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습, 남효온과 편지를 주고받다 (1)

김시습 영정각(무량사)
김시습 영정각(무량사)

 

1481년 2월에 술을 경계하는 글을 지은 남효온은 김시습과 술에 관한 서신을 몇 차례 주고 받았다. 김시습의 『매월당집』에는 편지 3통이, 남효온의 『추강집』에도 편지 한 통이 수록되어 있다.

그러면 『추강집』 ‘제4권’에 수록된 편지를 읽어보자. 먼저 동봉산인(東峰山人) 김시습이 남효온에게 보낸 편지이다.

그저께 선생(남효온을 말함)을 모시고 천석(泉石) 위에서 노닐며 종일토록 서성이다가 청계(淸溪)에서 서로 헤어졌습니다. 맑은 흥취가 다하지 않았건만 작별이 갑작스러웠으니 얼마나 야속했는지 모릅니다.

봉별(奉別)한 이후로 지금 며칠이 되었지만 함께 얘기할 만한 사람이나 계산(溪山)에서 술 마시며 시 짓는 모임이 없으니, 이른바 사흘 동안 도덕을 얘기하지 않으면 혀가 굳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몇 줄기 푸른 산과 한 조각 흰 구름이 청하지 않는 벗이 되고 말없는 짝이 되어 여전히 서로 대하고 있으니, 이것들이 10년 동안 마음을 알아주는 제 벗들입니다. 도성 안에 이러한 벗들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지난번 만났을 때 선생이 술을 끊어 주성(酒星)을 하늘의 감옥에 가두고 취일(醉日)을 진(秦)나라의 구덩이에서 불사르고자 하였으니, 그 뜻이 아름답기는 아름답습니다.

하(夏)나라와 은(殷)나라의 임금이 술 때문에 망했고, 진(晉)나라와 송나라 선비들이 술 때문에 어지러워졌으니, 이는 만세토록 살피고 경계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말씀 드릴 것이 있습니다. 우선 옛사람이 술을 베풀었던 까닭은 본래 선조에게 제사 지내고 손님을 대접하고 노인을 봉양하고 병을 다스리고 복을 빌고 기쁨을 나누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백복(百福)의 모임이 술이 아니면 행해지지 못했던 것이니, 어찌 사람으로 하여금 술에 빠져서 덕을 잃으며 거동을 어지럽혀서 몸을 무너뜨리게 하는 것이겠습니까?

그러므로 혹 어지러움에 이를까 염려하여 주례(酒禮)를 만들어 한 번 술을 올리는 예(禮)에 손님과 주인이 백번 절하여 종일 마셔도 취하지 말라 했습니다. 제사에는 남은 음식이 있고, 집을 짓고는 낙성식이 있고, 손님에게는 대접이 있고, 길 떠나는 사람에게는 송별연이 있고, 고을에는 향음(鄕飮)의 예가 있고, 가정에는 어버이에게 축수(祝壽)를 올리는 예가 있고, 제사가 있으면 그 술을 맛봄이 있는 것입니다.

이는 인정(人情)을 다하고 인사(人事)를 극진히 하려는 것이요, 후세 사람들에게 웃통을 벗고 시끄럽게 떠들어대며 마시며 개구멍으로 출입하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점을 살피지 않고 술이 재앙을 낳는다고 여겨서 완전히 끊고자 하니, 이는 마치 밥을 짓다가 불똥이 튈까 염려하여 일생동안 익힌 밥을 차리지 않으려는 것과 같습니다.

완전히 끊는 것도 예법에 크게 어두운 것이요, 중용에서 너무 벗어난 것이니 군자가 행할 도리가 아닙니다.

김시습 초상화
김시습 초상화

 

만일 술이 끊어야 하는 것이라면, 『논어』에서 공자는 “술에 한량없이 마실 수 있으나 어지러운 지경에 이르지 않았다.”고 하거나 “술 때문에 곤란을 겪은 일이 없으니 내가 무엇이 거리낌이 있겠는가.”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위무공(衛武公) 또한 일찍이 허물을 뉘우치며 말하기를 “석잔 술에 정신을 잃은 사람에게 더 마시게 해야 되겠는가” 했으니, 위무공 또한 술을 완전히 끊은 것이겠습니까? 다만 경계했을 뿐입니다.

지금 선생이 만약 예의를 버리고 임금과 어버이를 버리고 종족을 멀리하여 사람이 없는 곳에 혼자 사신다면 괜찮겠지만, 만일 예악과 문물이 있는 이 세상에 살면서 효도하고 공손하라는 선왕의 격언을 읽었을 것인데, 성급하게 한 잔 술도 안 마시겠다는 것이요?

앞으로 제사와 잔치 자리에서 술을 올리기만 하고 마시지 않으려오? 절제한다거나 삼간다고 할 수는 있지만, 죽을 때까지 완전히 끊는다는 것은 저로서는 취하지 못할 바입니다. 선생은 어떻게 여기십니까?

더구나 일전에 보건대 선생의 용모가 옛날보다 수척해졌습니다. 몸이 쇠약하게 되면 어머님께서 반드시 걱정하실 것이니, 뜻을 거슬러서 공경의 도리에 어긋났고 술을 끊어 근심을 끼침으로써 다시 어긋나게 되었습니다. 사랑과 공경으로 어버이를 섬기는 도리를 선생 또한 일찍부터 잘 알고 있을 터이니, 선생께서는 널리 헤아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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