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출마해 우리나라 최고 산악지역 산림조합장 당선

지역출신 아니라는 흑색선전 때문에 치열한 선거전 치러
꼭 당선되라며 월차내고 투표소 찾은 조합원에 감동받아
경제사업과 신용사업이 균형 이루는 알찬 산림조합 추구
대학졸업반 때 교수님의 말 한마디에 산림조합에 들어와

황인수 조합장은 대학 산림학과 졸업반 때 산림조합에 일자리가 있으니 가보라는 지도교수의 말 한마디에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산림조합에 왔다. 그때 지도교수님의 그 한마디 말이 자신의 인생을 결정짓는 지침이 됐다.

[한국농어촌방송/경남=황인태 대기자] 산청은 지리산을 안고 있고 산이 80%에 이르는 우리나라 최고의 산악지역이다. 산림조합의 역할이 클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황인수(57) 조합장은 우리나라 최고의 산악지역인 산청산림조합에 처음 출마해 조합장에 당선되는 행운아가 됐다. 전임 김학렬 조합장이 3선 연임 제한 때문에 출마하지 못하게 되자 과감하게 출사표를 던졌다. 평생 평범한 직장생활을 해 와 특별히 결단할 일이 없는 인생이었다. 황 조합장은 인생 마지막에 결단한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와 운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 황 조합장은 산청조합에서 상무와 전무로 근무하면서 조합원들과 동고동락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어렵지 않게 당선될 줄 알았다. 그런데 선거는 역시나 쉽지 않았다. 산청에서 초, 중, 고를 졸업하지 않은 것이 아킬레스 건으로 작용했다. 선거기간 중 산청출신이 아니라는 흑색선전에 지속적으로 시달렸다. 학교는 산청에서 다니지 않았지만 엄연히 산청 출신인데 말이다.

그것을 해명하러 다니느라 바빴다. 만약 시간이 더 있었더라면 선거판이 뒤집어 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선거판에서 흑색선전의 힘은 컸다. 그러나 역시 조합원은 현명했다. 조합에 상무로 전무로 근무하면서 쌓은 조합원들과의 신뢰관계와 업무 성과를 평가해 주는 조합원들이 더 많았다. 그런 능력에 대한 평가가 결국 당선으로 이어졌다는 게 황 조합장의 평가이다. 선거 막판에 선거판이 치열해진다는 소문이 돌자 선거 날 진주 등 타지에서 직장에 다니는 조합원들이 황인수가 돼야 산청산림조합이 발전한다며 월차까지 내고 투표하러 오는 모습을 보고 이런 게 사람 사는 모습이구나 하는 진한 감동을 받았다. 조합을 생각하는 조합원이 이렇게 많구나, 하는 생각에 무거운 책임감도 느꼈다.

선거는 사람을 키운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황 조합장도 이번 선거를 통해 많이 컸다. 조합원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선거에 출마해 보니 그게 아니었다. 조합원의 진심어린 소리를 많이 들었다. 그리고 산림조합의 존재 이유에 대한 근본적인 생각도 많이 했다. 숲속에서는 산을 보지 못하듯이 자신도 선거에 출마해 조합 밖을 나가 보니 조합이 잘 보였다. 이번 선거를 통해 배운 바는 앞으로 황 조합장이 재임하면서 일을 하는 큰 방향을 제시해 줄 것이다.

산림조합은 농협 등에 비하면 이제 걸음마 단계에 불과할 정도로 작은 조직이다. 그러나 지금은 산은 시대이다. 사람들이 산으로 돌아오고 있다. 황 조합장은 산의 시대를 맞아 산의 시대가 꽃피울 수 있도록 산림조합을 잘 키우고 발전시켜야 겠다, 는 생각을 굳히게 됐다.

임기 중에 산에서 직접 소득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여 조합원들에게 보급할 계획이다. 또 조합원들의 사업이 원활하도록 금융지원도 더욱 확대할 생각이다. 아직 산청읍에 하나뿐인 금융 점포도 남부지역에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산림조합이 경제사업과 신용사업이 균형잡힌 조합이 되도록 할 생각이다.

