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지리학자 비숍 여사(1831∽1904)는 1894년 1월부터 1897년 3월 사이에 조선을 네 차례 방문하여 1897년에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을 발간했다. 이 책은 한국의 역사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유명한데,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이 노태우 대통령에게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 영문 초판본을 선물할 정도였다.1895년 1월에 서울에서 왕비를 네 번이나 만난 비숍 여사는 을미사변 당시엔 서울에 없었다. 그녀는 1895년 2월 12일에 조선을 떠나 중국 남부와 중부 등을 몇 달간 여행하고 일본에서
[한국농어촌방송/경남=오규열 일대일로연구원 부원장/전 서울디지털대학교 중국학부 교수] 2020년 6월 30일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가 ‘홍콩국가보안법(Hong kong National Security Law)’을 제정하자 미국이 그동안 ‘홍콩정책법(United States-Hong Kong Policy Act of 1992)’에 근거해 홍콩에 대해 부여해 왔던 특별지위를 박탈함으로써 미중 갈등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아편전쟁에서 패한 청나라는 1898년 영국에 홍콩을 1997년까지 99년간 조차하였다. 중국은 1984
[한국농어촌방송/경남=정숙자 문학박사] 나는 모임이 있어 급하게 문을 잠그고 집에 안전장치를 걸고 나갔다. 점심을 먹고 있는 중에 보안회사 직원이 전화가 왔다. 집에 불법침입이 있어서 비상벨이 울렸다는 것이다. 놀란 마음에 집으로 급히 갔다. 그랬다. 불법침입(?)이었다. 육십이 넘어 보이는 부인들이 사진을 찍느라 정신없이 정원을 가로질러 다니고 있었다. 어처구니가 없어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나의 소중한 모임을 방해했으며 나의 정신적 불안을 유도했던 사건에 주인공은 내가 아는 분들도 아니었다.우리 집 정원에는 옆으로 누워서 자
을미사변은 외국인에게도 초미의 관심이었다. 1895년 10월 8일(음력 8월20일)의 상황은 민왕후의 주치의 언더우드 부인과 영문 월간지 운영 및 편집인 헐버트 그리고 주미공사 대리 알렌과 영국 여행작가 비숍 여사의 저술에도 기록되어 있다.먼저 1888년에 의료선교사로 조선에 온 언더우드 부인은 에서 이렇게 적었다.“10월 8일 아침에 대궐에서 나는 총소리를 들었다. 오후가 되어서야 한 조선 양반을 만나 왕비가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 그런데 전해진 소식들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것들이 꽤 있
2014년 1월 서신초등학교 3학년생이었던 전예강 양은 코피가 멈추지 않자 모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고 이에 요추천자 시술을 받았지만 7시간 만에 쇼크로 사망했다.전예강 양 사망사건은 흔히 있을 수 있는 그리고 다툼의 여지가 있는 일반 의료과실 사고였지만 세인의 관심을 사게 된 것은 그 누구보다 윤리의식을 성실히 준수해야 할 담당 의료인들이 피해자 가족이 의료소송을 준비하자 제반 의료처치 기록을 몰래 조작하여 적발되었기 때문이다.그동안 의료인들이 분쟁이나 소송에서 유리하도록 진료기록을 조작하는 것은 비일비재했었지만 전예강 양 사고
1895년(고종 32년) 8월 20일(양력 10월 8일) 새벽에 을미사변이 일어났다. 민왕후(1851~1895, 1897년에 명성황후로 추존)가 경복궁 곤녕합에서 시해된 것이다. 이는 세계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참극이었다.그런데 이 사건은 사건의 배후와 시해 과정 그리고 시해범 등의 논란이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다. 을미사변은 은밀히 진행된데다가 사건 직후, 일본 측이 철저히 인멸, 왜곡했기 때문이다.고종실록이 일제 강점기인 1935년에 간행되었다는 한계는 있지만, 을미사변의 진상을 고종실록을 중심으로 살펴본다.먼저 1895년 8월 2
