ 설득 과정에서 마을 발전기금 이야기까지 나온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에 대해 태영동부환경 관계자는 “발전기금은 회사 측에서 먼저 나온 것은 아니고, 주민들끼리 얘기하다가 나온 것”이라며 “다만 기업은 주민들과 상생하지 않으면 안된다. 상생안에 대해서는 협의할 생각이 있다”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주문진읍 향호리에 사는 한 주민은 “발전기금이 들어와도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에 발전기금을 주면 뭐하나”라며 “매립지 설치는 말도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지역과 공생하는 업체가 되기 위해서는 지역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를 먼저 고민해 주었으면 좋겠다”라고 당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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