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BS역사칼럼-길 위의 역사](9회) 허조(許慥), 스스로 목을 찔러 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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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S역사칼럼-길 위의 역사](9회) 허조(許慥), 스스로 목을 찔러 죽다.
  • 김세곤 칼럼니스트
  • 승인 2018.03.27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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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어촌방송=김세곤 칼럼니스트] 1456년 6월6일에 세조는  8도(八道)의 관찰사(觀察使)등에게 유시하기를 최근 일어난 반역사건으로 백성들이 놀라지 않도록 잘 선유(宣諭)할 것을 명했다. 세조의 유시는 이렇다.

"최근에 이개·성삼문·박팽년·하위지·유성원·박중림·권자신·김문기·성승·유응부·박쟁·송석동·최득지·최치지·윤영손·박기년·박대년 등이 몰래 반역을 꾀하였으나, 다행하게도 천지신명과 종묘·사직의 신령(神靈)에 힘입어 흉포한 역모가 드러나서 그 죄상을 다 알았다. 그러나  아직도 백성들이  두려워할까 염려되니, 경등은 이 뜻을 선유하여 백성이 놀라지 않도록 하라."

이를 보면  6월2일에 박팽년이 세조에게 진술한 당여(黨與)인 ‘성삼문·하위지·유성원·이개·김문기·성승·박쟁·유응부·권자신·송석동·윤영손·이휘와 박중림" 외에  최득지 ·최치지 ·박기년 ·박대년이 포함되어 있고, 이휘는 명단에 빠졌다. 박기년 · 박대년은 백팽년의 아우들이고, 최득지 · 최치지는 무관인데 형제간이었다. 특이한 것은 이개를 성삼문 · 박팽년보다 가장 앞머리에 거명한 점이다.

이  날 전(前) 집현전 부수찬(集賢殿 副修撰) 허조(許慥)가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허조는  그의 아내가 이개의 누이동생으로 단종 복위 거사에 참여했는데, 아들 연령(延齡)과 구령(九齡)도 함께 연좌되어 죽었다.  (세조실록 1456년 6월6일 2번째 기사)   

그의 아버지는 허후(許詡)인데 허후는 1426년(세종8)에 문과에 급제하고, 1436에 중시에 합격하였다. 문종이 승하할 적에 황보인, 김종서와 함께 고명(顧命)을 받들었다. 1453년 계유정난 때 정난공신을 녹훈하면서 수양대군이 영의정이 되어 뭇 신하들이 들어가서 축하하는데, 허후도 불러들여서 참여시켰다. 술잔을 돌리고 풍악을 울리니 재상 정인지와 한확 등이 손뼉을 치며 마냥 웃어 대는데도, 허후만은 고기를 먹지 않으므로, 그 까닭을 물었더니, “나는 살아남은 것만도 족하다. 어찌 차마 고기를 먹겠는가.” 하고 눈물을 흘렸다. 거제도에 안치되었다가 얼마 안 되어 죽었는데, 육신들이 죽게 되자 세조가 전교하기를, “허후가 살아 있었더라면 칠신(七臣)이 되었을 것이다.” 하였다. (홍재전서 제60권 / 잡저(雜著) 7 장릉 배식단에 배향된 정단(正壇) 32인)

남효온은 『추강집』 「허후전(許詡傳)」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계유정난 때 세조가 영의정이 되어 축하연을 벌일 때 허후도 연회에 참여하였다. 술을 돌리고 풍악이 울리자 재상 정인지, 한확 등이 손뼉을 치고 기뻐하며 웃었으나, 허후는 홀로 어두운 표정으로 고기를 먹지 않았다. 세조가 그 까닭을 묻자 재일(齋日)이라고 핑계하였으나 세조는 그 뜻을 알고 다시 힐문하지 않았다.

얼마 뒤에 김종서, 황보인 등의 머리를 저잣거리에 효시(梟示)하고 그 자손을 죽이기를 명하니, 허후가 아뢰기를 “이 사람들이 무슨 큰 죄인이라고 목을 내걸어 보이며 처자식을 죽이기까지 한단 말입니까. 김종서는 저와 교유가 소원하여 그 마음을 잘 알지 못하지만, 황보인이라면 그 사람됨을 자세히 알고 있으니, 그가 모반할 리가 만무합니다.” 하였다.

세조가 말하기를 “그대가 고기를 먹지 않았던 것은 그 뜻이 진실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로다.” 하니, 대답하기를 “그렇습니다. 조정의 원로가 같은 날 모두 죽었습니다. 저는 살아 있는 것으로도 족하거늘 또 차마 고기를 먹겠습니까.” 하고는 눈물을 흘렸다.

세조는 매우 노했으나 그래도 그의 재주와 덕을 아껴서 죽이려 하지는 않았다. 이계전이 힘껏 권하여 허후를 외지로 귀양 보냈다가 마침내 목을 졸라 죽였다.”

한편 허조의 조부는 세종 때 좌의정을 한 허조(許稠 1369∼1439)이다.

허조는 황희와 함께 명재상이었고 조선 유학의 정통성을 재확립하려 했던 인물이다. 허조는 1439년 초봄에 신동(神童)이라고 소문 난 오세동자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을 만났다. 그는 김시습을 보자마자 글자를 불러주고 시를 지어보라고 했다.

“얘야, 늙은 나를 위해 늙을 노(老)자로 시구를 지어 보거라.”

김시습은 즉시 “노목개화심불로(老木開花心不老)”라고 읊었다.

“늙은 나무에 꽃이 피니 마음을 늙지 않았네.”라는 뜻이다. 허조는 무릎을 치며 “정말로 신동(神童)이로다”라고 말했다. 1)

사진= 김시습 자화상

1) 심경호 지음, 김시습 평전, 돌배개, 2003, p 87-88.매월당 김시습은 추강 남효온 등과 함께 생육신 중 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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