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평택 자연방한의원
사진=평택 자연방한의원

아직 더위가 가시지 않은 초가을의 거리를 걷다 코끝을 스치는 꽃향기가 있어 주변을 둘러보면, 칡덩굴 사이로 갈화(칡꽃)가 피어 있습니다. 갈화는 생김새와 향기는 아카시아와 비슷한데 보랏빛이 강합니다. 수북한 칡덩굴 사이에 피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지만 진한 향기는 벌나비를 부르기에 충분합니다. 

보통 소나무 주위에는 잡초가 잘 자라지 못하는데 칡만큼은 예외입니다. 척박한 땅에서도 뿌리를 깊이 내리고 사정없이 덩굴을 뻗어 햇빛을 향해 소나무를 감아 오릅니다. 동산 하나가 온통 칡덩굴로 뒤덮이는 경우도 많습니다. 

농사를 많이 지어 힘이 떨어진 땅에 콩을 심는 이유는 콩에 기생하는 뿌리혹박테리아가 질소를 고정하여 천연비료를 생산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칡도 식물분류학적으로 보면 콩과에 속해서 오로지 햇빛만 받으면 스스로 비료를 생산하며 끝도 없이 자랍니다. 그리고 이렇게 엄청나게 받아들인 햇빛을 전분으로 만들어 굵은 뿌리에 저장합니다. 

갈근은 과거에는 구황작물로 쓰였다는데, 요즘에는 민간에 주로 숙취해소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동의보감에서 보면 갈화해성탕이라는 약이 있는데 갈화를 사용해서 숙취로 인한 두통이나 갈증과 같은 증상을 치료하는 데 효과가 있습니다. 이로써 미루어 보면 숙취 해소에는 갈근보다는 갈화가 더 효과가 있는 것으로 같습니다. 

갈근은 한의학에서 매우 자주 사용되는 약재입니다. 주로 발열 두통 신체통 등 감기 몸살 증상에 사용되기도 하고, 안면 홍조, 가슴 두근거림, 불면과 같은 갱년기 증상에 사용하기도 합니다. 다른 콩과 식물과 비슷하게 이소플라본이라고 하는 식물성 에스트로겐이 다량 함유돼 있습니다. 이소플라본이 직접적인 호르몬으로 작용하기보다는 인체에서 발생한 여성호르몬의 분해를 방해해 혈중 농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황기, 감초, 황금, 고삼 등 한약재 중에는 갈근 이외에도 콩과 식물이 많이 있습니다. 맛과 향, 생김새는 모두 제각각이지만 공통으로 소염 진통 효과가 있습니다. 성분을 분석해 보면 여성호르몬이나 스테로이드와 화학적으로 유사한 물질이 함유된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화학적 합성 약품에 비해 중독성과 부작용이 없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갈근은 다른 약재에 비해 기르지 않아도 지천으로 널려 있기 때문에 가격이 저렴합니다. 그러나 효과는 매우 뛰어나 애용되어 온 약재입니다. 

예전에는 갈근을 트럭에 싣고 다니며 칡즙을 짜서 파는 경우도 종종 보았는데 요즘에는 찾아보기 어려워졌습니다. 대신 인터넷에서 칡즙 음료를 쉽게 구할 수 있는데 몸살이 날 것 같고, 두통이나 갈증이 느껴질 때 음용한다면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사진=평택 자연방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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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근에는 전분이 많이 함유돼 있는데 갈근의 전분은 혈당을 상승시키는 효과가 적은 저항성 전분으로서 혈당조절에 도움을 줍니다. 냉면 중에 갈근의 전분을 활용해서 만든 칡냉면이 있는데 고구마나 감자 전분을 사용한 냉면에 비해 혈당 관리나 비만에 유리할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갈근에는 카테킨이나 푸에라린과 같은 폴리페놀 성분이 풍부하게 함유돼 있어서 지방과 당질의 흡수를 늦추고, 혈중 중성지방과 콜레스테롤이 대사를 활발하게 해 성인병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약식동원'이라는 말이 있는데 음식과 약은 본래 근원이 같다는 뜻입니다. 한편으로는 병이 생겼을 때 약으로 고치기보다는 평소에 약이 되는 음식으로 병을 예방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갈근이야말로 이와 같은 뜻에 가장 잘 맞는 식재료가 아닌가 합니다. 

조성훈 원장. /사진=평택 자연방한의원
조성훈 원장. /사진=평택 자연방한의원

*이 칼럼은 평택 자연방한의원 조성훈 원장의 기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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