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8년(연산군 4년) 7월 17일에 윤필상 등은 김종직(1431∽1492)이 지은 「도연명(365∽427)의 술주(述酒)시에 화답하다〔和陶淵明述酒〕」란 시에 관해 아뢰었다.“김종직의 시는 조의제문보다 더 심한 점이 있어서 차마 말을 못하겠습니다.”윤필상 등은 시권(詩卷)을 올린 뒤 서문의 뜻을 해석하였다."그 ‘이는 영릉(零陵)을 애도하는 시다.’라고 한 것은, 영릉을 노산(魯山)에 비한 것이요, 그 ‘유유의 찬시(纂弑)의 죄’라 함은 유유를 세조에게 비한 것이요, 그 ‘《춘추》의 일필에 비교한다.’함은 맹자(孟子)가 ‘《춘추》
김종직의 「화도연명술주시」의 네째 단락을 살펴보자. 넷째 단락은 6구이다.사령(四靈)이 응했다고 핑계를 대어 諉以四靈應태산에 봉선하고 분음에 제사했네. 宗岱且祠汾거짓 천명을 만들 수는 있으나 僞命雖能造세상의 혼란 의당 분분하였네. 世亂當紛紛천리란 본디 순환하길 좋아하기에 好還理則然소가 마침내 천친을 멸하였도다. 劭也蔑天親그러면 한 구씩 살펴보자사령이 응했다고 핑계를 대어, 諉以四靈應태산에 봉선하고 분음에 제사했네. 宗岱且祠汾사령은 네 가지 신령스런 동물인 기린(麟)·봉황새(鳳) ·거북(龜)·용(龍)을 말하는데, 사령이 나타나는 것은
[한국농어촌방송/경남=정숙자 문학박사] 화창한 봄날에 벚꽃이 눈처럼 날리는 어느 날 우리 집 앞에 덩그러니 컨테이너 박스가 자리를 잡았다. 밭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그 공간은 많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퇴임을 하신 먼 친척 아저씨가 흔히 남자들이 이야기하는 로망을 이루려고 오신 장소다. 물론 그 분의 아내는 오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여기저기 밭이나 과수원에 컨테이너들이 부쩍 늘었다. 그곳도 아주머니 없이 아저씨들만 오셨다.그들의 로망은 과연 무엇일까? 시골생활의 부지런함이 좋은 것인지 아니면 자연의 품이 그리운 것인지 모르겠지만
김종직의 「화도연명술주」시의 셋째 단락을 살펴보자. 셋째 단락은 8구이다.네 올빼미가 무슨 공이 있으랴 四梟者何功하늘의 보답을 참으로 자상했도다 天報諒殷懃온화하였던 안제와 공제는 婉婉安與恭바로 이 유씨들의 임금이었는데 乃是劉氏君푸른 하늘을 속을 수 있다고 여겨 蒼天謂可欺높이 요순의 훈풍을 끌어댔으나 高把堯舜薰선위를 받는게 끝내는 역적이였네 受禪卒反賊사씨는 글을 교묘하게 꾸몄다네. 史氏巧其文그러면 한 구절씩 살펴보자.네 올빼미가 무슨 공이 있으랴 四梟者何功하늘의 보답은 참으로 자상했도다 天報諒殷懃올빼미는 어미 새를 잡아먹는다 하여 패
1898년 10월 11일에 독립협회는 경운궁 앞에서 농성을 계속했다. 종로 시전 상인들도 모두 철시하고 농성에 가담하였다. 농성 중인 윤치호는 상소하여 심순택, 신기선, 민영기 등 일곱 대신의 파면을 거듭 촉구했다.“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견고해야 나라가 편안한 법입니다. 그런데 근본이 견고하지 못하며 나라가 편안하지 못하게 된 것은 첫째도 일곱 신하들의 죄이고 둘째도 일곱 신하들의 죄입니다.폐하께서는 어째서 보잘것없는 일곱 신하들은 아끼면서 삼천리의 큰 영토와 2,000만 백성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까?... 저
10월 10일에 독립협회의 윤치호 등은 경운궁 앞에서 농성을 계속하면서 신기선, 이재순 · 민영기 등 일곱 대신의 파면 운동을 전개하였다.이 날 반역음모죄인 김홍륙·공홍식·김종화 등은 모두 교수형(絞首刑)에, 김영기·엄순석·김연흥·김흥길·강흥근·김재택·조한규·김재순 등은 태형(笞刑) 50대에, 김홍륙의 아내 김소사는 태형 100대에 유배 3년에 처해졌다. (고종실록 1898년 10월 10일 1번째 기사)그런데 고종은 법부대신 신기선과 판사 이인우를 파면시켰다.“조령(詔令)을 내렸다.‘지난번에 법부대신에 대해서 감봉(減俸) 처분을 내
[한국농어촌방송/경남=오규열 일대일로연구원 부원장/전 서울디지털대학교 중국학부 교수] 귀농·귀촌 종합센터는 2021년 3월 19일 ‘농촌에서 살아보기 서비스’를 오픈하였다. 이 프로그램은 귀농과 귀촌에 관심이 있고 이주를 고려 중인 도시민이 전국 83개 마을 가운데 연간 최대 2곳을 선택하여 최단 1개월에서 최장 6개월까지 생활해보는 것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시골에 살고 싶다는 욕망이 강해졌다. 그래서 지난 2년간 열심히 귀농 교육을 받아 130시간 이수하였다. 서울에서 성장했고 시골에 연고가 없어 귀농 교육을 받았으나 어디로 정착
