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조합장의 집요한 방해 속 과반득표로 당선

어릴 때 꿈이었던 조합장 위해 한 계단 한 계단 밟아와
조합장 되기 위해 사천농고 진학하고 고향 농협에 취업
약속깨고 조합장 지원 받은 집안 형님과의 결투 속 승리
평생의 꿈을 이뤘으니 사남 농협 발전 위해 헌신 하겠다

김종기 조합장은 현직 조합장의 집요한 방해공작 속에서도 과반득표라는 이변을 연출해 조합장에 당선됐다.

[한국농어촌방송/경남=황인태 대기자] 사남농협의 이번 조합장 선거는 치열했다. 현직 조합장이 드러내 놓고 선거에 개입했기 때문에 그 치열함이 상상을 초월했다. 그러나 이 같은 현직 조합장의 강력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김종기 후보는 처음 출마해 50%가 넘는 안정적인 득표로 승리했다.

결과적으로 김 조합장의 안정적인 승리였지만 그 과정은 지난했다. 이번 선거에서 김 조합장의 등장을 막기 위한 현직 조합장의 개입은 형제간의 골육상쟁, 직원들 줄 세우기, 흑색선전 등 선거에서 볼 수 있는 온갖 막장드라마가 다 동원됐다. 김 조합장을 당선을 방해하는 현직 조합장의 노력은 눈물겨운 것이었다. 가장 압권은 6촌 형님을 자신의 아바타 후보로 내세운 것이었다. 그것도 김 조합장과 불출마를 철석같이 약속한 형님이었다. 사건은 이랬다. 형님이 전무로 승진한 2007년 김 조합장이 형님과 자리를 마련했다. 그때 김 조합장은 “기회가 되면 조합장에 출마할 것이다. 형님이 출마하신다면 자신은 꿈을 접겠다.”며 담판을 시도했다. 그때 형님이 “자신은 조합장에 뜻이 없다며 김 조합장 보고 잘 준비하라”고 격려까지 했다. 그랬던 형님이 이번 선거에서 현직 조합장의 꼬임에 넘어가 출마를 하게 됐던 것이다. 여기서 끝난 게 아니다. 현직 조합장은 현 집행부와 직원들까지 줄을 세웠다. 그러나 현직 조합장의 막강한 힘으로 저지른 이 같은 집요한 방해공작 속에서도 김 조합장은 과반을 넘는 안정적인 득표로 당선돼 조합원들을 놀라게 했다.

김 조합장이 이렇게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신이 평생에 걸쳐 조합장을 준비해 왔기 때문이었다. 김 조합장은 어릴 때 꿈이 농협조합장 되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교에 제출하는 통지표에 장래 꿈을 ‘농협조합장 되는 것’이라고 써 놓을 정도였다.

그렇게 된 이유가 있다. 김 조합장이 어릴 때 아버님과 친구이신 동네 농협 조합장이 집에 자주 와서 아침을 드시곤 하셨다. 김 조합장은 아버님의 막걸리 심부름을 하면서 밥상머리에서 아버님과 조합장이 나누는 얘기를 듣곤 했다. 그때 김 조합장의 눈에 농협조합장이 참으로 좋은 일을 하고 멋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 이후 농협조합장이 되는 것이 김 조합장의 평생의 과제가 됐다.

김 조합장에게 농협조합장의 꿈은 단순이 꿈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그는 조합장이 되기 위해 평생을 노력해 왔다. 우선 아버지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천농고에 진학했다. 사천농고를 졸업하고는 다른 기회가 있었지만 사남농협에 입사를 했다. 그리고는 곤명, 삼천포, 사남 농협 등 사천일원의 농협에서만 평생을 갈고 닦았다. 조합장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평생을 한 계단 한 계단 집요하게 밟고 올라왔다. 그리고는 마침내 2007년 삼천포 농협에 있다가 사남농협으로 전근 왔다. 사남농협에 온 것은 마침내 고향인 사남농협 조합장으로 출마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위해 온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그는 몸을 조심하고 능력을 키워 조합장의 모양을 만들어갔다.

그런데 막판에 현직 조합장의 방해라는 엄청난 변수를 만난 것이다. 그러나 김 조합장이 평생 추구해 온 조합장의 꿈은 현직 조합장이 막는다고 해서 막아지는 것이 아니었다. 가장 최악의 경우인 형제간의 골육상쟁까지 하게 됐지만 결국 그는 승리했다. 그리고는 평생의 꿈인 고향 사남농협 조합장이 됐다.

