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BS역사칼럼-길 위의 역사](2부 무오사화) - 48회 이심원과 임원준, 성종과 신하들 앞에서 대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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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S역사칼럼-길 위의 역사](2부 무오사화) - 48회 이심원과 임원준, 성종과 신하들 앞에서 대질하다.
  • 김세곤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7.11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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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어촌방송=김세곤 칼럼니스트] 1478429일에 표연말, 박효원 등으로부터 임사홍의 일과 관련된 진술을 차례로 받은 성종은 이심원에게 임원준의 일을 물었다.

이심원이 말하였다.

"전일에 듣건대, 성녕대군(誠寧大君 14051418)의 계후(繼後)를 의의(擬義)할 때에 임원준이 신의 조부 보성군(寶城君)으로 하여금 뒤를 잇게하기를 꾀하였는데, 국가에서 열산수(列山守)로 하여금 뒤를 잇게 하자, 하루는 고모(임사홍의 아내)가 하인을 보내어 신을 불러서 임원준을 만나보게 하였습니다. 임원준이 신에게 이르기를, ‘너의 조부 보성군이 성녕대군의 뒤를 이을 만한데 얻지 못하였다. 이 앞서 오천부정(烏川副正)은 첩의 아들인 까닭으로 양녕대군의 뒤를 잇지 못하였는데, 이제 열산수도 첩의 아들이므로 성녕대군의 제사를 받들 수 없으니, 네가 오천부정을 가만히 부추겨서 열산수의 예()를 끌어 상언(上言)하도록 하라. 그러면 함양군(咸陽君)은 이미 양녕대군의 제사를 받들므로 갑자기 바꿀 수 없으며, 열산수는 저절로 이 예에 의하여 성녕대군의 후사가 되지 못하고 보성군이 마땅히 뒤를 잇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임원준의 말이 간악하고 음흉하다고 여겨서 대답하기를, ‘증조부 효령대군(태종의 둘째 아들)의 뜻이 이와 같지 아니하셨는데, 조부 보성군이 어찌 대군의 뜻을 어기고 제사를 받들고자 하겠는가? 하자,’ 임원준이 말하기를, ‘대군이 나이 80이 넘었는데, 어찌 세상에 오래 살겠는가? 비록 아버지의 뜻을 어길지라도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하였으니, 이것이 참으로 소인의 말이기 때문에 오늘 아침에 계달한 것입니다."

성녕대군(14051418)은 태종 임금의 넷째 아들로 14182월에 홍역으로 13살에 죽었다. 그의 후사는 세종의 셋째아들 안평대군(14181453)이었다. 그러나 안평대군이 1453(단종 1) 계유정난에 연루되어 죽자 대가 끊기었고, 1459(세조 4)에 종부시(宗簿寺)에서 효령대군의 6남 원천군(原川君 14331476) ()를 양자로 들여 봉사하도록 하였다. 그런데 원천군이 1476년에 죽자 다시 성녕대군의 봉사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한편 임원준이 이심원의 말을 듣고서 "신은 본래 이심원을 알지 못하고 단지 보성군의 집에서 서로 보았을 뿐이며, 신의 집에 불러서 성녕대군 봉사(奉祀)의 일을 말한 적은 진실로 없습니다." 라고 말하며, 공사(供辭)를 써서 입계(入啓)했다.

이에 정승들이 "임원준과 이심원의 공술(供述)한 바가 매우 다르니, 청컨대 면질(面質)하게 하소서."라고 아뢰었다.

그러자 성종은 "가하다."고 전교하고서, 곧 두 사람을 불러서 면질시켰다.

창덕궁 선정전
창덕궁 선정전

이심원이 임원준의 성녕대군 계후(繼後)를 모의한 일을 매우 분명하게 말하니, 임원준이 말하였다.

"자네가 말하는 것은 도무지 허망하다. 자네를 그대의 조부 보성군 집에서 한두 번 보았을 뿐이다. 임사홍이 일찍이 말하기를, ‘이심원이 글을 지어 두 번이나 내게 보이면서 말하기를, 승지가 어찌하여 이 같은 일을 계달하지 아니하느냐?고 하니, 이는 반드시 일을 일으킬 사람이라.’고 하며 항상 그 아내에게 경계하기를, ‘내가 없을 때에 주계가 만약 오거든, 삼가하여 서로 접촉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내가 어찌 자네를 청할 이치가 있겠는가? 하물며 보성군 계후의 일은 전연 내게 상관되는 것이 아닌데, 자네와 더불어 모의할 이치가 만무하다. 설사 보성군이 비록 성녕대군의 뒤를 이을지라도 그 전민(田民)은 반드시 아들에게 돌아갈 것이고 딸에게는 관여됨이 없으니, 내가 자네와 더불어 모의하지 아니한 것은 명백하다."