김종직의 「화도연명술주시」는 다섯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6구, 8구, 8구, 6구, 2구로 이루어졌다. 시는 중국의 역사와 고사(故事)가 많고 우의(寓意) 또한 상당하여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다.첫째 단락 6구가 서사(序詞)라면 둘째 단락부터는 본사(本詞)에 해당한다. 우선 두 번째 단락 8구를 읽어보자.당시에 사마씨는 남으로 건너갔으니 當時馬南渡중원에는 무덤만 남았을 뿐이었네 神州餘丘墳천심은 아직 떠나지 않았기에 天心尙未厭마치 새벽이 두 번 온 듯했는데 有若日再晨처중이 맨처음 난을 일으키었고 處仲首作孼 원주) 왕돈(王敦)이다
1898년 9월 25일에 독립협회는 반역사건을 규탄하고 사건의 철저한 조사를 촉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죄인에 대한 고문과 이미 폐지된 노륙법과 연좌법의 부활 반대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정하였다.9월 26일에 독립협회는 법부대신 겸 중추원 의장 신기선에게 공한을 보내 의장과 서명한 의관의 사직을 요구하였다. 9월 27일에 신기선은 갑오개혁 이후 역적을 다루는 데 교수형만 적용시키니 역변(逆變)이 그치지 않아 노륙법을 부활시키지 않을 수 없고, 또 대신의 진퇴는 협회가 말할 바가 못 된다고 답신하였다.10월 2일에 독립협회는 중추원 앞에서
김홍륙 독다사건(毒茶事件)이 일어난 지 1주일이 지난 1898년 9월 18일에 현학표 등은 역적을 엄중히 다스리도록 연좌(連坐)와 노륙(孥戮)법을 부활하라고 상소하였다. 9월 19일에 장례원 주사 황의철도 역적들을 거리에서 공개 처형하라고 상소했다.이러자 고종은 "새로 정한 법률을 고치고 옛날의 법률을 따르자는 말을 어쩌면 그리도 쉽게 하는가?”라고 비답하였다.연좌제(緣坐制)는 죄인뿐만 아니라 그 아내와 아들 그리고 친족까지도 연대적으로 처벌하는 제도이고, 노륙법은 죄인의 아내와 아들도 참형을 적용시키는 법으로 이 법들은 이미 갑오
[한국농어촌방송/경남=정숙자 문학박사] 봄바람은 휘날리고 꽃들이 지천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며 피고 있는데, 우리 마음은 그리움과 애틋함이 쌓여간다. 사람의 거리를 나라에서 관장하고 있는 시기는 더욱 멀게 느껴지고 점차 그리움이 병을 만든다. 타인에 대한 배려도 나의 건강도 이제 조금씩 풀어 놓고 있다. 꽃들은 이런 사람 마음도 모르고 저토록 아름답게 피고 있다.며칠 전 미국에서 지내던 딸이 한국에 들어왔다. 입국 전 미국에서 코로나 검사를 한 음성진단서를 가지고 왔음에도 한국에서 다시 코로나 검사를 했는데, 결과가 뚜렷하지 않다는
1898년 9월 11일, 「김홍륙 독다사건(金鴻陸毒茶事件)」이 터졌다. 고종과 황태자는 저녁 식사를 양식으로 먹은 뒤 커피를 마셨다. 아관파천 시절부터 커피를 좋아한 고종은 커피 냄새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여 한 모금 입에 넣자마자 뱉었다. 그런데 황태자(후에 순종)는 그냥 몇 모금 마셨다. 조금 있다가 황태자가 토하고 쓰러졌다. 궁중이 아수라장이 되었다.9월 13일 자 「독립신문」은 이 날의 사건을 자세히 전했다.“그저께 밤에 카피차를 황태자 전하께서 많이 진어하신 후 곧 피를 토하시고 정신이 혼미하사 ... 황상 폐하께서는 조금 진
김종직의 ‘도연명의 술주시에 화답하다[和陶淵明述酒]’ 시를 한 구절씩 음미하여 보자.점필재 김종직의 「화도연명술주」시는 다섯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그 구성은 6구, 8구, 8구, 6구, 2구로 이루어졌다. 시의 특징은 많은 고사(故事)를 사용하고 우의(寓意)가 많다는 점이다.먼저 첫 단락이다.솥에도 오히려 귀가 있는데 鼎鐺猶有耳사람이 어찌 듣지 못하리오. 人胡不自聞임금과 신하는 존비가 달라서 君臣殊尊卑하늘과 땅처럼 자리 나누어졌네 乾坤位攸分간악한 이름은 반역을 한 때문이라 奸名斯不軌멸족되어 후손이 끊어져 버렸네. 赤族無來雲솥에도
[한국농어촌방송/경남=오규열 일대일로연구원 부원장/전 서울디지털대학교 중국학부 교수] 한국 정치의 주류로 자리 잡은 1960년대 출생하여 1980년대 대학을 다닌 현재 50대인 586세대들은 20대부터 정치 훈련을 받았다. 이들 대부분은 대학에 입학하면서 바로 한완상 교수가 쓴 ‘민중과 지식인’이라는 책과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읽었다. 해방전후사의 인식은 현대사를 조명한 책이지만 한국 정치의 흐름을 알려주는 책이었다. 그리고 모두가 사람답게 함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자신의 안위보다 사회개혁에 나서는 실천적인 지식인