김 조합장은 “이제 평생의 꿈을 이뤘으니 한 몸 바쳐서 농협발전과 지역사회 헌신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여기서 일을 마치면 조용히 경로당으로 은퇴 하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김종기 조합장과의 인터뷰이다.

△이번 선거가 어땠나.

-전임 조합장이 3선으로 연임제한에 묶여 출마하지 못하고 현직 아닌 후보들 3명이 경쟁을 했다. 그렇다 보니 치열했다.

△얼마 득표로 당선됐나.

-조합원이 1600여명이다. 89%가 투표해서 제가 54.3%를 득표했다.

△세 사람이 나와서 과반을 득표했으면 안정적으로 이긴 것 아닌가.

-그렇게 생각한다. 차점자가 36%인가 그랬으니 비교적 안정적으로 이겼다. 그러나 선거과정은 아슬아슬했다.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고 다들 얘기했는데 막상 개표하니 제가 비교적 큰 표차이로 이겼다.

△이번 선거과정이 치열했던 이유가 무엇인가.

-저는 기호 1번으로 처음 출마했다. 기호2번은 한번 출마했다가 100표차이 이내로 낙선한 경험이 있는 분이었다. 저보다는 여러 면에서 조직과 경쟁력을 갖춘 후보였다. 기호3번은 현직 조합장이 드러내놓고 미는 후보였다. 그래서 누가 보던지 제가 제일 약체인 후보였다. 처음에는 약체후보라고 보여 졌던 제가 선거과정 중에 앞서나간다고 생각하니 위기감을 느낀 현직 조합장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바람에 선거가 좀 과열됐다.

△현직 조합장이 중립을 지키지 않았나. 그건 불법 아닌가.

-전혀 중립을 지키지 않았다. 제가 조합장이 되면 자신에게 문제가 생긴다고 생각했는지 현직 조합장이 아예 양팔을 걷고 나서서 기호3번을 밀었다. 그런데 참 황당한 것이 기호 3번은 제 6촌 형님이었다. 저하고 그럴 사이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선거라는 게 그리 되더라.

△그럴 사이가 아니라는 게 무슨 말인가.

-저하고 기호3번인 6촌 형님과는 우리사이에 약속이 돼 있었다.

△어떤 약속이었나.

-제가 만약 출마하면 형님은 절대로 출마하지 않겠다고 저한테 맹세한 사람이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나.

-제가 2007년 3월에 삼천포 농협에서 사남 농협으로 전근을 왔다. 제가 사남 농협으로 온 것은 조합장에 출마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 이후 2010년 형님이 사남농협에서 전무로 승진을 하셨다. 그때 제가 승진할 수도 있었는데 양보를 했다. 그렇게 형님에게 승진을 양보하고 나서 형님과 별도로 면담을 요청했다.

△무슨 말을 하려고 만났나.

-형님과 저 사이에 정리를 해야 할 것이 있다고 싶어서 제가 요청했다. 그래서 시내 음식점에서 만나 “형님 저는 기회가 되면 사남농협 조합장에 출마할 겁니다. 그런데 만약 형님이 출마하시겠다면 제가 제 꿈을 접겠습니다.”라고 말하면서 형님의 생각을 물었다. 그때 형님께서 “내 성격상 조합장 같은 거 맞지 않다. 나는 절대로 출마 같은 것 하지 않을 테니 그런 것은 걱정하지 말고 동생 자네가 그런 꿈이 있으니 꿈을 키워라. 내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면 힘이 되는대로 도와줄게”라고 하셨다. 그래서 감격해서 그 자리에서 형님한테 크게 인사를 했다. 저는 지금도 그 일이 너무나 생생하다. 그런데 이번에 그 언약을 깨고 형님이 출마를 하신 거다.

△출마야 누구나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이고 그때 형님이 자리가 불편하니 둘러댄 것 아닌가.