황인수 조합장은 1962년 산청, 시천 송하마을에서 태어났다. 7살 때 전매청 공무원을 하던 아버지를 따라 가족이 모두 진주로 이주했다. 진주에서 초, 중, 고, 대학을 나왔다. 대학을 과기대 산림학과에 진학한 것이 오늘날 황 조합장을 있게 했다. 졸업반일 때 지도교수가 산림조합에 일자리가 있으니 가보라고 해서 아무생각 없이 거제 산림조합에 입사했다. 처음 입사는 임시직이었다. 그러나 1년 후에 공채가 있었고 시험을 통해 정식으로 입사하게 됐다. 그 이후 지금까지 산림조합에서 살았다. 산림조합이 자기 인생의 전부를 보낸 곳이 된 것이다.

이제 최고의 자리인 조합장에까지 왔으니 남은 인생은 산림조합이 자리 잡도록 하는 데 남은 인생을 바칠 생각이다. 숲의 시대, 산으로 오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시대에 산림조합이 그 길잡이가 될 수 있도록 조합을 반듯하게 만들어 놓고 싶은 것이 황 조합장의 포부이다.

다음은 황인수 조합장과의 인터뷰이다.

△이번이 첫 번째 출마인가.

-그렇다. 첫 출마에서 당선돼 너무 감사하다. 믿고 뽑아준 조합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

△득표율이 어떻게 되나.

-55%였다. 전체 조합원이 2000여명인데 79%가 투표했다. 그 가운데서 55%를 얻었다.

△당초 기대에 비해 결과가 어떻나.

-당초 이보다는 더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적게 나왔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흑색선전이 많았다. 흑색선전이 난무 하다 보니 득표력이 좀 떨어졌다고 생각된다.

△어떤 흑색선전들이었나.

-제가 산청에서 학교를 나오지 않았다. 초, 중, 고, 대학교를 모두 진주에서 나왔다. 그렇다 보니 산청출신이 아니라는 흑색선전이 난무했다. 심지어 하동출신이라는 말들도 돌아다닐 정도였다.

△출생지가 어딘가.

-시천면 천평리 송하마을이다. 산청 곶감축제가 열리는 곳이다. 그런데 여기가 최근 시행된 도로 명 주소로는 송하 중태길로 표기 된다. 중태가 하동이었다가 산청으로 편입된 지역이다. 그렇다 보니 하동출신이라는 말을 만들어 퍼뜨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중태와 제가 태어난 송하마을은 전혀 다른 곳이다.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들도 이런 사정을 잘 알면서도 흑색선전을 했다. 문제는 지역이다 보니 이런 흑색선전이 먹혀든다는 것이다.

△능력보다는 출생지가 어딘지가 그렇게 중요한 요소인가.

-아무래도 시골이다 보니 지연, 학연, 혈연 등이 선거에서 중요하게 작용한다. 특히 제가 산청에서 학교를 나오지 않았다 보니 이번 선거에서 학연이 없어서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도 당선됐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저는 산청산림조합에서 상무와 전무로 실무를 총괄했다. 조합원들이 그런 시간들의 노력들을 잘 보고 평가해 준 게 아닌가 생각한다.

△선거에 출마해 보니 어떻든가.

-선거는 역시 어려웠다. 처음에는 쉽게 당선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쉽지 않더라. 많은 것을 배웠다. 특히 조합원의 소리를 가까이서 들을 수 있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저는 32년을 조합원과 같이 생활했다. 그러나 숲속에서는 산을 볼 수 없다. 숲 밖을 나가야 산을 볼 수 있다. 이번 선거 출마가 그런 경우였다고 생각한다. 산림조합의 존재 이유에 대해 근본적인 이유를 고민하는 시간이 됐다.

△선거가 치열했는데 그래도 고마운 사람들이 있었을 것 같다.

-그렇다. 산청이 아닌 타지에서 직장 다니는 조합원들이 저를 뽑아주기 위해 월차를 내고 투표하러 왔다는 얘기를 듣고는 감격했다. 사람 사는 정을 깊이 느꼈다. 저를 그렇게 믿어주고 응원해 주시니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잘해야 겠다, 는 생각을 굳히게 됐다.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를 얼마나 만나보았나.