[한국농어촌방송/경남=정숙자 문학박사] 한 무리의 매화꽃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함께 피어나고 있다. 진양호에 발을 담그고 겨울을 버티고 견뎌내고 만 갯버들도 싹을 피우고 있다. 아직 솜털을 걸치고 있어 어린아이모양 살포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지만 곧 벚꽃들이 여기저기 꽃망울을 터트리고 불쑥 나올 때 함께 나오려고 시간을 아껴두고 있는 듯싶다. 양지바른 곳의 매화는 이미 그 쓰임을 다하고 꽃을 가지에서 하나씩 지우고 있다. 이제 마지막 가지 꼭대기의 꽃만 피면 매화꽃은 이미 봄을 알리는 소임을 마친다.들길을 산길을 산책하면서 나의
1898년 9월 20일에 주한 프랑스 공사 플랑시는 프랑스 외무부 장관에게 ‘고종 황제의 외국인 친위대 구성 계획 추진과 의정부 대신들의 거부 움직임 보고’ 공문을 보냈다.이 공문은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한국근대사자료집성 18권, 프랑스 외무부 문서 8 대한제국Ⅰ·1897~1898」에 실려 있다.“이번 달 8일 공문을 통하여 보고드린 바와 같이 고종 황제가 외국인으로 구성된 친위대를 조직하려 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미국인 법무 고문관 그레이트 하우스가 상해에 체류 중인 5개국 퇴역군인 30명(미국
[한국농어촌방송/경남=정숙자 문학박사]꽃피기 전 봄산처럼 / 꽃핀 봄산처럼꽃지는 봄산처럼 / 꽃진 봄산처럼나도 누구 가슴 / 한번 울렁여 보았으면-함민복의 ‘마흔 번 째 봄’위 시 속에 들어있는 감정을 한웅큼 가져다가 나의 가슴으로 밀어 넣는다. 산에 들에 핀 매화가 붉은 감정을 사뿐히 들여놓고 있다. 지인들의 전화기 속이 온통 꽃이다. 아마 봄이 다가도록 꽃으로 이야기들이 시작될 것이다.나의 산책길 끝, 호수의 언저리에 개나리가 무성하다. 처음에는 개나리인지 알 수 없는 형태였다가 봄이 한발씩 세상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네들도 싹
1898년 5월 14일에 34세의 서재필(1864∽1951)이 미국으로 돌아갔다. 1895년 12월 26일에 귀국한 지 2년 5개월 만이었다.1896년 4월 7일에 「독립신문」을 창간한 서재필은 7월 2일에 독립협회가 창립될 때까지는 정부에 대하여 매우 협조적이었다. 하지만 이후 독립협회와 「독립신문」은 열강의 이권 침탈을 규탄하고 정부의 무능과 부패를 고발하였다.1896년 9월 17일 자 독립신문 첫머리 논설에는 내부대신이 새로 임명된 거창군수 김봉수를 만나 “어떻게 자네가 고을 원님이 되었느냐?”고 물으니까 “돈 3만 냥을 주고
[한국농어촌방송/경남=오규열 일대일로연구원 부원장/전 서울디지털대학교 중국학부 교수] 자주 가지도 못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진영 봉하마을에 다녀오기를 권한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봉하마을에 가서 생전 노무현 대통령 영상을 보고 말씀을 곰곰이 되새기며 산책을 하다 보면 인생을 잘 사는 법이 떠오르기 때문이다.김대중 정부 시절 농림부 장관을 지낸 분을 개인적으로 아는데,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의아해서 김대중 정부의 정책을 이어가니 좋은 일 아니냐고 물어보았다. 그런데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노무
[한국농어촌방송/경남=정숙자 문학박사] 오늘, 내가 있는 곳의 날씨는 봄의 햇살과 그리고 바람과 온도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는 완벽한 봄이다. 먼저 봄을 맞이하는 매화는 꽃으로 와 있다. 살랑거리는 봄바람은 연약한 매화꽃을 건드리고 있다.저번 수요일에 좋아하는 선생님과 익산에 계신 교수님을 뵈러 갔다. 그동안 만남도 뜸했고 명절도 지났는데 인사도 드리지 못해 송구한 마음으로 함께 식사를 하기로 하고 진주를 출발하는데, 날씨가 명쾌하지는 않았다. 잔뜩 찌푸리고 있어 곧 무언가가 내릴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익산에 도착했을 때는 바람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