-아니다. 형님이 그렇게 말씀하셔서 제가 두 번 세 번 확인했다. “형님 안 나올 겁니까.” “안 나갈 끼다.” “그럼 내가 나갑니다.” “나 오이라.” “도와 주이소.” “도와줄게” 이런 말을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했다. 그렇게 두 번 세 번 확인한 다음 제가 그렇게 말했다. “내 열심히 해서 꼭 고지점령을 하겠습니다. 우리 농협 발전시키는 것으로 형님의 공을 갚겠습니다. 형님 감사합니다. 하면서 다시 손을 내밀어 인사를 드렸다. 그런 자리였기 때문에 제가 잊을 수가 없는 사건이다.

△왜 형님이 출마를 했다고 생각하나.

-현직 조합장의 꼬드김에 넘어갔다고 저는 생각한다.

△현직 조합장은 김 후보와 손잡으면 되지 않나.

-현직에 있을 때부터 저하고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저랑은 손잡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나.

-2017년 1월 9일 날이다. 제가 가슴에 사무쳐서 잊지 않는 날이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데 그러나.

-그때 이번에 후보로 나왔던 형님이 전무를 퇴직하셨다. 그래서 그날 아침 티타임을 하는데 제가 조합장에게 전무로 승진시켜 주십시오. 하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안 된다고 그러더라.

△이유가 무엇인가.

-“자네는 조합장 출마할 사람 아닌가?”하시면서 “조합장 출마와 전무승진 두 개를 다 할 수는 없다.” 고 말하더라.

△그건 좀 말이 안 되는 것 같다. 조합장 출마야 직원 승진문제와는 별개의 개인의 자유 아닌가.

-당연하다. 그래서 말이 안 된다고 했더니 조합장께서 전체직원들 앞에서 조합장 출마하지 않는다는 선언을 하지 않으면 전무승진 못시킨다고 하더라.

△그래서 어떻게 했나.

-꼭 안 된다 길래, 좋습니다. 전무안시켜주면 안 해도 좋다. 조합장 출마 포기선언은 절대 할 수 없다. 그건 내가 알아서 판단할 거다, 고 말하고 자리를 끝냈다. 그런데 그 일만 있었던 게 아니다.

△또 다른 일도 있었나.

-제가 퇴직일이 2017년 12월 31일이었다. 그래서 퇴임식을 12월 27일을 정해서 지인들에게 통보했다. 그런데 퇴임식 2~3일전에 종무식을 했다. 종무식을 하는데 갑자기 조합장이 저보고 앞으로 나오라고 하더니 전무임명장을 주는 게 아닌가. 그런데 전무면 보통 3급인데 4급 전무 임명장을 준 거다. 무슨 뜻인지 모르겠더라.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임명장이었다. 그래서 2~3일간 전무로 재직했다. 코미디 같은 일을 조합장이 한 거다.

△왜 그랬다고 생각하나.

-글쎄 이유는 모르겠다. 그리고는 원래 정해진 날짜인 12월 27일 날 퇴임식을 했다. 그런데 여기서도 해프닝이 있었다.

△어떤 해프닝인가.

-조합 직원의 퇴임식이니까 당연히 조합장이 나와서 축사를 했다. 그런데 이런 자리의 축사라는 것은 형식적으로나마 덕담을 하는 자리 아닌가. 그런데 조합장은 축사시간 내내 축하의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제 비난만 했다. 그렇게 축사시간에 비난만 해 놓고는 자기도 미안했던지 행사를 끝내지도 않고 도망가듯이 나가버렸다. 그때 퇴임식에 참석한 모 언론사 기자가 도망가는 조합장을 보고는 “조합장 그렇게 하는 게 어디 있냐?”고 고함을 지르는 것을 보았다. 현직 조합장의 처신이 그 정도였다.

△그런데 조합장과는 왜 그리 앙숙이었나.

-제가 자신의 후임이 되면 큰일 난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제가 조합장되는 것을 막으려고 했던 것 같다.

△왜 문제가 생긴다고 생각했을까. 비리가 많나.

-그건 잘 모르겠다. 이제 제가 조합장이 됐으니 조합장이 왜 그랬는지 지금부터 잘 챙겨봐야겠다.

△그런 이유로 현직 조합장이 김 조합장의 당선을 막기 위해 형님을 부추겼다는 것인가.

