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는 산모가 해산을 하고 나면 반드시 미역국을 먹습니다. 보통 산후조리원에서는 2주 동안 삼시세끼 미역국을 제공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산후에 미역을 집중적으로 섭취하는 민족은 전 세계에서 우리가 유일하다고 합니다. 또 요즘처럼 무더운 여름철에는 열기를 다스리고 입맛을 되살리는 음식으론 청열 효과가 뛰어난 미역냉국만 한 게 없습니다.
미역을 사기 위해 건어물전에 가면 말린 미역을 길고 넓게 포장을 해두고, 위에는 산모용이라고 크게 써서 붙여 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산모용 미역은 주로 선물로 쓰기 때문에 가격도 꽤 비쌉니다. 그러나 실제로 일반적으로 팔리는 미역보다 무엇이 더 좋아서 몇 배가 더 비싼지는 겉모습만 보아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강원도 고성 바닷가에서 20년 넘게 미역을 팔아왔다는 상인을 만났습니다. 상인은 연세 많은 모친을 옆에 모시고 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모친이 젊어서 해녀였고, 부인은 현직 해녀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말린 미역을 팔고 있었는데 고성 앞바다 미역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습니다.
고성 상인에게 좋은 미역을 고르는 법을 알려달라고 부탁하니 요즘에는 겉면에 산모용, 자연산이라고 적으면 다 좋은 것으로 생각한다며 진짜 좋은 것을 사람들이 모른다는 푸념부터 늘어놓습니다. 그의 말을 자세히 들어보니 일리가 있습니다.
“미역은 어디든 붙어서 살아요. 줄에 붙여서 기르면 양식 미역이고, 바위에 붙어 자라면 자연산 돌미역이에요. 돌미역도 깊은 바다에서 자라면 수심각이라고 해요. 그건 질겨요. 미역 줄기를 보면 굵어서 금방 알아볼 수 있어요. 여기 보세요. 우리 것은 얕은 바위에 붙어서 자란 미역이에요. 줄기가 얇아요. 이 미역이 산모용이에요. 끓이면 뽀얗게 육수가 나고 부드러워요.”
설명을 듣고 보니 상인의 미역은 얇은 줄기에 미역 잎사귀가 온전히 붙어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미역을 살 때 주로 잎만 있었지, 줄기를 본 기억은 별로 없었습니다.
이제 좋은 미역을 알아볼 수 있게 됐다는 생각을 하며 미역을 사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미역국을 끓였습니다.
조선간장과 미역만 넣고 끓였을 뿐인데 뽀얀 국물이 우러나며 깊은 맛이 났습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뽀얗고 진한 국물을 보면 몸에 좋다는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제주도에서는 산모에게 다금바리를 고아서 먹였다고 하는데 다금바리도 고아놓으면 생선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뽀얀 국물이 우러납니다. 고기를 마음대로 먹기 어려웠던 시절 미역과 다금바리의 뽀얀 국물은 산모의 고생을 위로하는 소울푸드였던 것 같습니다.
미역은 한의학에서는 뭉친 피를 풀어주고, 노폐물 배출을 도우며 열을 내려주는 약재로 사용됩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산후조리에 미역을 사용하는 것은 이치에 맞는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미역에 들어 있는 식이섬유 성분인 알긴산은 중금속과 같은 체내 오염 물질을 몸 밖으로 배출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이 외에도 미역의 점액질에 포함된 후코이단 성분은 항산화 작용과 혈당 강하 작용은 물론 항암 작용까지 하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불린 돌미역에 오이를 썰어 넣고, 식초를 넉넉히 풀어 만든 미역냉국이라면 여름의 무더위를 건강하게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칼럼은 평택 자연방한의원 조성훈 원장의 기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