[한국농어촌방송/경남=정숙자 문학박사]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는 뜻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닌 것 같다. 주위를 살펴 새로운 바람의 느낌을 알아차리고 햇살의 존재를 깨닫고 더불어 그 속에 혼자 걷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진양호 호수에 갇힌 하늘과 겨울의 산을, 나의 눈높이에서 관찰할 수 있는 여유로움이 있다. 호수의 잠금 열쇠는 겨울새들의 갑작스런 방문이었다. 새들이 떼를 지어 호수에 발을 담그고 날개를 쉬게 하는 동안 호수는 품었던 하늘과 산을 놓아준다.내 곁에 있는 자연은 이렇게 조화로운 현상으로 늘 있다. 나는 대단할 것도
1894년 12월 12일(양력 1895년 1월 7일)에 고종은 종묘에 나아가 홍범 14조를 신령 앞에 고했다. 12월 13일에 고종은 모든 관리와 백성들에게 자주독립을 고취시키는 윤음(綸音)을 내렸다.12월 17일에 총리대신 김홍집, 내무 대신 박영효, 학무 대신 박정양, 외무 대신 김윤식, 탁지 대신 어윤중, 법무 대신 서광범 등이 왕실에 관한 존칭을 높일 것을 주청했다. 그리하여 주상 전하를 대군주 폐하로 왕비 전하를 왕후 폐하로 칭하였다.한편 청일전쟁에서 일본은 청국의 북양함대를 함락시켰고 요동반도를 완전 장악하였다. 일본군이
1894년 12월 12일(양력 1895년 1월 7일)에 고종은 종묘 영녕전(永寧殿)에 나아가 홍범 14조를 신령 앞에 고하였다."감히 황조(皇祖)와 열성(列聖)의 신령 앞에 고합니다. (중략)우리 왕조를 세운 지 503년이 되는데 짐의 대에 와서 시운(時運)이 크게 변하고 문화가 개화하였으며 우방(友邦)이 진심으로 도와주고 조정의 의견이 일치되어 오직 자주독립을 해야 우리나라를 튼튼히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짐이 어찌 감히 하늘의 시운을 받들어 우리 조종께서 남긴 왕업을 보전하지 않으며 어찌 감히 분발하고 가다듬어 선대의 업적을 더
1892년 가을과 겨울 사이에 서울에 화적떼가 크게 일어나, 대궐로 진상되는 임금의 물건까지 도난당하는 일까지 생겼다. 이러자 고종은 좌우 포도대장 한규설과 이종건을 파직시키고, 신정희를 좌포도대장에 임명하였다. 이러자 한 달 사이에 도둑들이 겁을 먹고 조용해졌다.하지만 신정희는 중전의 비호를 받고 있는 무당 진령군만은 잡아다가 처벌하지 못했다. 황현은 『매천야록』에서 이렇게 평가했다.“안타깝다! 신정희는 명종 때 변협이 문정왕후의 총애를 받았던 승려 보우를 처단한 일을 떠올리며 스스로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이 무렵에 백성들은
[한국농어촌방송/경남=오규열 일대일로연구원 부원장/전 서울디지털대학교 중국학부 교수] 강원도 속초시 영랑해안길에는 탁 뜨인 바다를 보며 회를 즐길 수 있는 엄청난 규모의 식당이 있다. 물회로 유명한 봉포머구리집이다. 봉포는 지명이고 머구리는 잠수부를 일컫는 옛말이다. 해녀와 구분하여 잠수를 전문으로 물질하는 남자를 머구리라고 부른다. 머구리는 잠수복을 입고 수면 위와 연결된 호스를 통해 공기를 공급받으면서 바다에서 전복, 해삼, 멍게 등을 잡는다. 봉포머구리집은 머구리 일을 하시던 분이 자신이 직접 잡은 해산물을 팔기 위해 차린 식
[한국농어촌방송/경남=정숙자 문학박사] 요즘은 배려와 소통이라는 말이 흘러넘친다. 그 말이 우리 사회에 간절히 필요해서 하는 것인지, 말의 의미가 좋아 보여서 누구나 하는 말인지 착각이 들 정도로 많은 사람의 말 속에 있다. 소통과 배려라는 말은 남에게 강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타인을 위해서 지키기 위해서 하는 말이어야 한다. 하지만 소수의 사람은 그 말과 전혀 상관이 없는 데도 사용한다. 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저런 부류의 사람과 오랫동안 함께 갈 수 있을지 말이다.분명 본인은 자기 성향대로 말한다. 그 잘난 성격으로 화와
1894년 6월 23일에 청일전쟁이 시작되었다. 일본 해군은 아산만 부근 풍도 앞바다에서 청국 군함을 기습하여 격침시켰다.이보다 이틀 전인 6월 21일 새벽에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했다. 22일에는 김홍집 친일 내각이 들어섰고 대원군이 다시 전면에 나섰다. 이러자 민영준 · 민형식 · 민응식 등 민씨 척족들은 도망치기에 바빴다.동학농민군이 전주성을 점령하자 원세개에게 청군 파병을 요청했던 병조판서 민영준은 평안도로 도망갔다가, 평양전투에서 패주한 청군을 따라 청나라로 도피했다.민응식은 삿갓을 쓰고 교군꾼처럼 꾸미고 숭례문을 나서자