-선거기간 중에는 만나기가 어려운 점이 많았다. 조합원이 2000여명인데 절반정도인 1000명 정도 만나본 것 같다. 특히 어르신들이 많아 문제였다. 어르신들은 대부분 일찍 주무신다. 그렇기 때문에 8시 이후에는 전화도 할 수가 없었다.

△선거 기간만 가지고는 조합원의 마음을 잡기에 어려울 것 같다.

-그랬다. 조합에 근무하면서 제가 커피한잔, 물 한잔이라도 소통하고 대화했던 분들은 다른데 가지 않더라. 그래서 진정성 있는 소통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됐다. △이번 선거의 쟁점은 무엇이었나.

-산림조합은 다른 조합과는 다르다. 산이라는 특수목적을 가지고 경영해야 한다. 그런 특수목적 경영을 누가 더 잘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였다.

△그 평가에서 이겼다고 보나.

-그렇다. 제가 이길 수 있었던 것은 30여년 산림조합에 근무하면서 중앙부처나 중앙회와 관련된 인맥구성, 그간이 사업실적 이런 것들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산청 산림조합의 주요 사업은 어떤 게 있나.

-산림조합은 산림사업과 신용사업으로 크게 나눠 볼 수 있다. 산림사업은 조림, 숲 가꾸기, 임도 사업 등이다. 신용사업은 여신과 수신을 말한다.

△산청산림조합의 규모는 어느 정도 되는가.

-아직은 크지 않다. 산림사업 규모는 연간 50억 원 정도이고 신용사업은 500억 원 남짓 된다. 그 외 임산사업소를 운영하고 있는 데 이 사업은 연간 25억 원 규모이다.

△황 조합장 임기 중에는 어떤 사업을 할 생각인가.

-조합원들의 소득 증대를 위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을 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들인가.

-산에서 단기적으로 소득이 나오는 나물, 버섯 등을 생산하면 이를 조합에서 판매해 수익을 돌려주는 그런 사업들을 할 생각이다. 또 이러한 사업이 가능하도록 장기저리 자금을 융자해 줄 계획이다.

△장기저리 자금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나.

-산주가 임도를 개설할 때 2억 원 한도에서 연 1% 이자의 자금을 융자해 줄 수 있다. 20년 거치, 15년 분할상환이므로 실질적으로 조합원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펠릿 사업도 하고 있지 않나.

-그렇다. 펠릿사업은 비용이 등유 등에 비해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수요가 많다. 그러나 아직은 수요를 충당할 정도로 충분히 예산을 확보하지 못했다. 그래서 국가와 협의해서 펠릿사업을 활성화 시킬 계획이다.

△임기 중에 이것만은 꼭 하고 싶다는 게 있나.

-경제 사업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신용사업을 확대해야 한다. 그래서 지금 읍에만 있는 금융점포를 남부지역에 개설하는 게 목표이다. 임기 중에 실현시킬 생각이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 보자. 학교는 어디를 나왔나.

-7살 때 집안이 모두 진주로 이주를 하게 됐다. 아버님이 전매청에 근무했었다. 그렇다 보니 진주로 가게 됐다. 진주에서 금성초등학교, 남중학교, 동명고등학교, 과학기술대학교를 나왔다.

△학교를 진주서 나오다 보니 이번 선거에서 어려움이 많았다는 말인가.

-그렇다. 경쟁후보는 산청에서 초, 중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렇다 보니 아무래도 저보다는 유리한 점이 있었다.

△산림조합에는 어떻게 들어오게 됐나.

-대학을 산림학과를 졸업했다. 교수님이 산림조합에 일자리가 있으니 가보라고 해서 요즈음으로 말하면 임시직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1년 후 공채 시험이 있었다. 그래서 시험을 쳐서 정식직원이 됐다.

△산청 조합에서 시작한 것인가.

-아니다. 거제 조합에서 주로 근무했다. 거제조합에서 상무까지 하다가 상무로 산청조합에 오게 됐다.

△그럼 산청 조합에서는 간부로만 근무한 셈이다.

-그렇다. 산청조합에서 상무, 전무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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