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평택 자연방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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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차 중국 운남성 서북쪽의 샹그릴라라고 하는 장족 도시를 여행했습니다. 한 가정을 방문해 식사를 하는데 집에 모신 제단 앞에 놓인 그릇에 눈길이 갔습니다. 자세히 보니 볶은 곡물이 들어 있었는데 통밀이었습니다. 장족들에게 밀은 신에게 바치는 귀한 곡식이었던 것입니다. 

근대화 이후 우리나라에서 밀은 귀한 대접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미국에서 밀가루 원조를 받아 식량 문제를 해결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지금도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은 밀가루 음식을 지겹다고 들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한 최근에는 비만과 성인병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며 밀가루가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해 밀가루의 이미지는 더 추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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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은 유라시아 초원에 쏟아지는 태양 빛을 받아 저장하는 곡물 중 가장 생명력이 강하고 알곡의 크기가 큰 편에 속합니다. 보다 온난한 기후와 저수지와 같은 관계시설이 필요한 쌀에 비해 밀은 초원의 유목민에게 더욱 적합한 곡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장족과 같은 유목민들에게 있어서 밀은 신의 축복이었을 것입니다. 

 사진=평택 자연방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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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족들은 해발 4000미터의 초원에 쏟아지는 햇빛으로 자라난 풀로 야크와 말을 키우는 한편, 한 가족이 먹을 만큼의 밀을 동물들이 들어가지 못하게 담을 쌓은 땅에 기르고 있었습니다. 보통 밀농사는 아메리카 대륙의 대평원에 비행기와 기계를 사용해 짓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유목민의 원형적 모습의 밀농사는 한 가족의 생계를 이어가는 소박한 모습이었습니다. 

장족의 식사는 크게 보면 밀과 야크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볶은 통밀, 통밀가루, 빵과 함께 야크젖으로 만든 요거트, 차, 치즈, 야크 고기 등이 한 상을 가득 채웠습니다. 초원에서 얻은 먹거리를 여러 형태로 저장하고 가공해 섭취하는 모습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유목민의 호흡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만 채소가 부족해 보였는데 통밀에는 각종 식이섬유와 비타민과 미네랄이 함유돼 있어 보완을 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밀가루를 영어로 플라워(Flour)라고 하는데 어원을 살펴보면 플라워(Flower)라는 영어 발음 그대로 꽃이라는 의미였습니다. 식물의 가장 아름다운 부위가 꽃이듯 곡물 중 가장 귀하고 아름답다는 의미에서 플라워(Flour)로 불렸다고 합니다. 

사진=평택 자연방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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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연구에 따르면 통밀은 당지수가 낮아 혈당조절에 도움을 주고, 마그네슘과 황을 많이 함유하여 뼈를 튼튼하게 해주며, 비타민 B1과 셀레늄이 풍부해 심혈관계를 보호해줍니다. 또한 호모시스테인과 엽산이 풍부해서 기억력과 인지력 감퇴를 막아주고, 우울증 위험을 낮춰줍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통 만나는 흰 밀가루에는 이러한 효과가 전혀 없고, 오히려 당지수가 높아서 당뇨병과 비만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고 표백을 위해 사용한 물질이 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쌀은 물을 넣고 끓이면 쉽게 밥이 되지만, 밀은 단백질 함유 비율이 높고, 조직이 거칠어서 밥을 지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통밀은 주로 가루를 낸 후 반죽과 발효를 거쳐 빵을 만들어 섭취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빵은 통밀의 영양분과 발효과정에서 발생한 유기산 그리고 글루텐 단백질 고유의 ‘겉바속촉’한 식감까지 품은 신의 선물과 같은 음식이 되는 것입니다.

최근에 마트에 가면 통밀을 사용해 만든 밀가루나 국수 혹은 빵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좀 거칠기는 해도 정제 혹은 표백되지 않은 통밀 섭취한다면 밀은 티벳 장족에게 신의 축복이었듯 우리 식생활에도 슈퍼푸드가 되어줄 것입니다. 

*이 칼럼은 평택 자연방한의원 조성훈 원장의 기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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