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효온, 김시습에게 편지를 쓰다

무량사 입구
무량사 입구

 

1481년 6월경에 남효온은 절주(節酒)하라는 김시습의 편지에 대한 답신을 썼다.

동봉산인(東峰山人 김시습의 호)에게 답하는 편지

지난번에 선생께서 더할 수 없는 호의를 베푸시어 산중에서 저를 전송하며 멀리 호계(虎溪)를 건너오셨으니 은혜와 영광이 몹시 깊었습니다.

호계(虎溪)는 중국 여산(廬山)의 동림사(東林寺) 앞에 있는 시냇가이다. 진(晉)나라 혜원법사(慧遠法師)가 이곳에 있으면서 손님을 보낼 때 이 시내를 건너지 않았는데 여기를 지나기만 하면 문득 호랑이가 울었다.

하루는 그가 도연명(陶淵明), 육수정(陸修靜)과 함께 이야기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호계를 넘자 호랑이가 우니 세 사람은 크게 웃고 헤어졌다고 한다.

또 저를 천박하고 용렬하여 분발하거나 추론하는 지혜와 식견이 없다고 여기지 않으시고 몸가짐과 시행의 방법을 가르쳐 주시며 고의(古義)를 인용하여 간곡하게 반복하셨으니, 다행스러움이 또한 큽니다. 분골쇄신(粉骨碎身)하지 않고서는 보답할 길이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분발하거나 추론하는 지혜와 식견은 『論語』 ‘술이(述而)’편에 나온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울 때) 분발하지 않으면 열어주지 않고, 애태우지 않으면 발휘하도록 말해주지 않는다. 한 귀퉁이를 들어 주었는데, 그것으로 나머지 세 귀퉁이로써 반증(反證)하지 못하면 다시 일러 주지 않는다.〔不憤不啓 不悱不發 擧一隅不以三隅反則不復也〕”

그러나 제가 일찍이 듣건대, 쇠붙이 천 균(鈞)은 지극히 무겁지만 맹분(孟賁 : 전국 시대의 용사 勇士)이 들기에는 쉽고, 깃털 하나는 지극히 가볍지만 초파리가 짊어지기에는 무겁다고 했으니, 이는 어째서이겠습니까?

힘의 강약이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사람이 실행하는 것 또한 이와 같아서 저절로 도에 들어맞는 사람도 있고 억지로 힘써서 도를 행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

대저 술의 덕이 어떠한지는 오경(五經)과 자사(子史)에 상세하게 실려 있습니다. 술이 그 중도(中道)를 얻으면 빈주(賓主)를 합할 수 있고 늙은이를 봉양할 수 있으며, 가까이 궤석(几席 안석(案席)과 돗자리)사이에 시행해도 문채가 있고 멀리 천지에 통해도 어그러지지 않으며, 수심에 찬 뱃속은 술을 얻어 풀리고, 답답한 가슴은 술을 얻어 편안해져서 천지와 더불어 조화를 함께하고 만물과 더불어 조화를 통하기 때문에 옛 성현이 스승과 벗이 되고 천백 년이 한가한 세월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도를 잃으면 감옥살이하는 사람처럼 머리를 풀고서 항상 노래하고 어지럽게 춤추며, 백번 절하는 사이에 시끄럽게 부르짖고 서로 읍양(揖讓 읍하는 예를 갖추면서 사양함)하는 즈음에 넘어지고 자빠져서 예의를 무너뜨리고 의리를 없애며 절도 없이 소동을 일으킵니다.

심한 경우에는 까닭 없이 마음을 풀어놓고 눈을 부라리다가 혹 싸움이 일어나서 작게는 몸을 죽이고, 더 나아가서는 집안을 망하게 하고, 크게는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경우가 흔히 있습니다.

술의 재앙이 이와 같지만 주공(周公)과 공자가 쓰면 어지럽지 않았고,

술의 덕이 이와 같지만 진준(陳遵)과 주의(周顗)가 쓰면 몸을 죽였으니, 그 얻고 잃는 사이에는 한 터럭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삼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논어』 ‘향당(鄕黨)’ 편을 보면 “공자는 술에 한정이 없었으나 어지러운 지경에 이르지 않았다.〔唯酒無量 不及亂〕”고 하였다.

진준(陳遵)은 한나라 애제(哀帝)ㆍ왕망(王莽)ㆍ회양왕(淮陽王) 때의 사람으로, 성품이 방종(放縱)하고 술을 좋아하였다. 회양왕이 패했을 때에 술에 취해 있다가 적(賊)에게 죽임을 당했다.

주의(周顗)는 진(晉)나라 원제(元帝) 때 인물로, 술을 몹시 좋아하여 술 실수로 자주 견책을 받았다. 뒤에 왕돈(王敦)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이런 까닭으로 중인(中人) 이하의 사람은 견고하게 다잡지 않고 절도 있게 쓰지 않으면 맛있는 술맛이 사람을 변하게 하여 갈수록 위태로워지고 갈수록 어지러워지다가 점점 술주정에까지 이르게 되지만, 술주정하는 줄조차 모르게 되는 것은 이치상 필연적인 것입니다.

선비로서 뜻이 견고하지 못한 사람은 응당 몸소 신칙(申飭 단단히 타일러서 경계함)하고 안으로 꾸짖어서 어지러움의 뿌리를 막고, 술 끊기를 보통 사람보다 백 배 더한 뒤라야 술의 재앙을 면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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