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효온의 '주잠(酒箴 술을 경계함)' 시

부여 무량사
부여 무량사

 

남효온은 김시습과 친하게 지낸 홍유손, 그리고 성균관에서 만난 김일손과 함께 수락산을 가끔 찾았다. 김시습·남효온·홍유손·김일손은 만나면 술 마시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담소(談笑)했다.

한번은 김시습이 남효온에게 “나는 선왕(先王)의 두터운 은혜를 받았으니 벼슬하지 않는 것이 마땅하지만, 선생은 이와 다르니 세도(世道)를 위하여 한번 나아감이 옳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남효온은 소릉(단종의 모친 묘소)이 복위된 뒤에 응시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에 김시습은 또다시 말하지 않았다.

한편 남효온은 엄청 술을 좋아했다. 애주가의 수준을 넘어 주당(酒黨)이었다. 남효온의 술 사랑은 남효온은 소개하는 기록엔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먼저 후손 남공철이 쓴 남효온의 묘갈명(墓碣銘) 첫 대목이다.

공은 경태(景泰) 갑술년(1454, 단종2)에 태어났다. 사람됨이 청명(淸明)하고 호매(豪邁)하여 무리 중에 초연히 고사(高士)의 풍모가 있었다. 천성이 술을 좋아하여 때때로 심하게 마시고 크게 취하며 위언(危言)과 궤론(詭論)을 즐겨 하여 기휘(忌諱)를 저촉하였다. 하루는 어머니 공인(恭人)이 걱정하여 경계하는 말을 하자, 공이 이로부터 결코 다시 마시지 않았고 ‘지주부(止酒賦)’를 지어 스스로 경계하였다.

남효온과 친했던 신영희도 「사우언행록」에서 남효온의 음주 사실을 적었다.

남효온의 자는 백공이요, 호는 추강 또는 행우라고 한다. 재주와 행실이 뛰어났으나 의복은 늘 거칠었고, 조랑말을 타고 다녀 아녀자들이 쫓아가며 손가락질하곤 했다. 술을 즐겼는데 모친의 꾸지람을 듣고 ‘지주부’라는 글을 짓고 10년간 마시지 않았다. 그러다가 풍병이 들자 다시 마셨다. 그러다가 병세가 조금 가라앉으니 다시 ‘지주부’를 짓고 5년 동안 마시지 않았다. 뒤에 병이 위독해지자 다시 술과 함께 지내며 벼슬도 마다 않고 지내다가 집에서 세상을 마쳤다.

신영희가 지켜본 남효온은 폭음과 절주를 반복했고, 그때마다 남효온은 술을 끊겠다고 다짐했다. (정출헌 지음, 남효온 평전, 한겨레출판, 2020, p 154-155)

1481년(성종 12년) 2월 5일에 남효온은 남산 기슭에서 과음으로 실수하고 나서 주잠(酒箴 술을 경계함)시를 지었다. 『추강집』 제1권에 나온다.

1481년이면 남효온이 수락산에서 기거하는 김시습을 자주 만났던 때였다.

술자리 처음에는 예의가 엄숙하여 初筵禮秩秩

손님과 주인이 거친 행동 경계하니 賓主戒荒嬉

오르고 내림에 진실로 예법이 있고 升降固有數

나아가고 물러날 때도 절도가 있네 進退抑有儀

석 잔 술이면 말이 비로소 많아져서 三桮言始暢

법도 잃음을 스스로 알지 못하고 失度自不知

열 잔 술이면 소리 점점 높아져서 十桮聲漸高

주고받는 얘기가 더욱더 어지럽네 論議愈參差

뒤이어 언제나 노래하고 춤추니 繼以恒歌舞

온몸이 피로한 줄 깨닫지 못하네 不覺勞筋肌

술자리 마칠 때면 동서로 치달려서 筵罷馳東西

저고리 바지가 온통 진흙투성이라 衣裳盡黃泥

올라탄 말 머리가 향하는 곳마다 馬首之所向

아이들이 손뼉 치면서 비웃어대고 兒童拍手嗤

끝내 비틀대다 넘어지고 자빠져서 終然顚與躓

부모가 주신 몸을 손상시키고 마네 而傷父母遺

술의 재앙을 모르는 바 아니건만 非不知酒禍

스스로 좋아하기를 단 엿처럼 하네 顧自甘如飴

무풍(巫風)은 『서경(書經)』에서 경계하였고 巫風戒於書

빈지초연(賓之初筵 손님 잔치)은 『시경』에 실려있네 賓筵播於詩

무풍은 나라를 망하게 한다는 삼풍십건(三風十愆)의 하나이다.

『서경』에 “감히 궁중에서 항상 춤추고 집에서 술 취하여 노래함이 있으면 이것을 무풍이라 한다.〔敢有恒舞于宮 酣歌于室 時謂巫風〕” 하였다.

빈지초연은 『시경(詩經)』에 실려 있다. 잔치에서 술을 많이 마시고 탈선하는 행동이 흔함을 경계하는 시로서, 주희는 ‘집전’에서 위(衛)나라 무공(武公)이 술을 마시고 잘못을 뉘우치며 지은 시라고 하였다.

양웅은 일찍이 주잠(酒箴 술을 경계하는 글)을 지었고 揚雄曾著箴

백유(伯有)는 술 때문에 죽었거늘 伯有死於斯

백유는 춘추시대 정(鄭)나라 사람 양소(良霄)의 자이다. 양소는 술을 좋아하여 집에 지하실을 만들어 놓고 종을 치며 밤새도록 술을 마시다가 결국 자석(子晳)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다.

어찌하여 이러한 광약을 마시는가 胡爲此狂藥

덕을 잃음이 항상 여기에 있다네 失德常在玆

술에 대한 경계가 『서경』에 실려 있으니 酒誥在方策

의당 생각하여 규율로 삼아야 하리 宜念以爲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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