-그렇다. 형님만 부추긴 게 아니고 이사, 감사 등 현 집행부와 본사 직원들까지 기호3번 줄에 서게 했다. 이건 불법이다. 선거법 위반 뿐 아니라 직권남용 등 여러 가지 불법소지가 있다. 직원들과 집행부야 현 조합장이 시키니까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했지만 민심을 이기지는 못하는 게 선거라는 걸 이번에 실감했다. 그렇게 현 집행부, 직원 들을 줄 세웠지만 제가 과반수로 이기지 않았나.

△그럼 선거후유증이 좀 있겠다.

-선거 후유증은 아직은 없다. 기호 2번한테는 다음날 인사드리러 갔더니 그분은 조합원의 선택인데 그대로 받아들이겠다, 고 흔쾌하게 손을 잡아주셨다.

△형님은 어떻게 하던가.

-형님 집이 같은 동네에 있다. 그래서 선거후에 찾아가서 뵙고 인사를 드렸다. 쓴 소리를 많이 하시더라. 내가 쓴 소리를 들을 이유는 없지만 그래도 내 도리를 다하기 위해서 온 거니 듣고 왔다.

△그렇게 현직 조합장의 강력한 지원을 입고 있는 후보를 이긴 이유가 무엇인가.

-밑바닥 민심이 이미 조합장을 떠나 있었다. 그리고 이제 조합이 변해야 한다는 시대적 흐름도 있었고. 저는 1980년에 사남 농협에 들어와 38년을 근무한 사람이다. 또 저는 어릴 때부터 꿈이 조합장 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평생을 준비해 온 사람이다. 그래서 현직 조합장이 흔든다고 무너지지도 않는다.

△어릴 때부터 꿈이 조합장이었나.

-그렇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교에 장래 꿈이 무엇이냐고 적어내는 통신란에 ‘농협 조합장’이라고 적어냈다.

△어떻게 해서 그런 꿈을 가지게 됐나.

-초등학교 다닐 때이다. 그때 이 지역 조합장님이 아버님과 친구이셨다. 그때는 조합의 출자금을 현물로 받을 때다. 추수철이 되면 조합장이 직원들을 이끌고 새벽에 집집마다 다니면서 출자금을 곡물로 받았다. 부잣집은 한말, 가난한 집은 한 되, 이렇게 출자금을 받으러 새벽에 다니셨다. 조합원들이 농사지으러 나가기 전에 받아야 하기 때문에 새벽에 다니신 것 같다. 그렇게 다니다가 우리 집에 와서 아버님과 아침을 함께 하셨다. 그때 아버님이 저한테 막걸리 심부름도 시키고 밥상에서 같이 밥도 먹게 하고 하셔서 조합장님과 아버님이 나누는 얘기를 들을 기회가 많았다. 그때 생각이 조합장이 너무 멋있게 느껴져서 크면 조합장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그때부터 꿈이 조합장 되는 것이었나.

-그렇다. 그래서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사천농고에 진학했고 사남농협에 들어왔다. 저는 평생을 조합장이 되기 위해 준비해 온 것이다.

△사천농고에 들어간 것도 조합장이 되기 위해서였나.

-그렇다. 농고에 들어가는 것을 아버님이 반대해서 부자간에 갈등이 좀 있었다. 그래도 제가 우겨서 농고에 들어갔다. 그리고는 3학년 때 제가 반장이었는데 농협으로부터 장학금을 받았다. 그때 돈으로 5만원이었다. 큰 돈 이었다. 그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농협에서 직원으로 스카웃 했다. 그 당시는 다른 기회도 많이 있었지만 저는 망설이지 않고 농협을 선택해 80년 10월 6일 사남농협에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는 사천농협 일원에서 근무한 것인가.

-그렇다. 사남농협에 들어와서 일하다가 사천읍농협, 곤명농협, 삼천포 농협을 거쳐 2007년 마침내 조합장에 출마할 시기가 왔다는 생각에 고향인 사남농협으로 다시 온 것이다. 그리고는 여기서 10년 있다가 퇴직하고 농사짓다가 이번에 조합장에 출마하게 됐다.

△평생의 꿈을 이뤘는데 기분이 어떤가.

-평생의 꿈이었고 내 청춘을 바친 직장에서 조합장이 돼서 꿈을 이뤘다. 이제 내 한 몸 투신하다시피 봉사해서 농협과 지역발전을 위해 헌신할 것이다. 그리고 그 직을 마치고 나면 조용히 경로당으로 가고 싶은 심정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한국농어촌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