이러자 이심원이 말하였다.

"내가 승지에게 민간의 일을 전달하라고 이른 것이 옳지 못한가? 또 그대가 나를 집에 청하여 나를 문에서 맞이하고 익랑(翼廊)에서 마주 대해 앉아 조부 보성군 후계의 일을 가지고 나를 달랬는데, 내가 그 마음이 간악하고 음흉함을 보고 대꾸하기를, ‘이는 대군(大君)의 뜻이 아닌데, 조부께서 어찌 감히 그 뜻을 어기겠는가?’ 하니, 그대가 곧 답하기를, ‘나이가 80이 넘었는데, 어찌 오래 살 수 있겠는가? 비록 그 뜻을 어길지라도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라고 그대가 말하지 아니하였는가? 그대가 말하지 아니하였는가?”

이러자 임원준이 "나는 참으로 말하지 아니하였다." 고 말하였다.

다시 이심원이 말하기를, "어찌하여 숨기는가? 불초(不肖)하도다, 이 사람이여! 이것이 내가 소인이라고 이르는 바요. 내가 전일에 글을 올려서 세조조(世祖朝)의 신하를 쓰지 말기를 청하였는데, 비록 쓰지 말라고 말하였으나, 어찌 좌우에 있는 재상을 이르는 것이겠는가? 이는 그대를 가리켜 말한 것이오?" 라고 하였다.

이에 임원준이 말하였다.

"자네도 태종(太宗)의 손자인데 어찌하여 말을 그렇게 하는가? 어찌하여 나를 불초하다고 이르는가? 자네가 임사홍의 조카인데, 자네가 이를 헐뜯고자 하니, 인정과 천리(天理)에 어떠한가?"

이에 이심원이 말하였다.

"나는 나라를 위해 말하는 것이고 다른 것은 있지 아니하오. 이전에 아버지가 병이 있을 적에 그대가 약을 준 은혜로 그 생명을 건졌으니, 그 은혜가 지극히 중한데, 내가 어찌 옛 은혜를 잊고 말하는 것이겠는가? 어찌 사사로움이 있어서 그러하겠는가? 단지 사직(社稷)이 있는 것만 알 뿐이고 다른 것은 돌아보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임원준이 말하였다.

"내가 약을 주어 그대 아버지의 병을 고친 것을 가지고 불초하다고 하는가? 이제 보성군을 만나보니, 말하기를, ‘주계(朱溪)가 이르기를, 글을 올려 세조조의 신하를 쓰지 말라고 한 것은 마음으로 지목하는 바가 있어서 말한 것인데, 임사홍이, 세조조의 신하는 모두 쓰지 말라고 계달한 것으로 여긴 까닭에, 보복하고자 하는 것입니다.라고 하였으며, 또 이르기를, 오늘 아침에 성상께서 승지들에게 임원준의 간사한 형상을 묻자 그중의 끝에 있는 새로 제수된 승지가 그 허물을 자세히 말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하였으니, 자네가 말한 바는 모두 거짓이고 망령된 것이다."

이러자 이심원이 "이 말은 내 입에서 나오지 아니하였는데, 어찌하여 망령되게 말하는가?" 하였다.

임원준이 여러 정승에게 고하기를,"보성군이 이제 궐내(闕內)에 있으니, 불러서 면대하기를 청합니다." 1)

이심원이 "어찌 할아버지와 손자가 서로 대질(對質)하는 도리가 있는가?"

말하니, 정승들이 모두 말하기를, "진실로 우리들이 마음대로 부를 수 없다."하였다.

이 뜻을 입계(入啓)하자, 성종이 전교하기를, "보성군을 불러서 물어 보라." 하였다.

정승과 대간들이 보성군은 불러서 물으니, 그 말이 임원준의 말한 바와 같았다.

이심원이 그 조부에게 부르짖으며 고하기를,

"천 년 후에 손자로 하여금 누명(累名)을 얻지 말게 하소서."

하므로, 좌우에서 말리자 이심원이 잠잠하였다.

한명회 등이 "임원준과 이심원은 양쪽이 공증(公證)이 없으니, 그 말을 듣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습니다."라고 아뢰었다.

이에 성종이 전교하였다.

"임원준과 이심원의 일은 모두 기각하고 양관(兩館:홍문관·예문관)의 사람을 불러서 임원준과 임사홍의 소인됨과 간사한 형상을 묻게 하라." (성종실록 14784293번째 기사)

(1) 보성군 이합(寶城君 李㝓, 1416~1499)은 효령대군의 셋째 아들로 임사홍의 장인이다. 임사홍의 부친 임원준과는 사돈 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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