녹두장군 전봉준이 이끄는 동학 농민들이 1894년 (고종 31년) 4월 27일에 전주성을 점령하자 고종과 중전민씨는 청나라에 원병을 요청했다. 동학군이 대원군과 결탁하였다는 정보에 중전은 1882년 임오군란의 악몽 살아나 부들부들 떨었다. 이후 청군과 함께 들어온 일본군은 6월 21일 새벽에 경복궁에 난입했다. 6월 22일에 김홍집 친일 내각이 들어섰고 대원군이 다시 전면에 나섰으며 중전 민씨는 힘을 잃었다. 민영준 · 민형식등 민씨 척족들은 황급히 서울을 떠났다.7월 5일에 종두법으로 유명한 전(前) 형조 참의 지석영이 상소하였다
[한국농어촌방송/경남=정숙자 문학박사] 한 달 중에 오늘은 달이 휘영청 밝은 보름이다. 그 달빛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감성을 담아 차회를 연다. 시간을 정하고 달이 가장 잘 보이는 장소를 택해서 소박한 찻자리를 한다. 찻상 중앙에는 다화들이 자리를 잡고 급하게 내려간 기온으로 추울 것을 미리 짐작하여 촛불을 켠다. 찻상 위에 비취는 촛불 몇 개와 호수 위에 내려앉은 달과 하늘에 떠 있는 달빛이 너무 밝고 좋아 내 가슴속으로 그리움이 가득 들어온다. 따스한 기운이 심장을 거쳐 단전까지 내려가는 동안 나는 그간의 슬픔은 잠시 접어두기로
1893년 8월 21일에 전(前) 정언 안효제가 상소를 올려 무당 진령군을 처벌하라고 아뢰었다. (고종실록 1893년 8월 21일 3번째 기사)“근래에 와서 북관왕묘(北關王廟)는 거짓과 야박한 것을 숭상하고, 굿을 하는 것이 풍속을 이루어, 주문을 외우며 기도를 드리는 장소가 되었습니다.요사이 괴이한 귀신이 여우 같은 생각을 품고 관왕의 딸이라고 거짓말을 하며 스스로 북관왕묘의 주인이 되어 요사스럽고 황당한 말로 사람들을 속이고 함부로 ‘군(君)’칭호를 부르며 감히 임금의 총애를가로채고 있습니다.또한 잇속을 늘이기 즐겨 하며 염치가
[한국농어촌방송/경남=오규열 일대일로연구원 부원장/전 서울디지털대학교 중국학부 교수] 2020년 11월 15일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10개국과 한·중·일 3개국, 호주·뉴질랜드 등 15개국 정상들이 세계 최대 규모의 자유무역협정(FTA)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 서명했다. RCEP는 2012년 11월 협상을 시작하여 8년 만에 정상들의 서명에 이르게 되었다. RCEP 참가국들의 국내총생산(GDP)을 모두 합치면 전 세계의 30%에 달하고 역내 인구도 34억 명으로 세계 최대 규모의 메가 FTA다.RCEP는 가맹
[한국농어촌방송/경남=정숙자 문학박사] 자연 속에 가을은 제각각의 모습으로 떠나보내고 비워내기를 하고 있다. 아직도 난 제대로 비우지도 떠나보내지도 못하고 사는 사람인데 이네들은 일년을 천년처럼 살면서 가장 자연스럽게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벚꽃으로 가득했던 그 나무는 이제 잎사귀 하나 남기지 않고 모조리 보내고 마음만 남아서 덩그렇게 그냥 그렇게 서 있다. 다람쥐의 양식이 되었던 굴밤나무들은 아직도 다람쥐의 겨울이 걱정스러운지 잎을 달고 마지막의 붉음을 지키고 있다. 감나무들의 잎은 이제 수명을 다하고 아래로 떨어져 겨울을 준비하
매천 황현(1855∽1910)의 『매천야록』과 『오하기문(梧下記聞)』에는 나라를 망친 무당 진령군 이야기가 적혀있다.1882년 6월 임오군란 때 중전 민씨가 충주 장호원 민응식의 집에 피난 가 있을 때 요사스러운 한 무당이 찾아와 뵙고 환궁할 날짜를 점쳐주었다. 그 날짜가 들어맞자 중전이 신기하게 여겨 무당을 데리고 8월1일에 환궁했다.무당은 매양 중전이 머리가 아프다고 하면 머리를 만지고, 배가 아프다면 배를 쓰다듬었는데 그럴 때마다 중전의 병세가 호전되었다. 이러자 중전은 잠시도 그녀와 떨어져 있지 않았고 그녀를 ‘언니’라고 불
[한국농어촌방송/경남=정숙자 문학박사] 나는 사람을 만나는 일에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나는 오늘 잠깐 만나서 이것저것 대충 끼워 맞추고 친구가 되고 연인이 되고 언니 동생이 못된다. 나는 한참동안 시간을 함께해야 하며 계절도 함께 보내고 넘겨야 한다. 중간에 기다림이 부족해서 떨어져 나가는 사람도 많았다.그렇게 시간과 노력을 공유한 나의 사람들은 굳이 불필요한 말이 없어도 상대를 이해하고 또 기다려 준다. 그리고 늘 조급하지 않게 자리를 비워두고 언제든 찾아와도 어색함이 없도록 한다. 간혹 잊고 지내다가 찾아오는 사람도 있을