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비가 온 후 아침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지는 것을 보니 유난히 더웠던 이번 여름도 가는 것 같습니다. 가을 초입에 생각나는 먹거리는 전어입니다. ‘전어철이 되면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속담이 있는데, 아마도 먹고살기 어렵던 시절 가을 전어로 만선이 되면 돈을 벌러 집을 떠난 며느리가 돌아올 정도로 살림이 피었다는 의미가 아닌가 합니다.
전어는 떼를 지어 다니는 군집성 어류입니다. 그래서 철이 되어 잡힐 때는 감당이 되지 않을 정도로 잡히고 심지어 해변에 떼로 몰려와 장관을 이루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가을 서남해에서 많이 잡히는데 한여름의 더위가 지나고 나면 전어가 몰려오기에 적당한 수온이 형성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기름진 음식이 귀했던 시절에 가을에 돌아온 전어는 매우 반갑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갑자기 너무 많이 잡혀 난감한 식자재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전어는 젓으로 담아 먹기도 했습니다. 젓으로 담는 생선은 주로 기름이 많고 살이 부드러운 경우가 많은데 가을 전어는 살에 기름이 올라 조건에 잘 맞습니다. 특히 가을 전어의 내장은 기름이 껴서 마치 밤처럼 통통한데 전어의 내장만을 모아 담은 젓을 전어밤젓이라고 합니다.
전어와 같이 철에 따라 군집을 이루어 다니는 어종으로는 청어나 꽁치, 명태 등이 있는데 이와 같이 갑자기 많이 잡히는 물고기는 저마다 독특한 저장 방법이 있습니다. 청어나 꽁치, 명태는 덕장에서 겨울바람에 말려서 저장을 한 반면 전어는 크기가 작아 염장을 해 놓았다가 한 끼에 한 마리씩 꺼내먹기가 좋아 젓으로 담았던 것 같습니다. 전어가 소금과 유익균에 의해 발효되는 과정에서 면역력 유지와 성장에 반드시 필요한 지방산과 아미노산이 발생합니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문화권에서 염장 식품은 부족한 필수 지방산과 아미노산을 섭취하는 중요한 식재료입니다.
전어는 일본에서도 많이 잡힙니다. 일본에서는 특별히 새끼 전어를 '고하다'라고 부르는데 초밥의 재료로 사용됩니다. 새끼 전어를 뼈를 바르고 식초에 절이는 작업이 매우 번거로워 보입니다. 일본 초밥집에서는 고하다를 일종을 소울푸드라고 생각하고, 고하다 초밥을 잘 만드는 것으로 실력을 가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전어가 일본에서도 어려웠던 시기에 많은 사람의 배를 채워 준 생선이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요즘에는 우리나라에서도 활전어를 회로 먹는 경우가 많습니다. 활전어는 비린 맛이 적고 고소한 맛이 강해서 간장을 찍은 후 고추냉이만 곁들여 먹어도 맛있지만 채소와 함께 초고추장에 버무려 먹으면 궁합이 잘 맞습니다. 싱싱한 전어를 통째로 구우면 전어 기름이 녹아 나오며 내는 감칠맛은 물론 전어 내장의 쌉쌀하고 고소한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전어는 고등어나 꽁치와 같이 등푸른생선에 속하는데 DHA, EPA와 같은 불포화지방산이 혈관 건강에 도움을 주고 성인병을 예방할 뿐만 아니라, 각종 필수 아미노산은 물론 칼슘, 철분 등 미네랄이 풍부해 성장발육, 골다공증 예방 등에 효과가 있습니다. 아직 더위가 가시지 않았지만 싱싱한 전어 요리가 활기찬 가을을 맞이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 칼럼은 평택 자연방한의원 조성훈 원장의 기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